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는 '이스탄불'을...'유나이티드'는 '시티'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회수 2023. 6. 5. 09:5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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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이스탄불! 우리는 이스탄불로 간다네~"

런던 북부 니스덴역에서 웸블리 파크역으로 향하는 언더그라운드 주빌리 라인 객차 안. 갑자기 이스탄불 노래가 울려 퍼졌다. 객차 안에 가득했던 맨체스터 '시티' 팬들이 부르는 노래였다. 누구에게 들려주는 노래일까. 같은 객차 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을 향해서였다.

6월 3일 오후 1시 30분. 화창한 날씨 속 주빌리 라인 언더그라운드 객차는 웸블리 파크역을 향하고 있었다. FA컵 결승전을 보러 가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시티'와 '유나이티드'의 팬들이 한 데 뒤섞여 있었다.


사실 살벌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시티'와 '유나이티드' 팬들은 서로 격렬하게 싸우지 않는다. 경기장 안에서만 서로 욕하고 노래와 구호로 조롱할 뿐이다. 경기장 바깥으로 나가면 평화롭다. (물론 몇몇 취한 친구들이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축구를 핑계로 폭력을 일삼으려는 일탈분자들이  서로를 향해 폭력을 쓰려는 경향도 있다. 그렇지만 양 팀 팬들 사이에서 그렇게 크게 심각한 상황이 발생하는 일은 잘 없다) 맨체스터 더비를 할 때도 경찰들이 서로의 동선 정도만 정리할 뿐이다. 경찰들의 경계수위도 높지 않다.

그럴 수밖에 없다. '유나이티드'의 최대 라이벌은 리버풀이다. '레즈 더비' 혹은 '노스웨스트 더비'라 불리는 양 팀의 대결은 장외부터 살벌하다. 경찰들도 이 두 팀이 맞붙을 때가 되면 초긴장 상태다. 맨체스터 혹은 리버풀 역에서부터 원정팬들을 경찰들이 에스코트한다. 경기장 갈 때까지 항상 경찰들이 함께한다. 철저하게 동선을 분리하고, 철저하게 떼어놓는다. 그만큼 위험 요소들이 많다.

참고로 리버풀과 에버턴의 '머지사이드 더비' 역시 그리 치열하지는 않다. 리버풀이라는 동네는 좁다. 앞집 '칼럼'은 리버풀 팬이다. 그런데 칼럼 아빠 '앤서니'는 에버턴 팬이다. 뒷집 '루이스'는 에버턴 팬이지만 아빠인 로빈은 리버풀을 사랑한다. 맨체스터 더비도 이와 비슷하다. 같은 플랏 내에서도 앞집은 유나이티드를 뒷집은 시티를 응원한다. 경기장에서만 서로 조롱하지만, 경기가 끝나고 동네 펍에 가면 같이 맥주를 기울인다. 자신들의 선수와 감독에 대한 볼멘소리를 터뜨리곤 한다.

성적의 불균형도 한몫했다. 유나이티드는 전국구 팀이었다. 1부리그를 씹어먹었다. 유럽 무대도 호령했다. 그만큼 맨체스터 외부의 팬들도 많다. 유나이티드의 홈경기가 열리는 날, 가장 빨리 매진되는 기차 티켓은 런던 유스턴-맨체스터 피카딜리 구간이다. 반면 시티는 조용했다. 1부와 2부를 오갔다. 프리미어리그 출범 후에도 시티는 1부와 2부를 오르락내리락했다. 철저히 동네 팀이었다. 시티의 홈경기가 열릴 때는 철도 시외 구간은 비교적 조용하다. 원래 시티의 홈구장인 메인 로드(2003년까지 썼음)는 맨체스터 남부에 있었다. 맨체스터 시내에서 남부로 향하는 버스에만 사람들이 다소 많을 뿐이었다.

2008년. 시티는 부잣집 아들이 됐다. 아랍에미리트(UAE) 만수르가 인수했다. 돈을 쏟아부었다. 2011~2012시즌 아구에로의 결승골에 힘입어 44년 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시티'와 '유나이티드'의 위상은 서서히 역전되기 시작했다. 시티는 리그 우승을 차지한 2011~2012시즌을 포함해 12시즌 동안 시티는 리그에서 7번 우승했다. 유나이티드는 2012~2013시즌 리그 우승 이후 리그 우승컵이 없다.

다시 주빌리 라인 객차 안. 시티 팬들과 유나이티드 팬들은 서로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웸블리 파크 역으로 다가서자 조금씩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유나이티드의 팬들이었다. 대표적인 응원가인 '글로리 맨유나이티드'를 부르며 흥을 띄웠다. 시티 팬들은 조용했다. 그러려니 했다. 웸블리 파크역에 다 와 갈 때쯤 시티 팬들이 그제야 노래를 불렀다.

"이스탄불! 이스탄불! 우리는 이스탄불로 간다네~"

시티는 FA컵 경기 일주일 후 유럽챔피언스리그(UCL) 결승전을 치른다. 장소는 튀르키예 이스탄불이다. 상대는 인테르 밀란이다. 유나이티드 팬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몇몇 유나이티드 팬들이 다른 노래를 부르며 맞대응하려고 했다. 그러자 시티 팬들도 다른 노래를 하나 불렀다.

