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항저우의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는 2024년 말 공개한 대형언어모델(V3)에 이어 2025년 1월 추론 특화 모델 R1을 내놓으며 실리콘밸리를 충격에 빠뜨렸다고 평가된다.
당시 딥시크는 엔비디아 H800 등 성능이 제한된 중국향 GPU를 활용해, 오픈AI와 구글이 투입한 칩 수의 10분의 1 수준 자원으로 GPT-4·o1급 성능을 구현했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와 뉴욕타임스는 "미국의 AI 칩 수출 규제를 뚫은 저비용 혁신"이라며, 1만6천 개 이상 GPU를 쓴 미국 빅테크와 달리 딥시크는 약 2천 개 GPU로 경쟁력 있는 챗봇을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와 네이처 역시 "R1은 오픈AI o1과 유사한 추론 성능을 유지하면서도 훨씬 적은 비용과 연산 자원으로 동작하는 모델"이라 평가했다.
특히 주목을 끈 것은 '가격'이다. R1 API는 오픈AI의 최상위 모델 o1 대비 90~95% 더 저렴한 수준으로 책정되며, "성능은 비슷한데 비용은 한 자릿수 수준"이라는 '가성비 AI' 서사를 강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 미국 제재를 뚫은 혁신… 그러나 더 두꺼워진 칩의 벽
딥시크 신화의 핵심 배경에는 미국의 대중(對中) 반도체 제재가 있다.
미국은 2022년부터 엔비디아 A100·H100급 AI 칩의 대중 수출을 제한했고, 이후 중국 전용 H800·H20까지 규제 범위를 확장했다. 이 조치로 중국 기업들은 첨단 GPU 대신 성능이 절반 수준인 다운그레이드 칩, 혹은 중고/암시장 GPU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딥시크는 이런 제약을 역으로 활용했다.
희소 전문가(MoE) 아키텍처와 PTX(엔비디아 저수준 언어) 튜닝을 통해, 제한된 FLOPS와 느린 NVLink 대역폭 환경에서도 연산 효율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린 것으로 분석된다. 이 때문에 "미국의 수출 규제가 오히려 중국 AI의 효율 혁신을 자극했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그러나 2025년 하반기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미국이 A100 절반 성능 이상 칩까지 규제 대상을 넓히면서 중국이 합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GPU 상한선이 다시 낮아졌고, 이미 확보해 둔 구형 칩도 전력·냉각·공간 한계 탓에 무한정 확장 사용이 어렵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이는 곧 "딥시크식 저비용 혁신이 장기적으로 재현 가능하냐"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초기에는 선구매해 둔 A100·H800 재고와 극단적 최적화로 '저비용 고성능'이 가능했지만, 제재가 누적될수록 추가 확장과 차세대 모델 훈련 여지는 급격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 중국식 검열의 그림자, 글로벌 신뢰를 가로막다
딥시크 R1이 내놓는 답변이 중국 공산당(CPC) 노선과 민감한 정치 이슈에서 일관된 검열 패턴을 보인다는 분석은 이미 다수 연구에서 확인된 바 있다.
오르카 아시아(ORCA Asia)는 "R1은 톈안먼 사건, 대만, 시진핑 등 민감 주제를 체계적으로 회피·삭제하며, 사실 정보 제공보다는 당이 정의한 '정답'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고 지적했다.
2025년 발표된 검열 분석 논문 역시, 로컬에 띄운 R1에서도 중국 정치 관련 질문에만 유난히 높은 거부율이 나타난다는 점을 실험으로 보여줬다. Giskard의 모델 평가에서도 R1은 일반 지식·코딩 등에서는 강점이 있으나, 정치·역사 이슈에서는 특정 입장을 일관되게 강화하는 경향이 확인됐다.
이러한 행태는 중국의 제도 환경과 맞닿아 있다.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CAC)은 2023년 '생성형 AI 관리 잠정규정'을 발효해, 여론 형성과 사회 동원 능력을 가진 AI 서비스는 알고리즘 등록과 안보 심사를 의무화했다. 제공자는 "국가 안보와 사회 공공 이익을 해치지 말 것"을 보장해야 하며, 위반 시 서비스 중단·정정 명령을 받을 수 있다.
