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피시앤칩스를 맛보려면 '금요일의 골목길'로

영국 거주 15년차 김세정 변호사와 영국 거주 25년차 공학자 최은주 박사가 '세상에서 가장 맛없다고 알려진' 영국 음식 이야기를 '가장 맛있게' 들려드립니다.
영국 음식이라고 하면 누구나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피시앤칩스(Fish and Chips)일 것이다. 흰살생선 튀김에 감자튀김을 곁들여 내놓는 음식이다. 다만 생선 살을 한두 입 크기로 잘라서 굽는 한국식 생선전과 달리, 이 생선튀김은 생선 반 마리를 통으로 쓴다. 재료로 사용하는 생선은 주로 대구 종류다. 대구는 오랫동안 영국인의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이미 14세기부터 아이슬란드와 대구 조업권 분쟁이 있었을 정도다.
피시앤칩스를 만드는 법은 대략 다음과 같다. 냉동이 아닌 생선의 머리를 떼어내고 등뼈를 따라 꼬리까지 길게 반으로 포를 뜨듯 자른다. 이 생선을 밀가루와 물로 만든 반죽에 담갔다가 180℃ 정도로 끓고 있는 기름에 조심스럽게 넣는다. 밀가루 반죽에 포함된 물이 순간적으로 기화되어 빠져나가면서 겉은 바삭하게 변하고 반죽에 싸인 생선은 천천히 익는 것이 포인트다. 성인 여성의 손목에서 팔꿈치 길이는 너끈히 되는 큰 덩어리의 생선 살을 천천히 요리하는 것이므로, 튀김옷 안의 생선은 익어도 촉촉하다. 요리사에 따라 차가운 얼음물을 써서 반죽의 점도를 높이는 경우도 있고, 수분 증발 속도를 바꾸기 위해 맥주나 탄산수를 쓰는 경우도 있다.
처음 영국에 와서 피시앤칩스를 접한다면 기존에 알던 튀김 맛에 비해 어딘지 눅눅하게 느껴질 것이다. 기름에 튀기는 요리이지만 일식 튀김 요리, 즉 ‘덴푸라’의 경우는 튀기기 직전에 튀김옷 재료를 더 작게 자르거나 슬슬 섞는 등의 방법으로 불규칙한 표면을 만든다. 불규칙한 튀김 표면에서 수분이 빨리 빠져나갈 수 있게 하여 더 파삭거리는 질감을 추구한다. 반면 영국식 생선튀김은 극강의 파삭거림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맛의 주된 주인공은 촉촉한 생선 덩어리다.
피시앤칩스이니 튀긴 생선에는 튀긴 감자를 곁들인다. 영국 식생활에서 한국인의 쌀에 해당하는 것은 밀이 아니라 감자다. 여러 종류의 감자 중 칩스를 만들 때 사용하는 것은 전분이 많은 타입이다. 수분이 적어 익었을 때 포슬포슬해진다. 이 감자로 만든 칩스는 소위 ‘겉바속촉’, 겉은 튀김답게 바삭하고, 속은 삶은 감자와 비슷하게 포슬포슬한 부드러운 식감을 준다.
한국인들이 쌀 맛에 민감하듯이 영국인들은 감자에 까다롭다. 영국은 1934년 감자위원회(Potato Council)를 설립하여 농사 지도라든가 마케팅 등을 관리해왔는데, 이 위원회에서는 심지어 칩스를 만드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적도 있다. 이에 의하면 칩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생감자를 약 1㎝ 두께의 막대 모양으로 잘라서 120℃ 기름에 5분 정도 튀겨 1차로 익힌 다음 서빙 직전에 160℃ 정도에서 갈색이 날 때까지 한 번 더 튀겨내야 한다. 프렌치프라이, 즉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에서 흔히 보는 얇은 감자튀김과 달리, 칩스는 식어도 폭신하고 맛이 있다. 물론 이미 영국식 음식 맛에 익숙해졌어야 식은 칩스도 맛있다고 생각할 수 있기는 하다.
