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바이오 초격차’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바이오로 제2의 반도체 신화를 구현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렇지만 바이오산업은 불확실성이 큰 산업 중 하나입니다. 향후 삼성이 마주칠 위기와 기회를 분석해보겠습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오는 2030년까지 7조5000억원을 투자해 ‘바이오 초격차’를 실현하겠다고 한 이유 중 하나는 글로벌 시장에서 CDMO(위탁개발생산, CMO(위탁생산)와 CDO(위탁개발)의 합성어) 산업의 발전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CDMO 산업의 발전은 합성의약품 시장에 쏠려 있는 무게 중심이 생물의약품 시장으로 이동하고 있기에 가능하다.
CDMO 산업은 분명 발전 가능성이 큰 분야지만 여러 장애요인과 변수도 있어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진 않는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경쟁자가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격차를 벌려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겠다는 전략을 계획 중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계획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는 변동폭이 큰 글로벌 공급과 수요, 기술 발전에 따른 패러다임 변화, 불확실성이 높은 규제 환경 등이 꼽힌다.
바이오시밀러 포트폴리오 뛰어넘은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시밀러를 생산하는 기업이 아닌, 생물의약품을 위탁개발·위탁생산하는 기업이다. 고객사의 신약 후보 물질을 위탁개발할 수 있으며 위탁개발된 제품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위탁생산하는 구조다.
그간 조용히 성장하던 CMO 시장은 바이오시밀러(기존에 개발된 생물의약품과 동등하다고 인정되는 생물의약품) 제품군의 글로벌 확산으로 인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특허 만료 등으로 인해 고부가가치의 생물의약품에 대한 바이오시밀러 개발이 가능해지면서 여러 제약사들이 바이오시밀러를 개발, 시장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제약사가 바이오시밀러 개발에 뛰어드는 가장 큰 이유는 매출 증대지만, 이외에도 제품 라인업 보강, 시장 점유율 방어 등의 이유도 있다.
바이오시밀러가 개발되면서 혜택받는 환자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보건의료빅데이터개방시스템을 통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강직성척추염 연도별 환자수는 2012년까지 정체되어 있다가 2013년부터 전년 대비 연평균 5% 이상 환자가 증가했다.

한국얀센의 강직성척추염 치료제인 레미케이드가 2012년까지 국내 강직성척추염 시장을 장악했다면, 2013년 이후부터는 바이오시밀러인 셀트리온의 ‘램시마’가 개발되면서 그 환자군이 넓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다른 치료제들이 많아진 점도 있다. 일반적으로 치료제 옵션이 많아지면 환자도 늘어난다.
결국 바이오시밀러의 개발은 환자에게 치료선택권을 늘려줌과 동시에 치료접근성도 개선했다. 이에 따라 수요도 함께 늘어났다. 수요가 많아지면서 믿을만한 기업에 생산을 맡기는 경우가 늘어나게 됐다. 이는 곧 CMO 산업의 성장 가능성 증가로 이어졌다. 국내 대기업의 CMO 신규 진입은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의 생물의약품 생산량 확대(바이오시밀러 포함)를 기대하며 뛰어든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포트폴리오는 위탁생산뿐 아니라 위탁개발 서비스까지 갖췄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의약품 개발 및 선정 단계부터 임상 및 상업 생산까지 상업화를 최우선 목표로 프로젝트별 전담 팀을 투입, 고객사 의약품의 임상단계 뿐 아니라, 나아가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상업 생산을 적극 지원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대신 개발해 시장에 출시된 신약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삼성바이오로직스 공장에서 생산된다. 의약품은 제조소를 변경하려면 허가 변경 등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위탁개발을 통해 위탁생산 매출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만들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생산하는 생물의약품은 바이오시밀러와 신약을 가리지 않게 되는 이유다.
바이오 초격차가 겨냥하는 진짜 목적은?
국내 기업 중 CMO로 성장 기틀을 마련한 대표적인 기업이 셀트리온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셀트리온은 현재 CMO 사업 영역이 대폭 축소됐다. 일부 해외 제약사의 제품 후공정(패키징) 등을 하고 있지만, CMO 사업은 거의 없는 수준이다. 램시마 등 자체 바이오시밀러를 개발한 이후부터 셀트리온은 자사 제품 판매에 역량을 집중했다. 작년 한 해 셀트리온이 생물의약품을 통해 기록한 매출액은 약 1조5925억원이다. 이 중 CMO 사업으로 기록된 매출은 거의 전무하다.
셀트리온이 램시마를 개발하기 전 매출의 대부분은 CMO가 차지했다. 글로벌 제약사인 BMS, 사노피-아벤티스 등이 고객사였다. 2009년 셀트리온의 매출액은 1455억원으로, 이중 CMO 매출이 1411억원이었다. 이 매출은 셀트리온의 생물의약품 제조소 확충에 재투입되고, 이 시설은 램시마 등 셀트리온의 자체 바이오시밀러 생산기지로 탈바꿈한다.