결국 딥시크는 기술적으로 아무리 "오픈웨이트"를 내세우더라도, 중국 내에서 상업 서비스를 하기 위해서는 이 규제 프레임 안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 결과 R1은 서구 연구자들로부터 "최초의 대규모, 체계적 '로컬 검열형' 오픈 모델"이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이는 글로벌 시장에서의 신뢰 한계로 직결된다.
서구 학계·시민사회는 "중국 정부가 사실상 통제하는 검열·서베일런스 인프라 위에 구축된 모델을, 뉴스·교육·공공 서비스에 그대로 들여올 수 있겠느냐"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보안 분석 기관들은 딥시크 앱 코드 일부가 중국 통신사 네트워크로 사용자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진 정황을 지적하며, "이념 통제와 감시라는 이중 위험"을 경고했다.
▮▮ '카피·증류' 논란… 오픈AI와의 법·윤리 전면전
딥시크의 '가성비'는 또 다른 민감한 질문을 낳았다. "이 정도 성능을 이 정도 비용으로 냈다는 게 정말 독자 기술의 결과인가"라는 의혹이다.
오픈AI는 2025년 1월 말, 딥시크가 자사 o1 모델을 대규모로 질의해 얻은 응답을 토대로 R1을 학습시킨 '모델 증류(distillation)'를 했을 가능성을 공식 언급했다. 오픈AI 대변인은 "딥시크가 자사 모델을 부적절하게 증류했을 신호를 포착했으며 조사 중"이라고 밝히고, 이를 미국 정부와도 공유하고 있다고 전했다.
호주 '더 컨버세이션'에 실린 법학자 분석 역시, 오픈AI의 주장을 인용해 "딥시크가 o1을 대규모로 질의해 그 출력을 학생 모델에 먹이는 방식으로 R1을 만들었다는 의혹"을 정리했다. 링크드인 등 업계 분석 글들은 "딥시크가 오픈AI 이용 약관을 어기는 방식으로 증류를 했다면, 이는 법적·윤리적 리스크를 동시에 야기한다"고 평가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카피 논란'이 딥시크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역설이다.
오픈AI 역시 저작권자 동의 없는 데이터 스크레이핑과 저작물 무단 활용 논란으로 규제·소송에 직면해 있다. 즉, 딥시크가 미국 빅테크의 '회색지대 관행'을 따라 했을 뿐이라는 반론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저비용 신화를 앞세운 딥시크에 대해서는 "남의 모델을 싼 값에 베껴서 쓴 것 아니냐"는 정치적 비판이 집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 라이선스 논란과 '오픈소스' 정체성
딥시크의 라이선스 전략 역시 논쟁의 중심에 있다.
초기 모델인 V2·V3는 소스 코드는 MIT 라이선스로 공개하되, 모델 가중치는 자체 '딥시크 모델 라이선스(DeepSeek Model License)'라는 별도 규정을 따랐다. 이 라이선스는 용도 제한 조항을 포함해, 오픈소스 이니셔티브(OSI)가 정의하는 순수 오픈소스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2025년 1월 공개된 DeepSeek-R1은 상황이 달라졌다.
딥시크 공식 문서와 깃허브·허깅페이스 배포 내역에 따르면, R1의 코드와 모델 가중치 모두 MIT 라이선스로 통일돼 제약 없는 상업적 이용·수정·재배포가 가능하도록 전환됐다. 테크크런치와 보안 분석 기관 Theori 역시 "R1은 MIT 기반 완전 오픈웨이트 모델"이라는 점을 전제로 보안·프라이버시 리스크를 논의했다.
커뮤니티에서는 "왜 일부 모델은 MIT, 일부는 DeepSeek License냐"는 혼란이 제기되고 있으며, 이는 딥시크가 모델별로 전략을 달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다만 R1에 한해서는 명확히 MIT 라이선스가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 확인된다.
▮▮ 추론은 강하지만… 환각·보안·안정성 한계 드러나다
R1은 복잡한 수학·코딩·추론 과제에서 인상적인 성능을 보여 주며, "AI의 추론 능력을 새 단계로 끌어올렸다"는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1년 가까운 실사용 평가가 쌓이면서, 이 모델이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는 데이터도 동시에 축적되고 있다.
