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경제학상 관점서 본 ‘의사파업’ [한겨레 프리즘]

이경미 기자 2024. 10. 29.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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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경미 | 인구·복지팀장

지난해 11월 기자는 미국의 한 대학에서 다론 아제모을루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의 강연을 들었다. 당시 세계적 관심사였던 인공지능(AI) 기술 혁신의 위험성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에 대해 평소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던 그의 견해를 듣는 자리였다. 그는 예상대로 ‘올바른 제도’와 ‘힘의 균형’을 설명했다. 인공지능 기술 혁신 자체가 모든 사람에게 혜택을 준다는 낙관주의는 잘못됐으며, 기술 혁신에 따른 부와 권력이 소수에 집중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기술의 방향은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 그건 과학의 발견으로 결정되는 게 아닌 사회적 선택”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다른 정책, 다른 규범, 다른 규제와 제도를 선택해 더 나은 것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그때 나는 한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제도를 통한 사회적 선택’은 ‘제도를 바꾼다’는 것인데 과연 말처럼 쉬운 일인가. 1년 전 의문은 이번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그가 선정되는 것을 보고 더 구체적으로 재생됐다.

한국은 지금 ‘새로운 의료인력 수급제도 도입을 위한 사회적 선택’을 둘러싸고 내홍을 겪고 있다. 초기에는 의료인력 수급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았다. 정부는 의료개혁 과정에서 제도적 선택을 해왔다. 진료지원 간호사를 합법화하는 간호법 제정은 야당의 동의를 구해 입법된 대표 사례다. 의료개혁이 사회적 선택인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의료개혁에 반대하는 의대생들의 수업 거부가 1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학은 이들을 휴학으로 처리한다지만 그들이 내년에 수업을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다. 의사 2000명을 증원하려다 더 많은 예비 의사를 잃게 될 수도 있다. 제도를 곧이곧대로 적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의료계와 대화 채널을 구축할 수도 없다. 강경파들은 내년 의대 증원 계획 전면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실제 의사들은 2020년 코로나19 유행 당시, 의사 수요가 시급히 요구되던 상황에서도 정부의 의대 정원 400명 증원 추진을 무산시킨 바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정부의 의료개혁 방법론을 문제 삼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제도의 사회적 선택 이외에 무슨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얘기인가. 올해 노벨 경제학상의 실증대로라면 제도를 통해 ‘사회적 선택’을 한 정부의 의료개혁은 타당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의료계의 반대는 사회적 선택조차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기자가 보기에 노벨 경제학상 독법에서 놓친 것이 있다. ‘제도 가설’에 비해 ‘힘의 균형’을 간과하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아마도 노벨상의 선정 기준이 연구방법론의 우수성에 주목하다 보니 그랬을 법하다. 제도를 통한 사회적 선택의 비중을 높였을 테니까.

한국 의사들의 높은 위상은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사회·경제적 위상만이 아니다. 티브이만 켜면 건강 프로그램이 즐비하고 의사들이 영양은 물론 생활습관까지, 삶의 영역에서 전문가로 활약하는 중이다. 초등학생 ‘의대반’ 과외 열풍은 대한민국 미래에 재앙이다. “의사가 되면…” 하는 환상, 돈 많이 벌고 특권계층으로 대접받는다는 환상이 우리 사회에 팽배한 상황에서 과연 제도개혁이 가능할까.

의사 집단이 국가의 사회적 선택마저 무산시킨다면 그것은 힘의 균형이 무너진 것이다. 의사 집단이 무소불위의 힘을 가졌다는 뜻이다. 힘의 균형이 무너진 상황에서는 제도에 의한 사회적 선택은 기대하기 어렵다. 올해 노벨상의 공적에 대해 대부분 전문가들이 ‘제도 가설’의 함정에 빠져 이 부분을 지적하지 못했다. 제도 개혁만 하면 가능할 줄 알았던 한국 정부와 사회 또한 결과적으로 함정에 빠진 것이다. 지금이라도 의료개혁이 사회적 선택이라는 사실만은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노벨상 선정을 계기로 세계적 가치로 공유된 것이기도 하다. 아무리 힘의 균형이 무너졌다 해도 힘의 균형을 되찾는 것 또한 사회적 선택으로 가능할 일이다.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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