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SDI가 보유 중인 삼성디스플레이 지분 15.2%를 매각하기로 결정하며 대규모 배터리 설비투자 재원 확보에 나섰다. 전량 매각 시 장부가 기준 약 11조원 안팎의 자금 확보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단순 자산 정리를 넘어 투자 확대에 대비한 조치로 풀이된다.
전고체 배터리와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리튬인산철(LFP) 라인 구축 등 수조원대 투자가 예정된 가운데, 회사채 발행이나 외부 차입 대신 계열사 지분을 유동화하는 방식을 택했다는 점에서 삼성 특유의 보수적 재무 기조가 재확인됐다는 평가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해당 지분을 인수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으며 이 경우 그룹 내 디스플레이의 지배구조 단순화 효과도 기대된다.
2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삼성SDI는 “투자재원을 확보하고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보유 중인 삼성디스플레이 지분 등의 매각을 추진하는 내용을 이사회에 보고했다”고 전날 공시했다. 거래 상대, 규모, 조건, 시기 등 구체적인 사항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향후 사외이사들로 구성된 지속가능경영위원회를 통해 제반 사항을 검토한 후 이사회 승인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최대 11조 실탄…차세대 배터리 경쟁에 투입
현재 삼성SDI는 비상장사인 삼성디스플레이 지분 15.2%를 보유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해당 지분을 전량 매각할 경우 장부가 기준 최대 약 11조원 안팎의 현금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삼성SDI에 안정적인 배당 수익을 제공해 온 자산이었다. 2024년 삼성SDI가 수령한 배당금은 1조124억원에 달한다. 그럼에도 매각을 선택한 것은 배당을 통한 단기적 현금 유입보다 차세대 배터리 경쟁에 투입하는 편이 장기 경쟁력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판단으로 풀이된다.
실제 삼성SDI는 기술 전환과 증설이 동시에 요구되는 국면에 놓여 있다.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와 ESS용 LFP 배터리 확대, 46파이 원통형 라인 구축 등은 단순한 제품 다변화를 넘어 생산 체제 전환을 수반한다. 배터리 산업은 글로벌 완성차 업체 및 에너지 기업들의 현지 생산 요구가 강화되면서, 투자 속도가 곧 시장 지위로 직결되는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 이 같은 환경에서 수조원대 설비투자는 선택이 아닌 필수에 가깝다.
확보한 자금은 북미와 유럽 거점의 생산라인 고도화 및 차세대 배터리 양산 체제 구축에 집중 투입될 가능성이 크다. 삼성SDI는 미국 내 수요가 확대되고 있는 ESS 및 LFP 배터리 생산 능력 확충에 속도를 내고 있다.
북미 합작법인 스타플러스에너지(SPE)의 전기차 라인 일부를 ESS용으로 전환한 데 이어, 지난해 체결한 2조원 규모 ESS용 LFP 장기 공급 계약 물량도 현지 공장에서 생산할 계획이다. 일각에서는 SPE의 지분 구조 인수 가능성도 거론된다. 전기차 투자 축소 기조를 보이고 있는 스텔란티스가 보유 지분(49%)을 매각할 경우, 삼성SDI가 이를 확보해 현지 사업 주도권을 강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유럽 거점인 헝가리 공장 역시 생산 체제 재편 대상이다. 일부 라인을 LFP 배터리용으로 전환해 운영 효율을 높이고, 46파이 원통형 신규 라인 확보에도 투자를 병행할 계획이다. 동시에 내년 상용화를 목표로 한 전고체 배터리 라인 증설도 연내 확정할 계획이다.

'빚' 대신 '자산 유동화'…삼성전자 '구원투수' 되나
주목할 점은 자금 조달 방식이다. 삼성SDI는 대규모 회사채 발행이나 외부 차입 대신 비상장 계열사 지분을 매각하는 방식을 택했다. 투자 재원을 마련하면서도 부채 확대를 최소화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업계에서는 업황 변동성이 큰 배터리 산업 특성을 감안해 부채 확대를 최소화하려는 삼성그룹의 보수적 재무 기조가 반영된 결정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실제 삼성SDI는 지난해 영업손실 기록 등 실적 부진 속에서도 재무건전성 개선에 성공했다. 삼성SDI 연결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회사의 부채비율은 79.3%로 전년 88.2% 대비 8.9%포인트(p) 줄었고, 순차입금비율도 같은 기간 44.5%에서 38.1%로 6.4%p 개선됐다. 아직 감사보고서가 나오지 않은 LG에너지솔루션이나 SK온의 경우 대규모 북미 투자 여파로 부채비율이 120~200% 수준에서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시장에서는 삼성디스플레이 지분 매수자로 삼성전자가 등판할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현재 삼성전자는 삼성디스플레이 지분 84.8%를 보유하고 있으며, 추가로 15.2%를 확보할 경우 100% 자회사 체제로 전환된다. 이 경우 비상장 지분 매각의 난관인 적정 가치 산정과 신속한 유동화 문제를 모회사의 지원 아래 매끄럽게 해결할 수 있다.
삼성전자 역시 보유 현금을 활용해 디스플레이 자회사를 100% 완전 자회사로 편입함으로써 지배구조를 단순화하고 경영 의사결정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삼성전자의 별도기준 현금성자산은 12조원을 상회한다.
그룹 전체의 가용 자산은 밖으로 새 나가지 않으면서도, 미래 전략 사업인 배터리 부문에만 11조원의 신규 자금이 집중 투입되는 자원 재배치 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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