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렵 때문에 사라질 위기라는 '온두라스 흰 박쥐'

솜을 뭉쳐놓은 듯한 하얀 털에 개나리처럼 노란 코와 귀, 크기는 5cm도 안 되고 무게는 6g이 채 안 되는 작은 박쥐가 있다. 이름은 온두라스 흰 박쥐. 겉모습만 보면 장난감처럼 생겼지만, 이 생명체는 중미 열대우림에만 사는 고유종이다. 그 작고 귀여운 외모는 밀렵꾼의 표적이 됐고, 점점 줄어드는 서식지와 먹이 자원까지 겹치며 지금은 멸종 위험 단계 직전까지 내몰렸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온두라스 흰 박쥐를 '준위협종(NT)'으로 지정해 감시하고 있다. 인간과 생태계 모두에 연구적 가치가 높은 종이지만, 정작 자연 속에선 그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초록 잎 아래 숨는 위장술의 대가

온두라스 흰 박쥐는 이름처럼 온두라스를 포함한 중미 지역, 코스타리카·니카라과·파나마 등지의 습한 상록수림에서만 발견된다. 이 박쥐가 가진 하얀 털은 위장술의 일환이다. 박쥐는 잎의 윗면을 갈라 만들어낸 천막 밑에 머무는데, 햇빛이 나뭇잎을 통과하면 흰 털이 초록빛으로 변한다. 이 상태에서 가만히 있으면 외부에선 거의 보이지 않는다. 잎이 흔들리지 않는 이상, 맨눈으로 발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 박쥐가 가진 하얀 털은 위장술의 일환이다. 박쥐는 잎의 윗면을 갈라 만들어낸 천막 밑에 머무는데, 햇빛이 나뭇잎을 통과하면 흰 털이 초록빛으로 변한다. 이 상태에서 가만히 있으면 외부에선 거의 보이지 않는다. 잎이 흔들리지 않는 이상, 맨눈으로 발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 박쥐는 꼬리가 없고, 귀와 코가 크고 동그란 모양인데, 특히 샛노란 색이 눈에 띈다. 이는 루테인이라는 색소 때문이다. 루테인은 무화과 같은 먹이에서 얻는데, 온두라스 흰 박쥐는 포유류 중에서도 드물게 루테인을 체내에서 에스터화(화학 구조 변화)할 수 있는 생리 작용을 가진다. 이런 특이한 대사 기능은 인간의 황반변성 치료 연구에도 활용 가능성이 제기될 만큼 주목받고 있다.
밀렵과 개발에 위협받는 흰 박쥐

온두라스 흰 박쥐는 무리 생활을 하며, 큰 나뭇잎을 천막처럼 가공해 그 안에서 잠을 자고 쉬는 독특한 습성을 지닌다. 동굴이나 지붕 틈에 머무는 일반적인 박쥐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 박쥐는 잎이 큰 식물의 잎맥을 이빨로 잘라 천막 모양으로 만들고, 그 안에 4~8마리씩 무리 지어 매달려 지낸다.
천막은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할 수 있고, 포식자나 비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효과까지 있다. 박쥐는 이러한 텐트를 숲 곳곳에 만들어 두고 필요할 때마다 이동해 생활한다. 천막 하나당 수명은 약 7주 정도며, 텐트 만들기에는 여러 마리가 협업하거나 번갈아 가며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한다.
문제는 이 서식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농경지 개발, 열대우림 벌채, 도시 확장 등이 겹치면서 박쥐들이 텐트를 지을 만한 잎을 찾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설상가상으로 온두라스 흰 박쥐는 한 종류의 무화과만 먹고 살기 때문에, 그 나무가 사라지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게다가 눈에 잘 띄는 외모 덕분에 인간에게 포획돼 전시나 기념품, 사진 촬영 대상이 되기도 했다.
생존 자체가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이 작은 박쥐는 매년 두 번 새끼를 낳으며 텐트를 만들고, 무화과 열매를 찾아 헤매고 있다.
무화과 없으면 생존 불가능한 박쥐

이 박쥐는 오직 무화과나무 한 종의 열매만 먹고 산다. 무화과 중에서도 'Ficus colubrinae'이라는 품종이다. 이 나무는 한꺼번에 많은 열매를 맺지 않고, 일 년 내내 비동기적으로 열매를 생산한다. 그래서 계절과 관계없이 먹이를 구할 수 있다. 박쥐는 둥지 근처에 이 나무가 있는지를 기준으로 활동 범위를 설정한다. 평균 활동 범위는 약 63헥타르로 좁은 편이며, 그만큼 한 나무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이 때문에 숲의 무화과나무가 줄면 곧장 박쥐의 생존과 직결된다. 무화과나무가 줄거나 잎이 큰 식물이 사라지면 온두라스 흰 박쥐는 먹이도, 은신처도 잃는다.
번식도 어렵다. 암컷은 한배에 한 마리만 낳으며, 출산 시기도 무리 전체가 비슷한 시점에 맞춰 이뤄진다. 어미는 수유기 동안에도 하루 여섯 번까지 무화과를 찾아 날아다닌다. 이렇게 애써 키운 새끼도, 서식지가 사라지면 살 수 없다.
크기도 작고 번식력도 낮은 데다, 먹이 선택까지 한정돼 있어 개체수 회복이 매우 더디다. 이런 이유로 온두라스 흰 박쥐는 눈에 띄는 감소세를 보인다. 특정 식물과 땅, 기후, 생태계의 미세한 조화를 보여주는 지표종으로서의 의미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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