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고 그랬다. 자신을 아는 것, 야구 선수들에게도 필요하다.
모든 선수가 강타자일 수도, 강속구 투수일 수도 없다. 각기 다른 자리에서 조화를 이루어야 짜임새 있는 팀이 구성된다.
물론 대부분의 타자는 홈런을 날리고 그라운드를 도는 꿈을 꿀 것이다. 투수들은 마운드에서 150㎞ 넘는 강속구를 던져 타자들을 그대로 덕아웃으로 돌려보내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라인업과 포지션은 조화가 중요하다. 자신만의 개성과 강점을 가진 좋은 선수들이 잘 배치돼야 좋은 팀이다. ‘나를 잘 아는 것’ 좋은 선수, 좋은 팀을 만들기 위한 첫 번째 과정이다.
KIA 타이거즈 투수들에게는 자신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의 문이 열렸다.
지난 11월 일본 오키나와에서 진행된 마무리캠프에서 투수들은 많은 시선 속에 불펜 피칭을 했다.
그들 뒤에는 이동걸 1군 투수 코치와 새로 가세한 타카하시 켄 코치와 김지용 코치가 있었다. 그리고 특급 마무리로 활약했던 손승락 수석코치도 매의 눈으로 선수들을 지켜봤다.
각기 스타일은 다르니까 궁금한 것은 다르니까, 선수들은 알아서 골라서 다양하게 질문을 하고 답을 들을 수 있었다.
투수들에게 제시된 키워드는 ‘나를 찾기’였다.
이동걸 코치는 투수들을 지켜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직접 글러브를 들었다. 투수들과 일일이 캐치볼을 하면 선수들을 분석했다. 데이터로 확인할 수 있는 것 이상의 것을 보기 위한 노력이었다.
이동걸 코치는 “실제로 공을 잡아보니 찍힌 데이터 숫자와는 다른 부분이 있는 투수들이 있었다. 숫자마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케이스도 존재한다. 직접 공을 받아봐야 ‘공이 이렇게 도는 구나’, ‘이래서 컨택이 이뤄졌구나’를 알 수 있다. 선수들이 시즌을 보내면서 만들어진 데이터와 직접 느끼는 것을 바탕으로 피드백을 했다”고 설명했다.
데이터라는 기본에 타자 입장에서 본 실제 공의 움직임과 위력을 바탕으로 이동걸 코치는 ‘피칭 디자인’을 했다.

타자를 이기는 게 모든 투수의 공통 목표이지만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다르기 때문에 이동걸 코치는 선수들에 맞는 그림을 그렸다.
이동걸 코치에게는 2026시즌의 밑그림을 그리는 시간이기도 했다.
KIA는 올 시즌 우승을 이뤘던 불펜이 흔들리면서 뒷심 싸움에서 밀렸다. 시즌 중반 불펜 코치에서 메인 코치로 이동했던 이동걸 투수 코치는 시즌을 끝냈다.
매 경기 이길 수는 없다. 하지만 아쉬운 패배를 최소화하기 위해 이동걸 코치는 촘촘하게 투수들을 살피면서 판을 짰다.
그의 구상은 그래서 더 세밀해진다.
흔히 불펜은 좌완, 우완, 사이드암으로 구분한다. 그리고 그 세 가지 틀에 맞춰 일반적인 기용을 하기도 한다. .
KIA는 지난 시즌 곽도규와 최지민이라는 ‘젊은 피’에 경험 많은 이준영을 묶어 좌완 불펜진을 필승 카드로 잘 활용했다.
하지만 올 시즌 곽도규가 부상으로 빠졌고, 최지민이 기복 많은 시즌을 보내면서 불펜 힘을 잃었다.
내년 시즌도 좌완 불펜진에는 물음표가 가득하다. 이동걸 코치는 다른 시선으로 판을 그리고 있다. 좌완, 우완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동걸 코치는 “좌투수라고 해서 무조건 좌타자한테 강한 게 아니다. 좌완, 우완으로 따지게 되면 한 선택지에 몰아넣는 것밖에 안 된다. 좌완, 우완보다는 자기가 가진 공을 던질 수 줄 알아야 한다. 좋은 선수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좌우를 가리지 않고 타자를 제압할 수 있어야 한다”며 “체인지업을 잘 던지는 선수가 있고, 슬라이더를 잘 던지는 선수가 있다. 어떤 구질을 잘 던지는지에 따라 타자에 맞춰 기용하는 게 효율적이다. 최고의 구질을 던지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어떤 손으로 공을 던지느냐가 아니라 어떤 공을 어떻게 던지느냐가 중요하다는 이동걸 코치의 이야기. 계획은 잘 준비됐다. 중요한 것은 선수들의 마음과 준비다.
