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선수범’과 ‘공감’…아버지가 싹틔운 손흥민 리더십의 비결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2024. 4. 27.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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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보다 성품 강조한 손웅정, 함께 흘린 땀방울로 ‘리더’ 자질 키워내

(시사저널=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우리에게는 새로운 방향으로 가겠다는 것을 알릴 변화가 필요했다. 그 중심에 존재해야 하는 새 주장은 손흥민이라고 확신했다. 그 당시 누군가는 적합한 변화가 아니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사람도 그 결정이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다."

토트넘의 엔지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시즌 시작 전에 손흥민을 주장으로 선임한 자신의 선택을 회상했다. 2023~24 시즌 개막을 앞두고 토트넘은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다. 8위로 2022~23 시즌을 마친 토트넘은 안토니오 콘테 감독의 중도 사임과 2명의 감독 대행을 거치며 혼란만 가중된 상황이었다. 또 한 번의 무관에 UEFA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이라는 목표까지 놓치자 간판 공격수 해리 케인은 이적을 결정했다. 새 감독 선임에서도 갈팡질팡하다 스코틀랜드 무대를 정복한 호주 국적의 포스테코글루 전 셀틱 감독을 깜짝 선임했다.

큰 폭의 선수단 변화와 팀 체질 개선 등 리빌딩이 예고된 가운데 가장 큰 눈길을 끈 것은 손흥민의 주장 선임이었다. 암묵적인 원칙을 깬 변화였다. 1882년 창단한 토트넘은 2014년 프랑스 출신의 유네스 카불이 주장으로 선임되기 전까지 영국 국적 선수들만이 주장을 맡았다. 카불 이후에도 프랑스, 벨기에 국적의 서유럽 선수만 주장 완장을 찼다. 손흥민은 토트넘 역사상 최초의 비유럽인 주장이다. 그리스계지만 호주에서 태어나고 성장해 호주와 일본에서 능력을 증명하고 유럽으로 다시 온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과감한 변화의 첫 퍼즐을 손흥민으로 끼웠다. 유럽 메이저 무대의 명장으로서 아시아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거스 히딩크 감독조차 "백일우월주의가 숨어있는 유럽 축구 문화에서 드문 사례"라고 얘기했을 정도의 사건이다.

2011년 6월19일 오후 강원 춘천시 송암스포츠타운에서 당시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던 손흥민(오른쪽)이 부친 손웅정씨와 함께 몸 만들기에 한창이다. ⓒ연합뉴스

손흥민이 아버지에게 배운 것들

"팀에 합류하고 훈련을 하면서 손흥민이 토트넘에서 영향력이 큰 선수라는 걸 알게 됐다. 나는 그가 주장에 적합하다고 확신했다"고 말한 포스테코글루 감독의 손흥민 선임 근거는 다른 선수들에 의해서도 입증됐다. 부주장 크리스티안 로메로는 "손흥민은 거의 모든 선수가 따르는 사람이다. 이기고자 하는 엄청난 열망을 가졌기 때문이다. 선수단은 그가 주장이 된 것이 팀을 위해 행복하고 옳은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부주장 제임스 매디슨은 "손흥민은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어준다. 대담한 성격과 큰 포용력을 지녔다. 중요한 순간, 그라운드에서 팀을 위한 변화를 이끌어낸다. 모든 구성원이 그를 존경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새롭게 합류한 선수들이 토트넘에 빠르게 적응하며 기량을 발휘할 수 있었던 데도 손흥민의 공헌이 컸다. 브레넌 존슨은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주기 위해 훈련장에서 계속 노력했지만 압박감과 부담감이 있었다. 그때 손흥민은 먼저 말을 걸어줬다. 그는 내 얘기를 들어줬고 함께 앞으로 나아가도록 도와줬다"고 자신의 일화를 공개했다. 수비수 미키 판데펜은 "경기장 안에선 명확한 지시를 하는 리더고, 밖에서는 모두의 사기를 올려주는 친절한 동료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찬사를 보냈다.

