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싸나이들이 부산항에 들어오지 않는 이유

여름이면 바다, 바다하면 부산. 여름맞이 부산 여행을 갔거나 계획하는 왱구들 있을 거다. 그런데 부산 바닷가를 따라 돌아다니다 보면 묘한 풍경을 볼 수 있는데,바다에 표류하듯 떠 있는 수많은 배들.

왜 항구도 아닌 그저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걸까. ‘부산 영도 바다 위에 떠있는 배들의 정체를 알아봐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했다.

[부산연구원 이자연 박사]

주차장이라고 좀 보시면 될 것 같고 선박들이 계속 원활하게 왔다갔다 하기 위해서⋯

결론부터 말하면 배들이 이렇게 항구도 아닌 부산 인근 바다에 떠있는 건 일종의 임시주차라고 보면 된다.

부산항 남쪽 지역에서 부산 영도와 송도 사이 앞바다를 바라보면 실제로 배들이 우르르 모여 있다. 직접 가봤더니 눈에 보이는 배만 대충 20척 가량이었는데, 며칠 뒤에 다시 찾았더니 그대로 정박상태였다.

알고보니 부산 영도와 송도 사이는 부산 남항의 ‘대기정박지’로 지정된 구역이었다.그러니까 배가 본래 항구에 들어가지 않고 이 구역에 닻을 내려 고정된 채 바다에 떠있는 것. 항해사들이 쓰는 말로 묘박(錨泊, Anchoring)이라고 하는데, 항해사들은 이 대기정박지를 ‘묘박지’라고 부르고 있었다.

배를 이렇게 임시주차 시키는 이유는 첫째, 일단 부산항에 배 들어갈 자리가 모자라기 때문. 지난해 부산항에 입·출항한 배는 8만 척이 넘는데, 2위 그룹인 울산·광양·인천 등의 2배다. 자리가 모자라 인근 국가 전용 부두를 따로 만들기도 했는데, 그래도 배 댈 자리가 부족한 거다.

둘째, 입항 행정절차가 늦어진 경우. 공항 입국심사대에서 대기 타는 거랑 비슷하다. 배는 정기적으로 항구를 오가는 정기선과 어쩌다 한 번 뜬 비정기선으로 나뉜다. 정기선은 미리 스케줄이 다 정해져 입항 절차가 비교적 쉬운데,비정기선은 절차를 밟는 동안 임시주차장에서 대기하는 구조다.

셋째, 비용을 아끼려는 경우. 배가 일단 항구에 들어가면 ‘항만시설 사용료’라는 걸 내야 한다. 물론 묘박지에 대기해도 같은 명목으로 부산항만공사에 돈을 내지만, 금액은 거의 절반 수준이다.

배가 묘박지에서 마냥 놀면 업체에도 손해다.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묘박지에서 대기하는데,주로 배를 수리하거나 연료를 공급받을 때다. 근데 항구에 들어가서 작업을 하면 돈을 더 많이 내니까그냥 묘박지에 머물면서 거제도 등에서 넘어오는 수리선을 기다리는 거다.

취재하다가 알게된 건데, 이렇게 임시주차 된 배는 짧게는 하루, 길게는 1년도 넘게 바다에 떠 있다. 선장이랑 선원들도 그 기간 동안 주로 배에 탄 채 당직도 선다.

그럼 이들이 먹고 마실 식량이나 물은 어떻게 조달할까?‘통선’이라는 쪼그만 배가 큰 배 사이를 왔다갔다하면서 공급한다고. 격오지 부대 ‘황금마차’ 같은 역할인데, 이걸 타고 육지로 외출도 나간다. 요새는 드론을 쓰기도 한단다.

다른 나라 항구에도 묘박지는 다 있는데, 위험한 곳도 많다. 동남아엔 묘박 중인 배에 쪽배로 올라타 물품을 털어가는 좀도둑이 종종 있고, 아덴만 사건이 벌어진 중동 쪽 묘박지에선 무장해서 배를 털거나 인질을 잡는 해적도 설친다고 한다.

[무역회사 관계자]

‘해적 당직’이라고 해가지고 항해사는 브릿지에서 레이더를 보면서 타 선박들의 동향을 주시를 하고 당직 부원들은 실제로 선내를 계속 순찰을 하면서. 아덴만 쪽 이쪽에 왔다 갔다 하는 회사들은 선박에다가 용병을 고용을 해. 선원들이 총기를 소지할 수는 없잖아. 그러다 보니까 소화호스 같은 걸 연결을 해서 물로 쏴가지고⋯

그럼 우리나라 묘박지는 안전하니까 다 괜찮냐면 그건 아니다.특히 부산 묘박지는 자리가 좁아 문제 소지가 많다.

[부산연구원 장하용 박사]

풍랑 상태가 되었을 때 그 배들과 배들 간에 거리가 좁게 되면 충돌할 가능성이 있고요.

부산 자체가 오래된 항구다 보니 부두로 개발 가능한 지역은 다 개발된 상태. 부두를 늘리려 해도 기피시설로 여겨져 주민 반대가 심하다. 거기다 묘박지로 새로 지정 가능한 조건을 갖춘 곳도 흔치 않다보니 기존 묘박지에 배들이 빽빽히 몰리는 거다.

더욱이 부산엔 가덕도 신공항 등 대형 공사가 시작될 예정인데, 이러면 엄청난 수의 바지선이 부산 바다를 매일 같이 지나갈 가능성이 크다.

풍랑이 심할때 이 바지선들이 따닥따닥 붙어 묘박 중인 배와 충돌하면아찔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이미 2007년 태안 바다에서 묘박하던 유조선과 바지선이 충돌해 초대형 참사가 나기도 했다.

[부산연구원 장하용 박사]

큰 그런 해상 유류 사고가 생길 가능성이 계속 높아지고 있는 상태거든요. 대비를 하지 않으면 또 문제가 될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부산시와 정부는 이런 사고가 재발하는 걸 막기 위해대책부터 좀 내놔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