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동물원] 모든 새끼는 소중하다, 바퀴벌레일지라도

정지섭 기자 2022. 10. 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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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증맞은 새끼바퀴 탄생 동영상 화제
온몸이 첨단기기, 3억년동안 번성
숲으로 가선 '자연의 수호신' 역할 톡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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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철자법의 단어인데도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상황이 천양지차인 말이 있죠. ‘새끼’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사람이 등장할 때 이 말이 등장하면 욕설, 멸시, 혹은 아주 가까운 사람들끼리 쓰는 친근감의 표현입니다. 소설이나 영화에는 등장할지언정, 공공문서나 보도문에선 영락없이 XX로 가려지곤 합니다. 반면 짐승에게 쓸 경우엔 평범하기 그지없는 보통 말이 됩니다. 이 말이 어디에 따라붙느냐에 따라 느껴지는 차이는 그만큼 사람과 짐승의 좁히기 힘든 간격을 보여주죠. 오늘은 후자에 등장하는 새끼 이야기입니다. 사람과 아주 빼닮은 유인원부터 아메바 같은 원생동물까지 세상의 모든 동물들은 어떤 형태로든 새끼를 칩니다.

만삭의 어미뱃속에서 부화한 마다가스카르 숲바퀴 새끼들이 꼬물거리며 세상밖으로 나오고 있다. /Reptile Zoo Instagram

고귀한 동물, 귀여운 동물, 무서운 동물, 징그러운 동물, 섬뜩한 동물들을 가리지 않고요. 새끼를 낳는 것은 대를 잇고 번성하는 신성한 제의이자 한편으로는 치열한 사랑과 쟁투의 결과물이기도 하죠. 그런 힘겨운 작업 속에 세상에 등장하는 새끼동물이 종을 가리지 않고 소중한 까닭입니다. 혐오동물의 대명사이자 생존력의 달인 바퀴벌레(이하 바퀴)일지라도요.

최근 바퀴 새끼의 탄생을 담은 1분 남짓한 동영상이 소셜미디어에서 화제입니다. 캘리포니아 파운틴밸리에 있는 렙타일 주(Reptile Zoo)는 ‘파충류 동물원’이라는 타이틀이 알려주듯 이색적이면서도 약간의 혐오감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뱀과 도마뱀, 악어 등을 주로 전시하고 있는 곳인데요. 마다가스카르 해안가가 원산인 바퀴벌레 암컷의 순산 순간을 담았습니다. 불타는 짝잣기를 통해 수십마리의 새끼를 고이 뱃속에 품었던 어미 몸에서 부화한 새끼들이 꼬물거리며 세상구경을 합니다. 산전수전 다 겪으며 세상 경험을 한 어미의 거무튀튀한 몸색과 티없이 순수함을 상징하는 흰색의 새끼바퀴의 몸색깔이 선명한 대비를 이룹니다. 잉크로 살짝 점을 찍은 듯한 작고 까만 한쌍의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세상에 첫발을 뗀 새끼바퀴는, 혐오동물과 해충의 대명사라는 편견을 벗어내면 소중한 세상의 모든 새끼 중 하나일 것입니다. 이렇게 또 하나의 바퀴족이 대를 이루는데 성공합니다.

도심에서 인간들을 숙주삼아 살아가는 '공존형 바퀴'들의 종류별로 성충, 애벌레, 알주머니를 분류해놓은 사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홈페이지

병균을 옮기는 박멸1순위로 멸시하기에 앞서 바퀴가 조명받아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칩니다. 이들은 이미 최소 3억년전에 지구상에 나타나 커다란 변화없이 지금껏 살아오고 있습니다. 극한의 이상기온에 핵전쟁 위협까지 숱한 절멸위기론이 곳곳에서 등장하지만, 아마 인류가 절멸해도 이들은 지금껏 그랬던것처럼 살아남았을 것입니다. 강인한 생존력은 극한 환경을 이겨냄을 보여주는 기어다니는 교과서죠. 세 쌍의 다리, 날개, 더듬이라는 몸구조는 이후 쏟아져나온 다른 후배 곤충들의 원형이 됐어요. 곤충역사의 시조입니다. 바퀴의 삶은 환경에 맞춘 적응과 진화의 내러티브를 보여줍니다.

