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에 빠진 유통가…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어획량 향상·통조림 이물 검출
고객 맞춤형 추천·민원 해결도
최근 몇 년간 유통업계에서 인공지능(AI)의 도입이 급격히 확산하고 있다. 식품제조사들은 먹거리 생산 환경을 개선하고, 유통업체들은 한층 더 정교한 개인화된 고객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수작업을 AI가 대체하는 시대가 한층 더 가까워졌다는 분석이다.
AI가 선별한 식품, 식탁 위에 올라온다
롯데마트는 2022년 6월 AI 선별 시스템을 활용한 멜론, 천도복숭아 등을 처음 선보였다. AI 선별기술은 중량과 당도 외에도 품목별 특성을 반영한 수분 함량과 후숙도까지 측정한다. 특히 기존 비파괴 당도 선별기의 한계였던 밀도 확인도 가능해졌다.
최근 롯데마트는 16브릭스 이상의 고당도 샤인머스캣을 판매했다. 여러 대의 카메라를 장착한 AI선별기가 샤인머스켓 송이에 달려있는 알맹이들의 외형을 분석해 품질과 당도를 검증한 덕분이다. 샤인머스캣을 취급하는 농가가 늘면서 당도 저하 이슈가 발생하자, 소비자들의 구매기준을 맞추기 위해 AI를 활용한 품질 측정에 나섰다.
동원산업은 참치를 잡을 때 AI를 활용 중이다. 기존 어획 방식은 선망선 내 코파(어군 탐지를 위한 높은 구조물)에서 어군을 육안으로 찾아내거나 헬리콥터로 어군을 탐지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어탐 범위의 한계가 있거나 사고 위험성, 연료 사용량이 많다는 문제가 있었다.
AI 드론은 크기가 작아 연료 사용량이 적고 어탐범위도 넓다. 무인기이기 때문에 사고 위험도 적다. 동원산업은 2022년 AI 무인항공기 드론을 도입해 현재 6대를 운영 중이다. 향후 선단 전체로 확대키로 했다.
이렇게 잡은 참치를 손질하는 데에도 AI가 투입됐다. '동원참치'를 생산하는 동원F&B는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통조림 속 뼈, 이물을 AI로 검출한다. 이전에는 뼈나 비늘 등 이물질의 크기가 달라 자동화 설비를 통해 이를 발라내는 작업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최근엔 AI를 탑재한 엑스레이로 아주 미세한 크기의 뼈까지 검출하고 있다.
동원산업 관계자는 "AI가 20만장 이상의 참치 뼈 이미지를 학습해 기존 엑스레이만 사용할 때보다 검출 성능이 6배 이상 증가했다"며 "이러한 AI 기반의 엑스레이를 다른 생산공장에 적용해 품질 경영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동원F&B는 김 제품인 '양반김'에도 AI 자동 모니터링 시스템을 도입했다. 양반김 내부에는 실리카겔(방습제)이 투입돼야 하는데, 기존에는 실리카겔 투입이 누락되는 경우 작업자들이 육안으로 오류를 잡아내야 했다. 하지만 AI 모델 도입 이후 실시간으로 탐지해, 검출율이 2배 이상 높아졌다.
치밀해진 맞춤형 상품
유통업계에서 AI를 활용한 개인 맞춤형 상품 추천은 이젠 흔한 일이다. 다만 한층 더 정교해졌다. 현대백화점 판교점, 중동점에 마련된 그리팅 스토어 매장에서는 현대식품관 내 신선·가공식품 5000여 종을 개인 영양 상태에 맞춰 추천해주는 '그리팅 버틀러' 서비스가 마련됐다. 현대그린푸드가 지난해 10월 자체 개발한 AI 영양상담 솔루션 '그리팅X'를 도입하면서다.
그리팅 버틀러는 개인 식습관 등에 대한 설문을 진행하고, 체성분·당독소·미량영양소·피부상태 등 종합적인 영양 상태를 4종의 전문 측정 기기를 통해 진단한다. 이후 검진 결과를 기반으로 매장 내 전문 영양사와 일대일 상담을 통해 맞춤형 식단 솔루션을 제안한다.
