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노트가 여행책이 됩니다. <내 손으로> 시리즈를 집필하는 이다 작가

2014년 『내 손으로 발리』라는 여행책이 나왔습니다. 사진도 없고, 글자도 활자로 인쇄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손으로 쓴 글에 손으로 그린 그림이, 마치 누군가의 여행 노트를 열어본 것처럼 한 권의 책에 오롯이 담겨 있었습니다. 세상에 없던 여행책의 등장에 사람들은 다음 시리즈가 나오길 고대했습니다. 마치 유일무이한 작품을 들고 여행을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지요.

『내 손으로 발리』를 만든 이다 작가는 이후 『내 손으로, 교토』, 『내 손으로, 치앙마이』 등 네 권의 ‘내 손으로’ 시리즈를 발간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여름, 다섯 번째 책인 『내 손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출간되었습니다. 브릭스 매거진에서는 이다 작가를 만나 ‘내 손으로’ 시리즈의 제작 과정과 신간 『내 손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내기까지의 과정을 자세히 들어보았습니다.
『내 손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출간한 이다 작가

Q. 책 형식이 참 독특한데, 혹시 참고가 된 책이 있나요?

고갱이 타히티에 갔을 때 여행 노트를 썼어요. 여행에 관한 내용만 쓴 건 아니고 자기 작품 아이디어도 섞여있는 노트예요. 글이 있고, 그림이 있고 하는 형식에서 참고를 좀 했어요. 또, 세노 갓파라는 일본의 무대 디자이너가 있는데, 이분이 여행기를 많이 썼어요. 실생활에서 다른 사람들 관찰을 많이 하고 집착하는 대상도 있어요. 창문, 역무원, 호텔 방, 이런 거에. 호텔 방에 가면 사이즈를 다 재서 방을 그대로 위에서 내려다본 그림을 그려요. 그분의 인도 여행기에서도 영감을 많이 받았어요.

Q. 책 제본에 공이 아주 많이 들어갔어요.

치앙마이부터 실제본을 했어요. 미술문화에서도 그 방식을 마음에 들어 하셔서 시베리아도 실제본으로 나왔지요. 앞으로 나올 타이완도 그런 형식으로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어요.

Q. ‘내 손으로’라는 시리즈 제목은 스스로 지은 건가요?

이게 원제는 『이다 in 발리』 같은 심플한 제목이었는데요, 출판사에서 이 책을 보고 나면 제일 먼저 드는 감정이 ‘나도 해 보고 싶다’는 거라며 뒤에 무지 스케치북 노트를 세트로 묶어서 독자 여러분도 그려 봐라 하는 식으로 판매하는 게 어떠냐고 지금 제목을 제안했어요.

이다 작가의 『내 손으로 교토』

Q. 일반적인 책과 형식이 다르다는 점에서 걱정은 없었나요?

좋아해 주시는 분들도 많았는데 싫어하시는 분들도 있었어요. 저는 다들 너무 좋아할 줄 알았는데 비난하시거나 싫어하는 분들도 있으셔서 깜짝 놀랐어요. 나 재밌으니까 남들도 재밌겠지, 이런 가벼운 마음이었어요. 지금은 그래도 상당히 정제되었는데, 발리의 경우에는 출판사에서 일부러 오탈자를 안 잡고 내보냈어요. 그걸 매력이라고 본 거예요. 당시에는 사실 그런 책 형식이 없어서 출판사에서도 사실 이거 무리다, 말이 안 된다, 그런 의견도 있었는데 담당 편집자가 큰 용기를 가지고 확 질러 버린 거지요. 의외로 잘 돼서 다음 책, 그다음 책이 나오게 됐고요.

Q. ‘불호’하는 분들은 어떤 말씀을 하셨나요?

주로 맞춤법 틀린 것 지적과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말이 많았어요. 그림이 ‘초딩 같다’ 이런 말도 있었고요. 사실 그림체 같은 부분은 제 스타일이기 때문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가독성이 떨어지는 건 꼭 개선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 다음 여행기부터는 글씨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그러다보니 글씨를 점점 잘 쓰게 됐고요.

Q. 완성된 원고를 보고 쓰는 게 아니라 바로 쓰신 건가요?

지금은 그렇게 못 쓰는데 교토까지는 밤에 매일 썼어요. 치앙마이도 앞쪽은 밤에 썼는데, 이후 일주일 단위로 끊어야 하니까 요약을 한 다음 써야 해서 매일 쓰지는 못했고요.

이다 작가의 여행 일지

이게 제 일지인데, 매일 이런 식으로 기록을 해요. 아침, 오전, 점심, 오후, 이렇게 시간을 나누고 위에는 날짜를 적지요. 그리고 매일 있었던 일을 엄청 구체적으로 써요. 책에 글씨를 쓸 때는 여기서 에피소드를 골라요. 노트에 줄 친 부분이 쓸 만한 에피소드라고 골라 놓은 거예요. 뭘 미리 써 놓고 보고 쓰지는 않고 생각하면서 바로 써요.