다른 생물들처럼 바퀴 역시 뜨겁게 사랑을 나누고 결실물로 2세를 번식한다. /UC Statewide IPM Program. 2019 Regents University of California

사는 곳에 따라 숲에 사는 자연형 바퀴와 인간 세상으로 침투해 살고 있는 공존형 바퀴로 나눌 수 있습니다. 수많은 바퀴 살충제가 여전히 스테디셀러라는 점은 역설적으로 이들의 박멸이 불가능할 것임을 말해줍니다. 바퀴의 몸은 인간 세상에 침투해 인간을 사실상 숙주로 삼아 살아가는데 손색없이 진화했습니다. 주택이나 건물 같은 인공 구조물에 적응하기 위해선 날렵한 몸매와 재빠른 이동이 필수입니다. 바퀴의 몸은 물고기로 치면 가자미에 비견될 수 있었습니다. 여느 동물에 비해 위아래로 납작하거든요. 아무리 좁은 틈새라도 금새 들어갈 수 있도록 디자인됐습니다. 바퀴의 다리는 마치 아름다운 장미의 줄기같습니다. 수많은 가시가 돋아있거든요. 이 가시돋은 다리로 바퀴는 육상에서 어느 곤충보다도 재빠르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바퀴의 긴 더듬이는 감각과 교신을 하는 핵심 기관이다. 바퀴가 수억년 동안 번성할 수 있었던 동력 중 하나다. /미국 메인주 홈페이지

생존하기 위해서는 번식을 해야 하고 번식을 위해서는 동족들과의 교신과 교감이 핵심입니다. 바퀴의 통신 기능이 뛰어난 까닭입니다. 바퀴는 가만히 있을때도 더듬이를 끊임없이 청소하고 다듬습니다. 이 더듬이로 동료들과 교신하고 먹이의 존재를 알아챕니다. 공존형 바퀴는 인간세상에 침투하면서 식성도 사람에 맞췄습니다. 못먹는게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더듬이만 감각기관인 아닙니다. 바퀴의 몸뚱아리 끝에는 한쌍의 보일락말락하는 게 삐져나와있습니다. 털이라기엔 크고, 다리라기엔 아주 작은 이 기관을 꼬리털이라는 뜻의 ‘미모’라고 하는데, 주변 사물을 염탐할 수 있는 청각기관이죠.

호주 로드하우섬의 자연생태를 보존하는 '숲의 신'으로 추앙받고 있는 멸종위기종 숲바퀴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정부 홈페이지

곤충중 바퀴와 가까운 친척은 어떤게 있을까요? 생김새 때문에 딱정벌레나 풍뎅이, 무당벌레 등을 떠올릴 수도 있을텐데 분류학상 가까운 종은 놀랍게도 사마귀입니다. 강력한 존재감, 혐오와 공포를 일으키는 외모,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먹성 말고도 두 종을 이어주는 유사성은 바로 번식방식이에요. 수십 수백 개의 알이 뭉텅이로 들어있는 알주머니를 쏙 낳아놓고 나면, 숙성기간을 거쳐서 꼬물거리는 새끼들이 태어나지요. 오늘 동영상의 주인공인 마다가스카르산 바퀴는 좀 다른 방식으로 직접 암컷의 몸에서 알이 부화한뒤 새끼가 나왔는데요. 사실 대부분의 바퀴는 알주머니에서 일괄적으로 어미와 얼추 비슷한 모양새의 새끼가 태어난 뒤 최대 열번이 넘는 허물벗기를 통해 당당한 바퀴족의 일원으로 성장해갑니다. 바퀴 암컷이 알주머니를 낳고 숙성기간 뒤 알주머니에서 요정같은 새끼들이 태어나는 동영상(유튜브 Green Best Product) 한 번 보실까요?’

대개 그렇다 할지라도 모든 바퀴들이 바퀴벌레 대접을 받는 건 아닙니다. 일부 자연형 바퀴는 마치 미야자키 하야오의 모노노메 히케에 나오는 사슴신 시시가미처럼 대자연을 살아숨쉬게 하는 숲의 신으로 추앙받고 있어요. 욕심과 욕망을 갖고 멸절시키는 순간 숲이 죽어나가게 되는 거죠. 이렇게 자연의 신 역할을 하고 있는 위대한 바퀴의 대표종이 호주 로드하우섬에 사는 숲바퀴입니다. 호주 본토의 숲바퀴가 폭풍우 등 어떤 이유로 로드하우섬 및 주변 작은 섬에 정착했어요. 이들은 흙과 썩은 나무, 돌에 구덩이를 파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들의 신진대사가 숲에 영양분을 불어넣고 바람을 통하게 하며 삼림의 건강성을 유지시켜주는 동력이 됐어요. 믿기 힘들게도 이들은 당장하게 ‘멸종위기종’으로 등재돼 보호받고 있으며, 생물학자들이 여전히 베일에 둘러싼 생태를 탐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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