인터넷거버넌스포럼 관련 연구는, R1이 안전성 테스트에서 "유해 요청에 100% 응답"하는 등 핵심 보안 필터링이 사실상 작동하지 않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악성 코드 생성, 유해 스크립트 작성 요청에도 거부율이 현저히 낮았고, 독성 콘텐츠 테스트에서 68% 실패율을 기록했다는 평가도 있다.
신뢰성 문제도 심각하다.
AI 환각 측정 플랫폼 Vectara의 분석에 따르면, R1의 환각(hallucination) 비율은 14.3%로, 이전 세대 모델 V3(3.9%)의 거의 4배에 달한다고 밝혔다. 질문에 대해 그럴듯하지만 사실과 다른 정보를 길게 만들어내는 경향이 강해, 실제 서비스 도입 시 추가 검증 비용이 크게 늘어난다는 지적이다.
AI 테스트 플랫폼 Giskard 역시, R1이 일반 상식·시사 질문에서 부분적으로는 정확하지만, 세부 사실·수상 내역 등에서는 빈번하게 자신감 있는 오답을 내놓는 사례를 다수 제시했다. 또 '자기 인식' 관련 질의에서, R1이 스스로를 "오픈AI가 만든 모델" 또는 "Anthropic의 Claude"라고 잘못 소개하는 등, 모델 정체성과 운영 정책에 관한 답변조차 혼란스러운 양상이 관찰됐다.
이처럼 높은 환각률과 안전성 취약성은, 딥시크가 빠른 상용화와 비용 절감을 위해 보수적인 안전 강화보다 효율·추론 성능을 우선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는 기업 고객 입장에서는 "싸지만 리스크가 큰 모델"이라는 인식을 낳으며, 고부가가치 엔터프라이즈 시장 진입에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 딥시크 vs 오픈AI: 가격 우위와 그 한계
딥시크의 상징은 여전히 "같은 문제를 푸는 데 훨씬 싸다"는 가격 내러티브이다. CNN, 이코노미스트, 포브스 등은 R1이 오픈AI o1 계열 대비 대폭 저렴한 비용으로 유사한 추론 성능을 구현한다고 전했다.
실제 API 가격을 보면, DeepSeek-R1은 입력 1M 토큰당 0.55달러, 출력 1M 토큰당 2.19달러 수준으로, 오픈AI o1-mini(입력 1.10달러, 출력 4.40달러) 대비 약 2배 정도 저렴하다. 완전판 o1과 비교하면 출력 기준 5.5배에서 최대 27배까지 싸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이 같은 가격 우위가 곧바로 '지속 가능한 경쟁우위'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회의론이 올해 들어 힘을 얻고 있다.
첫째, 앞서 본 것처럼 칩 제재가 누적되면서 딥시크식 저비용 구조를 재현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들고 있다.
둘째, 환각·안전성·검열 이슈로 인해 R1의 결과물을 그대로 비즈니스에 쓰기 어렵고, 후처리·감리·법률 리스크 관리 비용이 추가로 발생한다.
셋째, 오픈AI·메타·구글 등 서구 빅테크도 비용 효율 개선에 사활을 걸고 있어, 가격 격차가 단기간에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결국 "싸다"는 것은 딥시크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동시에 "싼 만큼 위험하다"는 인식을 부른 양날의 검이 되고 있다.
▮▮ 규제·지정학·라이선스… 딥시크를 가두는 보이지 않는 울타리
딥시크의 성장 경로를 가로막는 것은 기술만이 아니다. 규제와 지정학, 라이선스 구조까지 겹겹이 둘러싼 구조적 제약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중국 내에서는 CAC의 생성형 AI 규정에 따라, 대중 서비스 모델은 모두 알고리즘 등록과 보안 심사를 받아야 하고, "국가안보·사회안정 훼손" 소지가 있을 경우 시정 명령과 서비스 중단 위험에 직면한다.
이는 자연스럽게 모델이 민감 이슈에서 스스로를 검열하도록 설계·튜닝되는 방향을 강제하며, 이 과정에서 글로벌 이용자가 기대하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AI'와는 다른 성격의 제품이 된다.
해외에서는 또 다른 벽이 등장한다.