"캄피오네~ 캄피오네~"

올 시즌 리그 챔피언은 자신들이라는 뜻이었다. 유나이티드 팬들은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웸블리. FA컵 결승전 경기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시티는 유나이티드를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들이 준비한 것을 마음껏 펼쳐 보였다. 3-2-4-1 전형. 올 시즌 자신들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전형을 들고 나왔다. 상대에 따른 변주도 하지 않았다. 그냥 자신들의 모습 그대로 들고 나왔다. 시티 팬들은 경기 시작 전 어깨동무를 했다. 피치를 등진 채 점핑하며 노래를 불렀다. 유나이티드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킥오프 휘슬이 울렸다. 일카이 귄도안이 중앙선에서 바로 오르테가 골키퍼에게 패스했다. 오르테가 골키퍼가 그대로 크게 볼을 차올렸다. 경기 킥오프에서 시티가 길게 차올리는 것을 본 적이 많지 않다. 준비된 시작 패턴이었다. 제대로 먹혔다. 얼링 홀란의 머리를 겨냥했다. 홀란이 떨군 볼을 케빈 더 브라이너가 머리로 밀어줬다. 귄도안이 그대로 후렸다. 멋진 궤적을 그리고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경기 시작 12초 만의골. FA컵 사상 최단 시간 골이었다.

시티는 특유의 스타일대로 경기를 펼쳤다. 패스를 돌리면서 유나이티드를 끌어냈다. 공간이 생기면 볼을 넣었다. 찬스가 나왔다. 슈팅도 시도했다. 공간이 없으면 중거리 슈팅도 과감히 시도했다. 상대가 유나이티드이건 아니건 상관없었다. 올 시즌 시티가 계속해오던 경기력 그대로였다.

변수가 발생했다. 전반 29분 44초. 폴 티어니 주심이 갑자기 휘슬을 불고 경기를 멈췄다. VAR을 선언했다. 정확히 48초전 상황을 비디오로 보겠다고 선언했다. 브루노가 올린 크로스를 완-비사카가 헤더로 처리했다. 같이 점프했던 그릴리시의 손에 맞고 볼이 튀었다. 핸드볼 파울 여부였다. 50여 초간 비디오를 본 티어니 주심. 30분 34초에 맨유의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브루노가 골로 연결했다. 1-1 동점이 됐다.

시티는 당황하지 않았다. 자신의 스타일대로 다시 주도권을 가져왔다. 홀란이 전방위로 움직였다. 바란 혹은 린델로프가 따라 내려왔다. 공간으로 더 브라이너가 들어갔다. 프레드가 따라붙었다. 더 브라이너와 프레드의 국지전이 벌어졌다. 49분 40초 프레드가 졌다. 파울을 범했다. 프리킥. 더 브라이너는 다른 패턴을 들고 나왔다. 앞선 몇 차례 프리킥에서 더 브라이너는 문전 앞으로 볼을 보냈다. 이번에는 뒤를 향했다. 귄도안이 그대로 발리슛을 때렸다.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50분 44초였다. 시티는 자신들이 준비한 패턴 가운데 하나로 결승골을 뽑아냈다.

유나이티드로서는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전력의 열세는 잘 알고 있었다. 시티처럼 자신들의 경기를 하기는 힘들었다. 철저히 상대인 시티 맞춤형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선제 실점은 각오했다. 다만 조금 빨랐을 뿐(12초)이었다. 자신들 나름대로 버텼다. 인내심을 발휘했다. VAR에 의한 핸드볼 파울 판정으로 페널티킥을 얻었다. 동점을 만들었다. 유나이티드의 머릿속에는 '연장전 그리고 승부차기'를 그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 전에 '세트피스에서 한 방만 들어간다면'이라는 꿈도 꿨을 것이다. 그러나 귄도안의 골이 들어갔을 때, 91분 7초 바란의 슈팅이 골대를 강타했을 때. 유나이티드의 바람은 물거품이 됐다.

시티는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시티 팬들은 '헤이 쥬드' 멜로디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 시티"

시티 선수들은 방방 뛰며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펩 과르디올라 시티 감독은 "마침내 트레블을 입 밖에 꺼낼 수 있는 시간이 왔다. 영광의 트레블까지 한 경기 남았다"라고 했다. 팀의 전력 그리고 사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에릭 텐 하흐 유나이티드 감독은 "오늘의 패배는 우리를 더욱 잘하게 할 것"이라며 "오늘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다음 시즌을 위한 긍정적인 부분이 컸다"고 말했다.


기사를 마감하고 경기장을 나왔다. 파이널 휘슬 후 1시간 30분이나 지난 시간이었다. 런던 시내로 가는 주빌리 라인 안 객차. 시티와 유나이티드 팬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시티 팬이 먼저 내렸다. 유나이티드 팬과 주먹 악수를 했다. 서로 한 마디씩 나눴다.

"치어스. 굿 매치"

"치어스. 굿 럭 인 이스탄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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