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리티지 입은 디펜더 카운티 에디션

오프로더를 탈 때면 본능적으로 숲 깊숙이 들어가고 싶다. 기자의 의무감이 아니라 그렇게 타는 차니까. 타고난 네바퀴굴림을 쓰지 않는다면 그 차의 반에 반도 경험했다고 볼 수 없다. 오프로더 구매자의 운전 패턴을 냉정하게 살펴보면, 흥미로운 진실이 하나 드러난다.

고가 오프로더 운전자일수록 산을 타거나 바위 위를 기어오를 수 있는 능력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심지어 4륜 로 기어 한번 안 물려본 이가 태반일 터다. 1년에 한두 번 가는 캠핑에서 써볼 기회가 있으면 다행이지만, 일단 이들은 일상적인 편리함을 더 중시한다.

1억원이 넘는 디펜더 110을 타고 일상 생활을 해보기로 했다. 서울 가산에서 차 안 가득 동료를 태우고, 순정 T맵 내비게이션에 의지해 일산으로 점심 먹으러 떠났다. 긴 휠베이스(3022mm) 덕에 180cm가 넘는 성인 남성 둘이 뒷자리에 앉아도 공간이 여유롭다. 촬영 장비는 972L 기본 적재 공간 절반도 채우지 못했고, 2열에 사람을 태우지 않으면 최대 2277L까지 확장해 쓸 수 있다.

강변북로 교통체증에 시달린 후엔 최고출력 249마력, 최대토크 58.1kg·m를 발휘하는 직렬 6기통 디젤 파워로 자유로를 신나게 달렸다. 편안한 온로드 승차감은 디펜더를 오프로더가 아닌 프리미엄 SUV로 생각하는 구매층이 더 많은 이유다.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결합한 D250 모델은 정숙함과 연비까지 잡았다. 1억원이 넘는 차치고는 10개 스피커로 구성한 400W 메리디안 사운드 시스템은 기대에 못 미친다. 훨씬 저렴한 그랜드 체로키도 19개 스피커로 950W 출력을 발휘하는데, 적잖이 아쉬운 부분이다.

디펜더는 도로를 벗어났을 때 더 매력적이다. 오프로드에선 거의 무적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기존 프레임 방식 설계보다 비틀림 강성이 3배 견고한 경량 알루미늄 모노코크 구조는 돌무더기에 발 하나 걸친 채 넘어도 신음 한번 안 내지른다. 시승차로 데려온 디펜더 110 카운티 에디션은 외모부터 궁극의 오프로더로서 존재감이 범상치 않다. 오리지널 디펜더 카운티의 독특한 익스테리어 요소가 눈길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타스만 블루와 후지 화이트의 투톤 외장 컬러와 과거 하얀 스틸 휠 스타일의 20인치 알로이 휠이 전설적인 헤리티지를 강조하고, 특유의 실루엣을 구현하는 높은 차체는 당장에라도 모험을 떠나고픈 늠름한 자태를 나타낸다.

카메라 6개, 초음파 센서 12개, 레이더 4개로 구성한 첨단 ADAS는 프리미엄 SUV로서 손색없는 요소지만, 사실 오프로드에서 더 활약한다. 서라운드 카메라는 외부 투시도는 물론 3D로 렌더링한 자동차 이미지를 주변 환경과 결합해 화면에 띄운다. 좁디좁은 극한의 오프로드 상황에서 운전자와 차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다.

카운티 에디션에 기본 적용한 전자식 에어서스펜션은 오프로드 상황에서 지상고를 75mm 높이고, 더 극단적인 조건에서는 추가로 70mm 더 올라간다. 900mm 도강이 가능한 비결이다. 수동으로 지상고를 높일 필요 없이 지형 및 노면 상태에 따라 주행 모드를 바꾸는 전자동 지형 반응 시스템에서 도강 프로그램을 선택하면 지상고 변경은 물론 스로틀 반응까지 부드럽게 바꾼다. 센서가 실시간으로 수심을 감지해 화면에 표시하는 점도 듬직하다.

박지웅 사진 이영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