Q. 그래서 원고를 보다 보면 종이를 새로 붙이거나 수정 테이프를 바른 흔적이 있는 거군요.

책을 만들 때 원본을 스캔하면 수정 테이프 자국이 거의 안 보여요. 책에 나온 수정 테이프 자국은 디자이너가 일부러 효과를 낸 거예요. 원본 느낌을 그대로 살리려고요. 스캔본은 종이가 누렇고 글씨가 생각보다 까맣지 않아요. 근데 책에서는 글씨가 무조건 새까매야 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스캔을 한 다음에 디자이너분이 그림하고 글을 다른 레이어로 분리해요. 그런 다음 바탕은 하얗게, 글씨는 완전 까맣게 레벨값을 조정하고 그림은 원본 색에 맞춰 하나하나 다시 수정해요.

이다 작가의 여행 일지

Q. 글씨 쓰는 데 능숙해져서 수정 테이프를 안 쓴 줄 알았어요.

글씨가 좋아지기는 했어요. 정성껏 쓰는 버릇을 들이다 보니까 점점 개선되기도 했고요. 근데 펜에 따라 또 달라요. 수성펜으로 쓴 부분은 최고로 갈겨쓴 글씨체인데, 가장 빠르고 손목에 무리가 안 가요

Q. 북토크 사진을 봤는데, 참석하신 분들이 이다 작가님을 책 속 캐릭터와 다르다고 느끼시지 않던가요?

저와 한 시간 정도 이야기하다 보면 같은 사람이라는 걸 느끼실 거예요. 책 속의 이다 캐릭터는 제가 스무 살 때 만들었는데, 그때 정말로 저렇게 생겼어요. 직접 자른 머리에, 눈이 지금보다 매서웠어요. 저는 이 캐릭터가 저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작업 중인 이다 작가 ⓒ 이다

Q. 독자, 팬 분들이 책에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원하는 부분은 없었나요?

왜 여행기에 사진이 없냐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저는 여행을 가기 전에 그곳의 영상이나 사진을 보면 의욕이 떨어지고 흥미를 잃어요. 제가 여행기에 사진을 단 한 장도 넣지 않는 이유도 제가 갔다 온 기록을 그림으로 보면 그건 그분만의 그림이 될 수 있지만, 사진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완전 똑같은 풍경이 아니라 제가 재해석한 풍경을 보는 거라 마음에 들어오는 게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Q. 찍어 온 사진을 참고해서 그리는 게 아닌가요?

참고하지요. 참고는 하는데, 똑같이 그리지는 않아요. 이번 책에서 가장 좋다고들 하는 그림이 모스크바 붉은 광장 그림인데, 저도 이 그림을 좋아해요. 여기를 사진으로 찍으면 이런 느낌으로 절대 안 나와요. 이건 제가 갔을 때, 제가 보았던 풍경이에요. 공간이 너무 넓으니까 살짝 이렇게 굽어서 보이는데, 현장에서 스케치를 하고 그걸 그대로 살린 거예요.

현장 스케치가 왜 중요하냐면 이런 구도는 그때 봤던 느낌으로밖에는 안 나와요. 간단하게 여기에 뭐가 있고 하는 식으로 구성을 해 놓고 그림을 그릴 때 기억을 불러오는 거예요. 그래도 사진으로 못 봐서 섭섭한 분들은 직접 가서 보시면 된다, 가서 자기 마음에 자기 풍경을 담아 오시면 된다, 그런 게 이 책의 순기능이지요.

이다 작가의 현장 스케치

Q. 이전 세 권은 한 장소에 머물렀고,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계속해서 이동했지요.

네 이전 여행들은 주로 한 도시 여행이었어요. 이동이 많지 않고 특히 치앙마이는 두 달 동안 한 숙소에 머무는 여행이었어요.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러시아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간 여행이에요. 거의 매일 이동이었지요. 가장 다른 점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정신이 들 만하면 또 이동하고 또 이동하고, 그걸 반복하다 보니까 나중에는 약간 재밌는 거예요. 매일 퀘스트 하는 느낌이어서 이전 여행지처럼 살짝이라도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었어요.

Q. 책 작업을 하는 면에서는 무엇이 달랐나요?

그림 같은 경우는 한 장을 진득하게 그릴 시간이 없었고, 일지에 아주 간단하게만 그려놨다가 집에 와서 새로 그렸어요. 글도 자세히 쓸 시간이 없었고요. 나중에 간단한 메모만 보고 글을 쓰는데 의외로 다 기억이 나는 거예요. 사람의 기억력이 생각보다 오래가는구나, 기록을 하면서 그 기억이 연장되는 과정을 즐기며 기록 강박에서도 조금 편안해진 것 같아요.

Q. 앞으로의 대만 여행은 어떤 방식인가요?

대만 철도가 나라를 한 바퀴 돌면서 이어져 있어요. 환도 여행을 하는 게 일단 목표고, 시베리아 횡단열차 이후 아직 기차 사랑을 놓지 못해서 기차를 타지만 모든 곳을 다 들르지는 않을 거예요. 중간중간 내려서 여행하는 방식으로 원을 한 바퀴 그리는 거지요.

이번에는 매일매일 즐기는 거에 좀 더 집중해 보려 해요. 여행을 갔으니 밤에 나가서 구경도 하고 그래야 했는데, 지금 안 쓰면 잊어버린다는 압박감 때문에 즐길 수가 없었어요. 러시아 여행 이후 시간을 내서 즐겨도 다시 기억을 불러올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으니 이제 조금 더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인터뷰·사진 | 이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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