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전반, 게임으로 후반…넷플릭스의 '월드컵' 전략 [엔터코노미]
이해정 기자 2026. 6. 11. 06:01
전 세계 축구 축제인 'FIFA 북중미 월드컵 2026' 개막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넷플릭스가 실제 월드컵 스타디움과 선수들을 구현한 신작 축구 게임을 선보인다. 영화와 드라마를 서비스하던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가 직접 축구 게임까지 내놓는 모습은 다소 낯설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이를 단순한 신사업이 아니라 이용자의 시간을 둘러싼 엔터테인먼트 경쟁의 연장선으로 보고 있다.
대회 개막일인 11일(현지시간)에 맞춰 넷플릭스 게임즈를 통해 독점 출시되는 'FIFA 월드컵: 런치 에디션'은 넷플릭스 회원이라면 별도 비용 없이 이용할 수 있다. 게임은 TV와 스마트폰만으로 플레이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TV에는 경기 화면이 출력되고 스마트폰은 컨트롤러 역할을 수행한다. 이용자는 TV 화면에 표시된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스캔해 접속한 뒤 패스와 슛 등을 스와이프 방식으로 조작할 수 있으며, 최대 4인 멀티플레이도 지원한다.
콘텐츠 규모 역시 상당하다. 이번 FIFA 남자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48개국 국가대표팀이 모두 등장하며, 총 1248명의 선수를 직접 조작할 수 있다. 개최 도시의 실제 경기장 16곳도 구현됐다. 거실에 앉아 월드컵을 시청하는 동시에 직접 참가하는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구상이다.
넷플릭스는 2021년 게임 사업 진출을 공식화한 이후 꾸준히 관련 투자를 이어왔다. 자체 IP(지식재산권)인 '기묘한 이야기'를 활용한 모바일 게임을 선보였고, 나이트스쿨 스튜디오와 넥스트게임즈, 보스 파이트 엔터테인먼트 등 게임 개발사들을 잇달아 인수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와 핀란드 헬싱키에는 자체 게임 스튜디오도 설립했다.
최근에는 대규모 개발비가 투입되는, 이른바 트리플A급 게임 개발보다는 넷플릭스 서비스와 자연스럽게 결합할 수 있는 캐주얼 게임, 파티 게임, 스포츠 게임 등에 집중하고 있다. 이번 월드컵 게임 역시 콘솔 시장의 정면 승부보다는 넷플릭스 이용자들이 거실에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경험에 초점을 맞췄다.
그렇다면 영화와 드라마를 큐레이션하는 OTT 플랫폼이 왜 게임을 론칭하게 됐을까. 겉으로 보면 영화·드라마 서비스와 게임은 전혀 다른 산업처럼 보인다. 하지만 최근 콘텐츠 시장에서는 소비자의 하루 24시간을 두고 경쟁한다는 점에서 두 영역을 별개의 시장으로 보기 어렵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한 사람이 드라마를 보는 동안 게임까지 즐기긴 쉽지 않다. 마찬가지로, 게임에 몰입한 시간만큼 OTT 시청 시간은 줄어든다. 결국 유튜브, 틱톡, 게임, OTT, 음악 스트리밍 등이 모두 같은 시간을 두고 경쟁하는 구조가 된다. 실제 그렉 피터스 넷플릭스 공동 CEO는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영화와 TV, 게임은 하나의 연결된 경험"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용자가 집에서 즐기는 엔터테인먼트라는 관점에서는 모두 동일한 경쟁 시장에 속한다는 의미다.
이 같은 흐름은 최근 콘텐츠 산업 전반에서 나타나는 '빅블러(Big Blur)' 현상과도 맞닿아 있다. 기술 발전으로 산업 간 경계가 희미해지면서 플랫폼의 역할이 서로 겹치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에는 게임 회사는 게임을 만들고 방송사는 영상을 제작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유튜브는 TV 시장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고, OTT는 게임 사업에 진출한다. 게임 회사들은 영상 콘텐츠 제작에 나서고 있으며, SNS 플랫폼조차 자체 콘텐츠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넷플릭스에게 게임은 새로운 매출원을 확보하기 위한 사업인 동시에 이용자의 체류 시간을 늘리는 수단이기도 하다. 드라마 한 편을 시청한 이용자가 같은 앱 안에서 게임까지 즐긴다면 서비스 이탈 가능성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넷플릭스는 강력한 IP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게임 사업과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인기 드라마를 시청한 이용자가 게임으로 세계관을 이어서 경험하고, 다시 후속 시즌을 시청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이는 월트디즈니 컴퍼니가 수십 년 동안 활용해 온 전략과도 유사하다. 디즈니는 영화 IP를 테마파크와 게임, 굿즈 사업으로 확장하며 콘텐츠의 수명을 극대화해 왔다. 넷플릭스 역시 영상 콘텐츠를 단발성 소비에 그치지 않고, 반복 소비 가능한 자산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다만 현실적으로 넷플릭스 게임 사업의 성과는 아직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시장조사업계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게임 사업 진출 이후 약 20억달러 이상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용자들에게 강하게 각인된 대표작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문명', '레드 데드 리뎀션' 등 유명 게임을 회원들에게 제공하며 라이브러리를 확대했지만, 넷플릭스 플랫폼에서만 즐길 수 있는 독점 흥행작은 부재한 상황이다.
개발 조직 역시 순탄치 않았다. 대형 게임 개발을 추진하던 팀 블루 스튜디오는 지난해 폐쇄됐고, '오징어 게임' 기반 게임을 개발하던 보스 파이트 엔터테인먼트도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됐다. 공격적인 투자에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전략 수정이 사실상 불가피해졌다.

서비스 구조 역시 한계로 지적된다. 이용자가 게임을 하려면, 넷플릭스에서 게임을 선택한 뒤 구글 플레이스토어나 애플 앱스토어를 거쳐 별도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해야 한다. 콘텐츠를 누르는 즉시 재생되는 영상 서비스와 비교하면 진입 장벽이 높을 수밖에 없다.
핵심 이용자층 확보도 쉽지 않다. 대작 패키지 게임을 선호하는 이용자들은 이미 PC와 콘솔 생태계에 익숙해져 있고, 반면 모바일 이용자들은 상대적으로 간편한 캐주얼 게임을 선호한다. 넷플릭스가 어느 시장을 핵심 타깃으로 삼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계속되는 이유다.
그럼에도 넷플릭스가 게임을 포기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게임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 플랫폼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업계 관계자는 머니투데이방송 MTN에 "전문 게임사와 경쟁하긴 어렵지만, 가끔 레고게임 하듯 즐기는 스낵컬처의 기능으로는 유의미할 거라고 본다. TV로 넷플릭스를 보고,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면서 결과적으로 플랫폼에 오래 머물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월드컵 게임 역시 단순한 스포츠 게임 출시를 넘어 넷플릭스의 콘텐츠 확장 전략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OTT와 게임, 영상 콘텐츠와 인터랙티브 콘텐츠의 경계가 점차 흐려지는 가운데 넷플릭스의 게임 사업 실험도 한층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이해정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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