셀트리온이 CMO 사업을 사실상 접은 이유는 CMO 산업이 마진 싸움의 장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셀트리온 관계자는 “결국은 마진 싸움”이라며 “생물의약품을 제조해 공급할 수 있는 기업과 그 용량이 늘어나면서 공급과 수요의 관계가 불확실해졌다”고 밝혔다.
실제로 셀트리온이 작성한 2009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단백질의약품(생물의약품)은 가격적인 측면에서 복잡한 공정과정으로 인한 높은 제조단가와 소수의 경쟁제품으로 인한 시장 지배력 강화로 높은 약가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 단점으로 지적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바이오시밀러의 시장 출시로 약가가 내려가고, 공급처도 늘어나면서 공급 중심의 시장에서 수요 중심의 시장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삼성의 ‘초격차’ 전략은 시장의 경쟁 상황을 역이용한다. 과거 삼성전자는 일본 반도체 기업들이 고품질 D램 생산에 몰두하는 동안 D램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대량생산해 공급했다. 원가를 낮추고 시장 점유율을 확대해 일본을 따라잡는 것을 넘어 글로벌 반도체 대표 기업으로 부상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전략도 이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분석된다. 가격 경쟁이 격화되는 CMO 시장에서 시장 점유율을 확대해 성장하겠다는 계획으로 풀이된다. 다만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막대한 비용을 투입한 이후 저마진 산업 구조에서 상당기간 동안 버텨야 한다. CMO가 규모의 경제라는 점을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잘 알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의료비 증가로 골머리를 앓는 각 국가가 원하는 그림이기도 하다. 같은 약이라면 좀 더 싼 약을 공급해 국가 의료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의도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이후 지속적으로 제네릭의약품(복제의약품)과 바이오시밀러 및 저렴한 의약품에 대해 접근성 향상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기존 오리지널의약품의 약가를 낮추기 위해 의약품 허가심사기관인 FDA(미국 식품의약국)와 미국 특허청에 협력 체계를 만들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같은 비용으로 좀 더 많은 환자들이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각 국 정부의 공통된 목표다.
기술 패러다임 변화에 취약…불확실한 규제 환경 '관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초격차 전략은 기술 발전으로 인해 의약품 패러다임이 변화하면 이에 빠르게 대응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주로 생산하는 생물의약품은 항체의약품으로 불리는 단백질의약품이다. 이러한 단백질의약품이 합성의약품보다 효과가 뛰어나고 부작용이 적긴 하지만, 중증 질환을 생물의약품 하나로 완치가 가능한 경우는 그리 많진 않다.
이러한 분위기를 바꾼 제품군 중 하나가 바로 CAR-T(키메라 항원 수용체 T 세포) 치료제다. 환자의 혈액에서 면역세포인 T 세포를 분리해 유전학적으로 조작, 암세포를 죽일 수 있도록 만든 세포유전자치료제다. 최근 주사 한 방에 완치가 가능하다고 소개되는 치료제 유형이기도 하다.
CAR-T의 단점은 복잡한 생산공정이다. 환자 혈액을 채취하고 이를 가공해 다시 환자에게 주입해야 한다. 생물의약품을 제조하는 시설인 바이오리액터의 크기가 클 필요가 없다. 대신 많은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생산하는 생물의약품과는 거리가 있다.
mRNA(메신저리보핵산) 백신도 바이오리액터의 크기가 클 필요가 없는 의약품 종류다. 미국 소비자단체 퍼블릭시티즌이 공개한 자료를 한국바이오협회가 정리한 내용에 따르면 mRNA 백신 제조에 가장 많은 비용을 차지하는 부분은 원료다. 심지어 바이오리액터는 30리터 규모의 일회용 장비이며, 대부분의 장비가 일회용이다. 스테인리스 스틸 장비를 사용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제조 공정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입장에서는 이미 구축한 공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단백질의약품을 기반으로 신기술을 접목시키는 것이 이상적인 시나리오다. 항체접합의약품(ADC) 등이 유력 후보로 꼽힌다.
아직까지 정비되지 않은 규제 환경도 걸림돌이다. 산업 발전이 빠르게 이뤄지면서 규정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CMO 사업의 호조세를 나타내는 지표가 공장 가동률인데, 각종 규제로 인해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면 이는 수익 악화로 직결된다.
이미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러한 규제 개선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 2020년 산업통상자원부가 바이오플랜트 압력용기 개방검사 주기를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한 것도 이러한 결과물 중 하나다. 개방검사로 인해 설비 가동이 중단되고 재가동에도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생물의약품 제조업계는 이 규정을 개정해달라고 지속 요구한 바 있다. 셀트리온보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의견 개진에 적극 나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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