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대신 말라위-부탄서 ‘행복 양궁’…박영숙이 행복을 찾는 법[이헌재의 인생홈런]
198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은 한국 양궁이 올림픽 무대에 첫선을 보인 대회다. 당시엔 단체전 없이 남녀 개인전만 열렸는데 한국 여자 대표팀은 서향순이 금메달, 김진호가 동메달을 따내며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렀다.
그리고 여자 대표팀엔 한 선수가 더 있었다. 지난달 파리 올림픽에서 부탄 양궁 대표팀을 이끈 박영숙 감독(64)이다.
그의 이름이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건 여자 대표팀 선수들 중 유일하게 메달을 따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회 전부터 어깨 부상에 시달리던 그는 17위로 대회를 마쳤다. 박 감독은 “올림픽을 앞두고 실시한 호주 전지훈련 때 활의 파운드를 올리는 시도를 하다가 부상을 당했다. 팔을 제대로 들어 올리기도 힘들어 밥도 왼손으로 먹을 정도였다. 돌이켜 보면 왜 그때 욕심을 부렸나 싶다”고 했다.
올림픽 메달과는 인연이 없었지만 그도 엄연히 한국 양궁 초창기의 ‘명궁’ 중 한 명이었다. 한국 양궁이 세계에 처음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197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에서 김진호가 5관왕에 오르면서부터였는데 당시 박영숙은 단체전에서 김진호와 함께 금메달을 합작했다.
1983년 로스앤젤레스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도 그는 김진호와 함께 금메달을 따냈고,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도 수확했다.
박 감독은 “베를린 세계선수권 대회가 열린 곳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생님이 마라톤 금메달을 땄던 베를린 스타디움이었다”며 “현지 동포들이 먹을 걸 잔뜩 싸 왔다. 현지 기자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뭘 먹고 그렇게 활을 잘 쏘느냐’고 질문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출전했던 양궁 여자 대표 3인방은 이후 각자의 길에서 멋진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김진호는 한국체육대학교 교수로, 서향순은 미국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양궁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박 감독 역시 자신이 평생 원했던 일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 바로 양궁이 보급되지 않은 나라들을 돌며 양궁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는 “은퇴 즈음에 대학 학보사 인터뷰에서 ‘다음 꿈이 뭐냐’는 질문을 받는 적이 있다”며 “당시 어려운 나라에 가서 양궁을 가르치고 싶다고 답했는데 실제 내 삶이 그런 식으로 흘러가고 있다”며 웃었다.
처음부터 그가 외국 생활을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1987년을 마지막으로 선수에서 은퇴한 뒤 그는 국내에서 초중고교 양궁팀을 가르치며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불현듯 ‘국제심판’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단다.
곧바로 서울 종로에 있는 영어학원에 등록했다. 마흔 가까운 나이에 제대로 시작한 영어가 쉬울 리가 없었다. 처음엔 영어 단어 하나 외우기가 그렇게 힘들었다. 하지만 그는 끈질기게 영어를 파고들었다. 대한양궁협회 전임 지도자 생활을 하던 그는 오전에 훈련이 끝나면 후엔 곧장 학원으로 달려가 영어 공부에 몰두했다. 그는 “종로에 있던 영어학원을 다 쓸고 나중엔 강남에 있는 영어학원을 다니면서 공부를 했다”고 말했다. 2007년부터 1년간은 아예 영국 런던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각고의 노력 끝에 그는 2006년 아시아 대륙 심판 시험을 통과했고, 2007년에는 마침내 목표로 했던 국제심판 자격증을 받았다. 그리고 그해 독일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심판으로 데뷔했다.
늦게 배운 영어가 그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줬다. 2009년 그는 싱가포르 대표팀 감독을 맡았고, 이듬해인 2010년에는 이탈리아 여자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했다.
두 나라에서 그는 상당히 좋은 대우를 받았다. 특히 2012년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 양궁에 대적인 투자를 했던 이탈리아는 “런던 올림픽에 출전하게만 해주면 뭐든지 다해 주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그에겐 실력도 있었지만 운도 따랐다. 그가 이끈 이탈리아 여자 대표팀은 그해 자국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위를 했다.
