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반도체 직업병 합의' 잊었나…또 발목 잡는 반올림

김정남 2024. 9. 12.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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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반올림·조정위, 2018년 반도체 직업병 3자 합의
"직업병 문제 대립 원만히 해결"…첫 사회적 합의 의미
반올림, 최근 전삼노와 손잡고 직업병 문제제기 논란
"'반도체=산업재해' 낙인 의도"…합의서 휴지조각 위기
재계 "전략산업 흠집내기, 근로자·기업·국가 ...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시민단체 반도체노동자건강과인권지킴이(반올림)가 최근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전삼노와 손잡고 방사선 사고 등 반도체 직업병 이슈를 다시 제기하고 나섰다. 이는 6년 전 삼성전자와 반올림이 10년 넘는 진통 끝에 조정위원회 중재를 거쳐 이룬 첫 사회적 합의를 사실상 파기한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업계 일각에서는 또다시 반도체 사업장을 ‘산업재해의 온상’으로 낙인 찍으려는 의도 아니냐는 의구심까지 있다.

삼성·반올림·조정위, 직업병 합의

12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반올림은 지난 2018년 7월 조정위원회(위원장 김지형 전 대법관)의 중재 아래 ‘조정위가 마련할 중재안을 삼성전자와 반올림이 무조건으로 수용하겠다’는 내용의 합의문에 서명했고, 실제 그해 11월 3자는 중재판정 이행합의 협약식을 열었다.

(그래픽=이미나 기자)

이 합의는 백혈병 등 특정 질환뿐만 아니라 반도체 사업장에서 발병 가능한 모든 직업병에 대한 예방 지원책이 포함돼 있어, 반도체 직업병 전반에 대한 포괄적 합의라는 의미를 담았다. 삼성전자와 반올림은 아울러 신의성실 원칙 하에 반도체 직업병 문제와 관련한 대립과 갈등을 원만히 해결하고 상호 협력하기로 약속했다. 삼성전자는 반올림과 합의에 따라 보상 업무는 독립기관인 법무법인 지평에 위탁했고, 보상과 별도로 산업안전보건 발전기금 500억원을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기탁했다. 2007년 3월 이후 11년 넘게 이어진 분쟁이 종지부를 찍었던 것이다.

반도체업계 한 관계자는 “법제도가 보장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바탕으로 보장한 사례였다”며 “직업병 논란이라는 난제를 사회적 대타협을 이룬 본보기였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그동안 반도체 직업병과 관련해 인과성을 따지지 않고 폭넓게 보상해 왔다. 또 외부 전문가로 옴부즈만 위원회를 구성해 내부 재해관리 시스템에 대한 점검을 받고 관련 제안을 받아들여 시행했다. 아울러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은 △임직원 건강 관리 △작업 환경 관리 △건강 문화 구축 △감염병 방지 체계 구축 △질병 관련 연구활동 △화학물질 관리 체계 구축 등을 중심으로 임직원 건강관리를 위한 통합 시스템을 구축·운영해 왔다.

합의 파기했나…전삼노 손잡은 반올림

그럼에도 반올림은 최근 전삼노와 손잡고 또 다시 반도체 직업병 문제제기에 나섰다. 전삼노와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의 집단 산재 대응 관련 업무협약(MOU)을 맺고 반도체 사업장의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한 게 대표적이다. 반올림과 전삼노는 기흥사업장 8인치 라인에서 퇴행성 관절염 등 산업재해가 있다는 의혹에 대해 노동건강권 사업 등을 공동 기획하고 추진하기로 했다.

삼성전자와 반올림이 지난 2018년 23일 반도체 직업병과 관련해 조정위원회(위원장 김지형 전 대법관)의 중재 아래 중재판정 이행합의 협약식을 열고 있다. (사진=이데일리DB)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2018년 합의를 파기한 행위라는 지적이 나온다. 직업병 문제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는 합의 정신을 위배했다는 것이다. 10년 넘는 진통 끝에 나온 3자간 사회적 합의서가 ‘휴지조각’으로 전락한 위기인 셈이다. 재계 한 인사는 “삼성 노사 관계가 불안한 시점을 틈타 전삼노와 손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며 “노조와 함께 더 조직적으로 움직이겠다는 신호”라고 진단했다. 외부 세력들과 연대를 통해 장기전을 모색하고 있는 전삼노 입장에서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는 분석이다.

특히 전삼노가 총파업을 벌이는 등 반도체 생산 차질 불안감이 커지는 와중에 반올림까지 삼성전자를 ‘직업병·산재기업’으로 매도하는 것은 국가 전략산업인 반도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을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회사와 주주, 근로자 등 모두에게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의미다. 게다가 미국, 중국, 일본, 유럽 등이 막대한 보조금을 뿌리며 ‘반도체 국가대항전’에 전력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비판의 목소리는 더 커지고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산업 지원에 국가적인 역량을 집중해도 모자랄 판”이라며 “반도체 사업장을 열악한 근무 환경에다 산업 재해가 심각한 곳으로 매도하는 것은 근로자와 기업, 국민 등을 모두 패자로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김정남 (jungkim@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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