어떤 강점으로 어떤 타자들을 상대할 수 있는지를 알아야 서로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타카하시 코치도 KIA 투수들에게 새로운 이정표가 될 수 있다. ‘낯섦’이 다카하시 코치의 가장 큰 장점이다.
새로운 시선으로 있는 그대로 선수들을 보고 길을 제시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신예 투수들은 한 단계 도약할 기회를 얻었다.
요즘 KBO리그에 또 KIA에 부족한 세밀함을 더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많은 구단과 선수들은 빅리그를 본다. 선 굵은 야구를 보면서 그들의 트레이닝 방법을 배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기꺼이 미국으로 가 공부를 하는 이들도 많다.
가장 오랜 시간 야구를 이어오면서 많은 기술을 접목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한국 야구에 가장 필요한 것은 세밀함인 것 같다.
견고하게 세밀하게 상대를 파고드는 힘이 부족하다. ‘제구’는 리그의 큰 숙제가 됐다.
그런 면에서 보면 가까운 일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카하시 코치는 선수들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주고, 자신에게 맞는 것을 고르게 할 계획이다.
그는 “선수들에게 맞을지 안 맞을지 모르겠지만 일본에서 했던 기본을 알려줄 것이다. 한국에서 배운 것도 있을 것이다. 많은 선수들이 미국 야구를 좋아한다. 선수들에게는 세 가지의 선택지가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선수들이 알고 있는 ‘한국 야구’와 본인이 경험한 일본 그리고 미국 야구를 넓게 펼쳐 놓고 답을 찾아가겠다는 타카하시 코치.
일본 프로야구(NPB)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서 활약했던 그는 40세의 나이에 뉴욕 메츠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 무대에 오르면서 화제를 모았었다.
평범하지 않았던 그의 여정은 넓은 시선으로 선수들을 바라보게 한다.
늦은 나이에 빅리그에 도전했던 다카하시 코치. 그에게는 도전이기도 했지만 자신을 냉정하게 보는 시간이었다.
“도전도 도전이고, 은퇴할 이유를 만들고 싶었다. 은퇴할 목적도 있어서 도전했는데 통했다”라면서 웃은 타카하시 코치는 “일본에서 했던 야구가 전 세계에서 통한다라는 걸 배웠다”고 돌아봤다.
자신을 알기 위해, 선수로서의 한계점을 확인하기 위해 또 마운드와 작별하기 위해 떠난 ‘은퇴 여행’은 그에게 ‘빅리거’라는 타이틀을 주었다.

타카하시 코치는 한국 선수들의 겉모습에서 강점과 단점을 동시에 봤다.
그는 “체격을 보니까 골격이 다르고 확실히 힘도 있다. 하지만 힘이 있으니까 상체로 해결하려고 한다”고 하체를 활용하지 못하는 투구를 이야기했다.
예전에 비해 요즘 선수들의 체격은 커졌다. 하지만 세밀함은 떨어진다. 그 조화를 찾는 게 요즘 선수들의 숙제가 됐다.
스포츠에서 지겹도록 이야기하는 것은 하체다. 하체가 중요하지 않은 종목은 없다.
각기 다른 구종으로 다른 유형의 피칭을 하지만 모든 선수가 동일하게 갖춰야 하는 것은 하체를 활용한 세밀함이다.
타카하시 코치는 “하체를 잘 활용해야 한다. 반복적으로 하체를 활용해 똑같이 피칭을 재현해야 한다. 던질 때마다 달라지면 안 된다”고 말한다.
마운드 위에서의 작은 변화가 홈플레이트 앞에서는 큰 변화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기계적으로 피칭 동작을 연결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일단은 하체가 안정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또 한 치의 오차도 없는 피칭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면서 습관을 들어야 한다.
하체라는 확고한 바탕 아래 타카하시는 세 가지 옵션으로 선수들의 강점을 끌어내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싸우는 법을 가르치기 위한 코치들의 준비는 끝났다. 이제 선수들이 답을 찾을 차례다.
나는 어떤 투수인가.
<광주일보 김여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