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이 칼럼] 새 정부에 기대하는 ‘지속 가능한 복지국가’

이상이 제주대 의과대학 교수 2025. 5. 29.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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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스(John Rawls)는 그의 저서 ‘정의론’에서 ‘정의로운 사회 질서’를 만드는 데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정의의 원칙을 제시했다. 제1원칙은 평등한 자유의 원칙인데, 구성원들의 자유가 서로 충돌하지 않는 한 모두는 동등한 기본적 자유들을 가장 광범위하게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제1원칙(자유권의 보장)은 불가피하게 심각한 불평등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의의 다른 원칙을 통해 이런 불평등을 사회적으로 인정되고 수용될 만한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 조건이 정의의 제2원칙이다.

제2원칙의 요점은 정의로운 기본 구조 내에서 허용될 수 있는 불평등으로부터 모든 사람이 이익을 얻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정의의 제2원칙은 정당한 불평등의 조건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제2-a원칙인 ‘차등의 원칙’(최소 수혜자에게 최대의 이익)과 제2-b원칙인 ‘공정한 기회균등의 원칙’(직책과 직위가 모든 사람에게 개방)으로 구성된다. 이들 원칙 간에는 엄격하게 우선순위가 매겨지며, 제1원칙>제2-b원칙>제2-a원칙의 축차적 순서를 따른다. 따라서 공정한 기회균등의 원칙은 차등의 원칙보다 우선 충족되어야 한다.

이후 롤스는 ‘정의로운 저축의 원칙’을 추가함으로써 제2원칙에 일정한 제한을 두었다. 이것은 한 사회가 후속 세대들을 위해 어느 정도 저축해야 하는지를 다룬 것인데, 각 세대가 기존 문화와 문명의 장점들을 보존하고 이미 세워진 정의로운 제도들을 해치지 않고 유지해야 할 뿐만 아니라 각 시기 동안에 적절한 양의 실질적인 자본을 축적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저축은 기계나 다른 생산수단에 대한 순수 투자에서부터 학문과 교육에 대한 투자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형태를 가질 수 있다. 이 원칙은 정의로운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강조한 것이다.

롤스가 구상한 정의로운 나라는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조화롭게 작동하는 자유민주주의 헌정 질서인데, 이런 나라를 ‘복지국가’라고 부른다. 경험적으로 이런 나라는 국민의 행복 수준이 높다. 이것이 필자가 대선 이후 새 정부에 ‘지속 가능한 복지국가’를 기대하고 요구하는 이유다.

우리나라 헌법 제10조(행복추구권)를 보장하려면, 국가는 행복을 추구하는 모든 국민이 실제로 행복할 수 있도록 법·제도적 여건을 확립해야 한다. 이는 국민의 삶과 행복을 중심으로 경제·일자리·복지가 효과적으로 선순환하는 지속 가능하고 미래지향적인 경제·복지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정의의 원칙에 따른 자유민주 헌정 체제인 ‘국민 행복 복지국가’가 바로 그것인데, 여기서는 보편적 복지, 적극적 복지, 공정한 경제, 혁신적 경제라는 복지국가의 4가지 구성 요소가 유기적으로 작동한다. 각 구성 요소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보편적 복지이다. 이것은 누구라도 일생에 걸쳐 복지가 필요한 때 받는 소득 보장(사회보험, 사회수당, 공공부조)과 사회서비스 보장(보육 교육 의료 요양 등)을 말한다. 보편적 복지는 인간 존엄을 위한 물질적 조건과 실질적 기회 평등을 보장하는 장치로 경제·사회적 격차를 줄여주고, 인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의 확충으로 역동적 경제 발전에 이바지한다. 그런데 구성원 모두에게 동일 금액을 나눠주는 기본소득은 필요 기반의 보편적 복지가 아니다.

둘째, 적극적 복지이다. 이것은 사람에 대한 적극적 투자로 국민을 더 유능하고 창의적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적 장치다. 적극적 복지는 현금을 지급하는 데만 머무는 소극적 복지를 벗어나 지식 기반 경제에 능동적으로 조응하려는 경제와 복지에 대한 통합적 관점이다. 따라서 직업훈련과 평생교육을 포함한 적극적 노동 시장 정책에서 중요한 성과를 낳게 된다.

셋째, 공정한 경제이다. 이것은 경제민주화와 노동 체제의 재편이라는 두 가지의 큰 개혁 조치를 포함한다. 특히 경제민주화는 경제의 불공정 체제를 개혁하자는 것인데, 책임성 강한 복지국가가 경제와 시장에 민주적으로 개입해서 불공정에 대한 규제와 중소기업 지원을 통해 경제성장과 소득의 일차 분배를 개선하려는 개입주의 전략이다.

넷째, 혁신적 경제이다. 이것은 위의 세 가지 구성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작동함으로써 달성되는 경제 체제의 성과물이다. 즉, 보편적 적극적 복지 체제의 확립과 경제민주화와 노동 체제의 혁신을 통한 공정한 경제 체제의 확립은 노동자 등 보통 사람들의 실질 소득과 삶의 질을 높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혁신 경제성장을 위한 동력을 창출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정의로운 저축의 원칙’이 의미하는 ‘지속 가능성’이다. 초저출생과 초고령사회의 쓰나미에서 지속 가능성을 높이려면 노인 연령을 상향 조정하고 고령자 고용보장을 통해 늘어난 건강 수명만큼 더 길게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국민연금에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하고, 위기가정과 저소득 계층 보호를 강화하고, 건강주치의 제도와 지역사회 통합 돌봄을 결합해 지역사회 중심의 효과적 효율적 사회서비스 제공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차기 정부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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