예를 들어 아연과 단백질이 부족한 고객에게는 각각 낙지와 고등어 등 부족 영양소를 보충할 수 있는 1차 농수축산물 식재료를 추천하고, 해당 식재가 포함된 반찬 또는 그리팅 식단 등을 제안한다. 체중감량이나 피부질 개선을 목표로 하는 고객에게는 저당·저칼로리·고단백 등 맞춤형 식단을 비롯해 중·장기적 식습관 개선 가이드를 제공하는 식이다.
AI는 대형마트의 행사 기획에도 활용되고 있다. 홈플러스는 지난해부터 AI를 통해 시기에 맞춰 필요한 상품을 선별해 업계 최저 가격 수준으로 판매하는 'AI 최저가격' 할인 행사를 진행 중이다. 또 홈플러스 온라인몰에는 AI 개인화 추천 서비스를 도입했다. 예를 들어 샐러드를 구매하는 고객에게 드레싱, 곁들이기 좋은 과일 등 연관 상품을 추천하는 식이다. 효과도 있었다. 홈플러스에 따르면 인공지능(AI) 기반 개인화 추천을 도입한 결과, 올해 5~7월 개인화 추천 평균 상품 클릭 수는 3월 대비 약 40%가량 뛰었고, 장바구니 담기 클릭 수는 약 20% 올랐다.
고객의 목소리 AI로 듣는다
인력이 많이 필요했던 고객 데이터 수집도 AI가 대체하는 추세다. 이마트는 올해 1월 'e-Trend' 시스템을 오픈했다. e-Trend는 고객들이 이마트 앱과 SSG닷컴에 남기는 상품평과 고객가치센터에 접수되는 상품에 대한 의견을 종합해 한눈에 볼 수 있게 해주는 시스템이다. 하루 평균 3만개, 월 평균 80만개에 이르는 온·오프라인 데이터를 분석해 고객 리뷰 키워드와 부정 리뷰의 증감 추이를 확인한다. 특히 부정 리뷰가 크게 증가했을 때는 담당 바이어에게 긴급하게 알람을 제공한다.
AI 고객 상담 기능도 고도화했다. 이마트는 AI챗봇이 다양한 질문에 문장 형식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개선했다. AI챗봇을 통한 빠른 민원 처리 비율이 40% 이상으로 확대되면서 상담사 업무가 간소화됐다.
현대백화점도 최근 AI 기반 고객 의견 통합분석 플랫폼 '인사이트 랩스'를 개발했다. 2년간 축적한 고객의견 7만여 건을 데이터베이스화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고객 의견을 유형화해 분류한 후 민감도가 높고 해결이 시급한 컴플레인을 감지해 담당자에게 알림을 발송한다.
눈길을 끄는 점은 인사이트 랩스가 직원들에게 고객 응대 솔루션도 제공한다는 점이다. 생성형 AI가 고객 문의 답변에 포함돼야 하는 단순 정보뿐만 아니라 정보 안내 시 갖춰야 하는 태도까지 제안한다.
현대백화점 측은 "해결 가이드 내용은 바로 고객 응대에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하다"며 "담당 직원이 유관부서들과 일일이 내용을 공유하고 보상안을 검토하던 과정이 AI의 도움으로 대폭 줄어든다"고 말했다.
AI 활용 영역은 비용 절감, 업무 효율성 향상, 고객 경험 개선 등 다양한 이점이 있는 만큼 앞으로 더 확대될 전망이다. 다만 일각에선 소비자가 얼마나 AI 활용 상품을 신뢰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가 AI를 온전히 신뢰하고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 차가 있을 것"이라며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을 우려하거나 음식의 맛, 식재료의 신선도 등 감각적인 부분을 완벽히 파악할 수 있을지 의문을 품는 소비자들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지우 (zuzu@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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