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이슈를 헤집고 다니는 외줄타기 영화

▲ 영화 <파일럿>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알려줌] <파일럿> (Pilot, 2024)

일반적으로 7월 말, 8월 초는 대표적인 한국 영화 '텐트폴' 시기로, 각 배급사는 자신들이 준비한 최고의 영화를 내놓으면서, 최대한 많은 관객을 불러 모으기 위한 전략을 세워 왔었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 이러한 전략도 변화가 필요했다.

대규모 자본을 투입해 공식처럼 만들어진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는 맥없이 '흥행 참패'를 경험해야 했고, 오히려 비수기라 여겨진 영화들이 '천만'을 달성하는 변수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파일럿>은 '텐트폴' 시기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코미디 영화였는데, 손익 분기점인 약 220만을 앞둔 작품이 됐다.

<파일럿>은 마튼 클링버그 감독이 연출한 2012년 스웨덴 영화 <파일럿>을 원작으로 한다.

10여 년의 시간이 흐른 원작처럼, 작품의 주인공은 항공사 기장 '한정우'(조정석).

그는 공군사관학교 수석 졸업 출신, 최고의 비행 실력, 여기에 수려한 외모로 '한국항공'의 스타 파일럿 자리에 오른다.

'유퀴즈' 방송에 출연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던 그는 회식 자리에서 한 성희롱 발언이 공개되면서 해고되는 위기에 몰린다.

설상가상 '정우'는 자신과 아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로 이혼까지 하게 된다.

'양육비'를 내야 했지만,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한정우'는 빈털터리 신세가 된다.

어떻게든 직업을 구해야 했던 상황에서, '한정우'는 ASMR 뷰티 유튜버 여동생 '한정미'(한선화)의 도움을 받아 여장을 하고, 이름까지 빌려 '한국항공' 계열사인 '한에어'에 부기장으로 취업한다.

<파일럿>은 첨예한 한국 사회의 이슈를 헤집고 다니는 외줄타기 코미디 영화다.

'최대의 관객에게 만족감을 줘야 하는 '상업 영화'에서 어떻게 하면 잡음을 최소화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짙게 묻어나는 영화가 된 것.

그렇기 때문에 <파일럿>은 철저히 조정석의 '원맨쇼' 작품으로 그려진다.

이미 뮤지컬 <헤드윅> 등을 통해 이 분야에서 '전문성'을 보여줬던 조정석은 철저히 망가지기로 작정한다.

'한정우'라는 캐릭터가 영화 속 세상에서 너무나도 쉽게 '남자임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건 미스터리 같지만, 영화적 허용임을 감안하면 관객의 웃음을 자아낼 치트키를 조정석은 영리하게 수행한다.

물론, <파일럿>은 낯선 소재의 작품이 아니다.

아내에게 이혼당한 남자가 아이들을 보기 위해 할머니 가정부로 여장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미세스 다웃파이어>(1993년), 역시 할머니로 분장해 위장 수사를 펼치는 FBI 요원의 이야기를 그린 <빅 마마 하우스>(2000년), 인종, 성별 문제를 거세게 풍자하던 <화이트 칙스>(2004년) 등 다양한 사례가 있는 상황이니.

그래서 <파일럿>은 "꽃다발같이 아름다운 승무원"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 그야말로 나락까지 갈 수 있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걸(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보여주며, 메시지를 던져 놓는다.

그 메시지가 얄팍하게 보일 수는 있지만, 어느 정도 이런 상황이 "잘못되었다"라는 걸 상업 영화에서 꺼내 놓은 것은 나름대로 의미 있는 시도라 할 수 있겠다.

이는 이주명이 연기한 '윤슬기'라는 캐릭터를 통해 강조된다.

신념도, 가치관도 뚜렷한 만큼 언제 어디서나 솔직하고 당당한 태도를 지닌 '윤슬기'가 이후 겪는 상황은 딱 현재 한국 사회의 모습을 투영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슬기'를 맡은 이주명은 "자기감정에 솔직하면서도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캐릭터여서, 가장 닮고 싶은 부분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라 이러한 점을 잘 표현하고자 했다"라면서, 영화의 의도를 더욱 강조해 냈다.

다만 장남인 에디터의 입장에서 보면, <파일럿>은 장남인 주인공이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 '성인지 감수성'보다 더욱 진하게 녹여진 작품으로 읽었다.

작품을 연출한 김한결 감독도 "늘 자신을 위한 선택만 해왔던 사람이, 특별한 경험 이후 비로소 자신과 가족들을 돌아보게 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라고 언급한 것처럼, 기어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나아가는 '한정우'의 모습이 부러웠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파일럿>은 대규모 자본을 투입한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자취를 감추고 있는 현재 극장가에서, 다수의 관객과 만날 수 있는 도전장을 내밀기에는 나쁘지 않은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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