석동은 감독이 이끈 이탈리아 남자 대표팀은 2012 런던 올림픽 단체전에서 금메달까지 목에 걸었다. 여자 대표팀은 메달은 따진 못했지만 상위권 성적을 올렸다.
이탈리아 협회는 당연히 그에게 재계약을 제안했다. 하지만 그는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했다. 아프리카 최빈국 중 하나인 말라위 대표팀을 맡기로 한 것이다.
대우와 조건은 이탈리아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2014년부터 그는 말라위에서 거의 무보수로 현지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정말 말도 안 되게 좋은 대우를 받았다. 이후엔 돈을 받지 않더라도 어려운 나라를 도와야겠다고 결심했다”며 우연한 기회에 말라위를 찾았는데 사람들도, 환경도 너무 좋았다. 딱 1년만 봉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그게 2년이 되고 3년이 됐다”며 웃었다.
그가 처음 찾은 말라위엔 신문도 TV도 없었다. 제대로 된 장비가 없어 과녁도 달걀판과 폐지는 섞어서 만들었다. 1 더하기 1도 잘 모르던 아이들에게는 점수 계산을 위해 산수를 가르쳤다.
그에게 양궁을 배운 10여 명의 아이들 중 유독 말이 없는 아이가 하나 있었다. 할 줄 아는 영어는 “굿모닝” 밖에 없었다. 주위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집중력이 가장 좋았고, 활도 가장 잘 쐈다. 알레네오 데이비드라는 이름의 그 소년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양궁 개인전에 출전했다. 그는 말라위 역사상 올림픽 양궁에 출전한 최초의 선수였다.
박 감독의 다음 행선지는 ‘행복한 나라’ 부탄이었다. 세계양궁협회(WA)에서 부탄을 이끌 지도자를 공모했지만 지원자를 찾기가 어려웠다. 당시 부탄이 제시한 월급은 700달러(약 90만 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도 처음엔 주저했다. 돈 때문이 아니라 고산병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한국에 잠시 머물 때 가슴 통증으로 찾은 병원에서는 ‘가능한 한 비행기를 타지 말고 고산지대를 피하라’고 조언했다.
그래도 그는 견학을 겸해 부탄을 찾았다. 마침 경기가 열린 지방 도시를 가기 위해선 꼬박 이틀을 산길을 가야 했는데 한 봉우리 정상에서 그는 평생 처음 본 절경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걱정했던 고산병도 없었다. 그렇게 그는 부탄 감독으로 부임했다.
2021년 도쿄 올림픽 때 그가 가르친 여자 선수가 부탄 양궁 역사상 처음으로 자력 출전권을 따냈다. 그리고 올해 파리 올림픽에는 남자 선수 한 명과 함께 출전했다. 두 명 모두 메달권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출전 자체가 기적적인 일이었다.
몇 해 전 그는 대장 일부를 잘라내는 큰 수술을 받았다. 중학생 때 받은 맹장수술의 후유증으로 장기가 유착돼 대장 일부를 잘라내야 했다. 그 여파로 몸무게가 10kg 넘게 빠졌다.
하지만 자신의 원하는 일을,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하는 그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얼굴이 훨씬 좋아졌다”는 인사를 받곤 한다.
그는 ‘소식(小食)’과 ‘편안한 마음’을 원인으로 꼽았다. 박 감독은 “부탄은 먹을 게 그리 풍부한 편이 아니다. 덕분에 소식을 한다. 야채 위주의 간단한 식사를 하고 단백질은 달걀로 섭취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행정적인 일처리 등이 한국에 비하면 무척 느리다. 하지만 사람들과 환경이 좋다보니 정신적으로 무척 편안하다”고 말했다.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지도력을 인정받고 있는 그는 지금도 여러 나라에서 감독직 제의를 받고 있다. 그중에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유럽 국가도 있다. 하지만 그는 일단 부탄에서 감독직을 이어갈 생각이다. 향후에도 선진국보다는 도움이 필요한 나라에서 양궁을 가르칠 생각이다.
박 감독은 “언제까지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리 길지 않은 인생을 좀 더 알차게 보내며 뜻깊은 일을 하고 싶다”며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시기가 되면 온라인 등을 통해서 도움이 필요한 곳에 양궁 봉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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