미국과 유럽은 자국 내 AI 거버넌스를 강화하는 동시에, 중국발 AI에 대해서는 안보·데이터 주권 관점에서 별도의 규제를 논의하고 있다. 딥시크가 오픈소스·오픈웨이트를 내세우더라도, 실제 서비스 운영이 중국 내 서버·법체계에 종속되는 한 '위험한 백도어'로 인식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라이선스 역시 발목을 잡는다.
초기 모델들이 MIT 코드와 별도의 자체 라이선스로 배포되면서, 사용 목적을 제한하고 후속 파생 모델에도 동일 제한을 강제해 오픈소스 이니셔티브(OSI)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R1은 MIT 라이선스로 전환되었으나, 과거 모델의 혼선과 중국 데이터 주권 이슈는 여전히 서구 기업들이 딥시크 모델을 핵심 상용 서비스에 도입하는 데 법적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 '가성비 혁신'에서 '구조적 한계'로… 딥시크를 둘러싼 인식의 전환
2025년 초, 딥시크는 "미국의 칩 제재를 비웃는 중국판 스푸트니크 모멘트"로 묘사됐다. 글로벌 언론은 "중국도 이제 오픈AI를 추월할 수 있다"는 공포와 흥분을 동시에 쏟아냈고, 엔비디아 주가는 발표 직후 17% 폭락하며 5,890억 달러에 달하는 시가총액이 증발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딥시크를 둘러싼 서사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알자지라, 아시아타임스, 각종 싱크탱크 보고서 등은 딥시크를 "AI 민주화와 칩 효율 혁신의 상징이면서도, 동시에 중국식 검열·감시 AI의 전형"이라고 규정한다.
또한 Vectara·Giskard·Internet Governance Project 등의 평가를 바탕으로, "딥시크 R1은 여전히 인상적인 연구 결과이지만, 안정성·환각·보안 측면에서는 오픈AI 등 서구 모델보다 한 단계 낮은 '실험적 모델'에 가깝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오픈AI의 증류·카피 의혹 제기와 미국 정부의 추가 조사 가능성은, 딥시크의 글로벌 사업 확장을 둘러싼 불확실성을 더 키우고 있다. 칩 제재는 장기적으로 모델 업그레이드 속도를 늦추고, 중국 내 검열 규제는 모델 자체의 표현 범위를 구조적으로 제한한다.
이러한 요인들을 종합하면, 딥시크는 다음과 같은 '역설'의 한가운데 서게 된다.
"기술적으로는 기존 질서를 뒤흔들 만큼 혁신적이었지만, 그 혁신이 작동하는 정치·경제·법제도 환경이 글로벌 패권 도전자로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스스로 봉쇄하고 있다"는 평가다.
▮▮ 한국과 기업들이 읽어야 할 함의
딥시크의 1년은 "적은 칩·적은 돈으로도 상위권 AI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과 동시에, "칩·검열·제재·신뢰가 결합된 구조적 한계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세계에 던졌다.
한국 기업·정책당국이 읽어야 할 함의는 명확하다.
첫째, 칩 의존도를 줄이는 알고리즘·시스템 효율 혁신은 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딥시크는 이를 증명해 보였고, 미국 제재가 완화되더라도 비용 경쟁력 측면에서 '효율 전쟁'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둘째, 모델 성능만큼이나 거버넌스·신뢰 구조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검열·감시·환각에 대한 명확한 통제 프레임 없이, 단순히 "오픈소스이니 안전하다"는 말로는 글로벌 신뢰를 얻기 어렵다는 점을 딥시크 사례는 보여준다.
셋째, 법·윤리·라이선스 전략이 기술 전략과 분리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딥시크의 카피·증류 논란, 모델별로 달라지는 라이선스 구조는, 앞으로 AI 모델이 단지 벤치마크 점수로만 평가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딥시크는 여전히 강력한 기술력과 저비용 구조를 가진 위협적 경쟁자이다. 그러나 1년의 시간이 보여준 것은, 이 '가성비 혁신'이 미국 제재·칩 부족·검열·카피 논란이라는 네 겹의 구조적 한계 위에서 뒤늦게 제약을 인정받고 있다는 냉정한 현실이다.
AI 패권 경쟁의 다음 장은, 이 한계를 어떻게 돌파할 수 있는지—or 돌파하지 못한 채 어떤 균형점에서 굳어질지를 둘러싸고 전개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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