2015년부터 손흥민과 함께하고 있는 팀 동료 벤 데이비스는 손흥민 리더십의 근간은 솔선수범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토트넘 소속으로 400경기 출전 기록을 세운 손흥민에 대한 글을 올리며 "항상 솔선수범한다. 손흥민이 하는 모든 행동은 팀에 도움이 된다. 발전하고자 하는 자세, 마음가짐, 결단력, 책임감을 갖고 그라운드에 발을 들인다"고 소개했다. 개인주의가 짙게 깔린 서구 가치관에서는 보기 드물게 자신의 헌신성과 향상심을 팀을 위해 전환시키는 방식이 솔선수범이라는 얘기다.

이것은 오늘의 손흥민을 있게 한 아버지 손웅정 SON축구아카데미 감독이 평생을 강조해온 부분이다. 고향인 춘천의 공지천변 흙바닥 운동장에서 훈련할 때 손웅정 감독은 아들과 똑같이 훈련을 감내했다. '손흥민 존'을 만든 하루 슈팅 1000개 훈련, 유연성과 근력 강화를 위한 줄넘기와 팔굽혀펴기 등을 동일한 강도, 횟수로 소화했다. 손웅정 감독은 "나는 부족한 아비지만 아이들에게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다. 축구를 가르치며 아이들보다 몸을 적게 쓴 적이 없다. 입으로만 지도하고 시키면 아이들은 지칠 때 그것을 참고 견딜 수 없다"고 자신의 지론을 강조했다.

축구선수를 길러내는 코칭을 넘어 자식에 대한 교육 차원에서도 솔선수범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손웅정 감독은 "부모는 휴대폰 보면서 자식에게 공부하라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모든 것을 보고 배운다. 부모의 모범은 자식들에게 대물림된다"고 말했다. 축구 외에도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그는 책이 해질 정도로 중요한 문장에 밑줄을 긋고, 자신만의 독서노트를 15년째 작성했다. 술과 담배, TV와 휴대폰이 아닌 운동과 독서로 솔선수범한 것이 아들 손흥민의 가치관에 이식된 것이다.

손흥민의 눈물엔 공감이 있다

실력보다 예의를 강조해온 것도 손흥민의 성품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라운드 안팎에서 늘 따뜻한 미소를 보이고 상대를 배려하는 손흥민은 라이벌 팀 팬들조차 비방하지 않는 EPL의 유일한 선수로 통한다. 토트넘 훈련장인 홋스퍼웨이에는 손흥민을 비롯한 선수들을 만나 사인을 받고 사진을 찍으려는 팬들이 입구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 그 팬들을 외면하지 않고 매일 1시간 넘게 일일이 응대하고 떠나는 것이 손흥민의 일과로 유명하다. 손웅정 감독은 "재능이 성품을 덮을 순 없다. 인생에서 실패를 해도 다시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 하지만 인성에서 실패하면 패자부활전은 주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슈퍼스타의 위치에 있지만 손흥민은 유달리 눈물이 잦다. 월드컵에서 한 단계 더 높은 위치로 가지 못하면 분해서 울고, 속상해서 울고, 국민에게 미안해서 울었다. 자신을 응원하는 이들의 염원과 성원에 화답하지 못하는 것에 늘 죄의식을 갖는 모습이다. 그런 손흥민의 눈물은 공감에서 비롯된다. 주장 완장을 달고, 태극마크를 달고 뛴다는 것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을 공감하기에 흘리는 진실된 감정이다.

최근 토트넘의 선배인 로비 킨은 손흥민을 향해 "이제 그는 왕관의 보석과 같은 존재가 됐다"고 말했다. 9년 전 모두의 의심 속에 토트넘으로 이적해 도전에 나선 아시아 선수는 EPL 득점왕을 넘어 한 팀의 인식과 문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리더로 올라섰는데, 그 순간을 가장 빛나는 보석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 결실은 솔선수범과 인성을 강조하며 함께 땀 흘린 아버지와의 소중한 시간이라는 오랜 자산에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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