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크주의' 대우자동차, '이 실수' 하나 때문에 '역사' 속으로

"아빠, 옛날엔 대우차도 있었어?"

요즘 젊은 세대에게, '대우(DAEWOO)'라는 이름은 자동차보다는 '토스트기'나 '선풍기'를 만드는 가전제품 브랜드로 더 익숙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불과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대우자동차는 현대차와 함께 대한민국 도로를 양분했던 거대한 '자동차 제국'이었습니다.

출처:온라인커뮤니티

'탱크처럼 튼튼한 차', '동급 최강의 성능'. 수많은 '대우차 마니아'를 열광시켰던 그들은, 대체 왜 허무하게 무너져 내린 걸까요?

대우자동차는 어떤 차였을까?: '기술'과 '성능'에 대한 고집

대우차의 가장 큰 특징은, 당시 경쟁자였던 현대차와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걸었다는 점입니다.

1. '튼튼함'의 상징, '탱크주의': 대우차는, 유독 차체의 '강성'과 '안전'에 대한 고집이 매우 강했습니다. 문짝 두께부터, 사용되는 철판의 강도까지. "대우차는 튼튼하다", "사고 나도 대우차 탄 사람은 멀쩡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안전에 있어서는 한 치의 타협도 없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2. '최초', '최고'를 향한 열망: 대우차는 항상 동급 최고의 성능과, 국내 최초의 신기술을 선보이는 데 주력했습니다.

프린스 & 브로엄: 1990년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후륜구동' 방식을 채택하여, 뛰어난 주행 성능과 승차감으로 고급 세단 시장을 장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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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페로: 이탈리아의 유명 디자인 회사 '베르토네'가 디자인한, 시대를 앞서간 날렵한 디자인으로 큰 충격을 주었죠.

아카디아: 일본 혼다의 최고급 세단 '레전드'를 그대로 들여와, 당시 국산차와는 비교할 수 없는 압도적인 성능과 품질을 자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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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이 무너진 이유: '이 실수', 즉 '무리한 확장'

이처럼 뛰어난 기술력을 가졌던 대우자동차가 몰락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자신감'과 '야망'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김우중 회장이 주도했던 '세계 경영'이라는 슬로건 아래,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사업을 확장한 것이죠.

1. '빚'으로 쌓아 올린 제국: 대우는, 동유럽과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 자동차 공장을 짓거나 인수하며 몸집을 불려 나갔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자신의 돈이 아닌, '은행 빚(차입금)'에 의존했죠.

2. 'IMF 외환위기'라는 직격탄: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면 문제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1997년 대한민국에 'IMF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모든 것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금리가 폭등하면서, 대우가 감당해야 할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내수 시장은 꽁꽁 얼어붙어 차는 팔리지 않았습니다.

3. '쌍용자동차 인수'라는 마지막 실수: 모두가 몸을 사리던 그 위기의 순간에도, 대우는 무리하게 '쌍용자동차'를 인수하며 몸집 불리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는 결국, 그룹 전체를 침몰시키는 결정적인 '마지막 실수'가 되고 말았죠.

결국, 1999년 대우그룹은 최종 부도를 맞았고, 대우자동차는 오랜 표류 끝에 2002년, 미국의 'GM(제너럴 모터스)'에 인수되어 'GM대우'로 명맥을 잇게 됩니다. 이후, '쉐보레' 브랜드가 국내에 도입되면서, '대우'라는 이름은 2011년을 끝으로 대한민국 자동차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출처:온라인커뮤니티

'기술의 대우'가 남긴 유산은, 지금도 도로 위를 달리는 수많은 쉐보레 차량 속에, 그리고 그 시절을 기억하는 '대우차 마니아'들의 마음속에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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