사실 피시앤칩스는 의외로 짧은 역사를 가진 음식이고 탄생부터가 매우 서민적인 음식이다. 흰살생선을 튀겨서 먹는 것은 유대인들의 전통이라고 하는데,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지에서 살던 유대인(Sephardi Jews)들이 17세기경 영국으로 이주하면서 영국에서도 튀긴 생선을 먹기 시작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양푼에 ‘비빈 밥’과 돌솥비빔밥의 차이
이 음식의 빠른 대중화는 급격한 산업화와 관련이 있다. 산업혁명 이후 공장 노동자들은 하루 14시간 노동을 하는 것이 보통이었고, 부엌도 없는 집에서 살기 일쑤였다. 음식을 할 시간도 장소도 없었다. 철도의 발달로 신선한 생선의 전국 배송이 가능해지면서 피시앤칩스는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쉽고 빠르게 완제품으로 사 먹을 수 있는 서민 음식으로 자리 잡는다. 찰스 디킨스의 유명한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는 1837~1839년 월간지에 연재되었는데, 여기에도 생선튀김 가게(fried fish warehouse)에 관한 언급이 있다. 피시앤칩스 가게들은 도시 빈민 노동자가 많던 두 대도시, 런던과 맨체스터에서 먼저 생긴 것으로 보인다. 1860년 런던에서, 1863년 맨체스터에서 피시앤칩스 가게가 생겼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1860년대 런던에만 300여 개의 피시앤칩스 가게가 있었다고 한다. 20세기에 피시앤칩스는 서민 생활의 일부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게 된다.
짜장면처럼 피시앤칩스 역시 집에서 만들어 먹기보다는 칩숍(chip-shop) 혹은 칩피(chippy)라고 부르는 전문점에서 사 먹는 음식이다. 전문점이라니 거창하게 들리지만 규모가 작고 대개 포장 손님을 상대로 한다. 어느 동네든 칩숍이 하나쯤 있다. 칩숍에서 주문할 때는 우선 생선 종류를 고르고 칩스의 양을 선택한다. 그러면 직원이 생선튀김과 칩스를 담고, 소금이나 몰트 비니거(malt vinegar, 숙성 식초)를 치겠냐고 물을 것이다. 선택에 따라 튀긴 음식들 위에 무심하게 소금을 툭툭 치고, 몰트 비니거를 듬뿍 뿌리고, 종이를 슥슥 말아서 건네줄 것이다. 마치 추어탕 전문점에 돈가스 메뉴가 있는 것처럼 생선이 싫은 사람을 위해 스캠피(scampy, 작은 새우튀김)나 치킨이 있는 경우도 있다.
금요일 저녁이면 동네의 피시앤칩스 가게에 길게 줄을 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가족의 저녁 식사로 포장해 가기 위해서다. 피시앤칩스는 학교 식당의 금요일 단골 점심 메뉴이기도 하다. 금요일에 고기를 피하고 생선을 먹는 것은 이날 예수님이 돌아가셨다고 믿어 성스럽게 보내던 중세 기독교의 전통 때문이다. 중세 수도사들은 애초 금요일에는 금식을 했다. 이건 좀 못할 짓이었는지 점차 고기를 피하는 선에서 타협하고 대신 생선을 먹게 되었고, 일반인들이 이에 영향을 받았다. 다만 생선튀김이 막상 보수적 기독교 측에서는 경원시하던 유대인의 식문화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흥미롭다고 하겠다.
흔히 런던의 식당이나 펍에서는 ‘진짜’ 피시앤칩스를 맛보기 힘들다고들 한다. 여기서 파는 피시앤칩스는 서민용 피시앤칩스를 모티프로 한 살짝 다른 요리라고 할 수 있다. 막 튀겨 나온 생선튀김에 몰트 비니거를 뿌리는 대신 레몬을 곁들여준다. 반죽은 가벼운 쪽을 선호하고 완두콩(peas)과 타르타르소스가 나온다든가 하는 식이다. 이 모든 것이 마치 집에서 남은 반찬을 양푼에 몽땅 넣고 먹는 ‘비빈 밥’과 한식당에서 먹는 돌솥비빔밥의 차이처럼 느껴진다. 그러니, 진짜 영국 서민 음식 피시앤칩스를 맛보기 위해서는 평범한 주택가의 금요일을 노려야 한다. 줄이 긴 곳이라면 실패 확률은 더 낮을 것이다.
김세정 (변호사) 최은주 (이학박사)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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