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80년대, 한지일은 영화계에서 누구보다도 빛나는 배우였다.
'바람아 구름아'로 데뷔해 '경찰관'으로 대종상 신인상을 거머쥐었고, 임권택 감독의 '길소뜸', '자유부인', '아제 아제 바라아제' 등 굵직한 작품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특히 '아제 아제 바라아제'에서는 대종상 남우조연상까지 받으며 연기 인생의 정점을 찍었다.

배우로서 성공을 넘어 그는 사업가로도 승승장구했다.
한씨네타운을 세우고 ‘젖소부인 바람났네’ 시리즈를 포함해 약 300편의 영화를 제작하며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한때 100억 원대 자산가로 불리며 호텔, 빌딩, 영화사까지 손에 넣었다.

하지만 순조로웠던 행보는 1997년 외환위기로 급격히 무너졌다.
과도한 부동산 투자와 융자, 그리고 경기 침체가 한꺼번에 덮쳐왔다. 영화사는 아내 명의로 넘겼지만 결국 사업이 붕괴됐고, 아내와도 이혼하게 됐다.

모든 것을 잃고 파산을 맞이한 한지일은 미국으로 떠났다. 손에 쥔 돈은 1000달러도 채 되지 않았다.
미국 전역을 떠돌며 접시 닦기, 택시 운전, 주유소 아르바이트, 나무 베기, 마트 직원 등 27가지가 넘는 일을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해보지 않은 일이 없었다”는 과장이 아니다.
미국에서도 병마와 싸워야 했다. 허리 디스크로 시작된 통증은 파킨슨병, 알츠하이머 의심으로 이어졌다.
MRI 촬영을 위해 병원비가 부담스러웠지만 지인의 도움으로 검사를 받을 수 있었고, 다행히 뇌에는 큰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를 계기로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이제 서울의 11평짜리 임대아파트에서 기초생활수급자로 지내고 있다.

과거의 화려한 명성과는 너무도 다른 현실이다. 매일 지하철을 타고 다니지만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고독사라는 단어가 남의 일이 아닌 것 같다”고 할 만큼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한지일은 자신을 위한 삶을 넘어 여전히 누군가를 돕고 있다.
한국영화배우협회 봉사위원장으로 위촉되어 꾸준히 선행을 이어가고 있으며, 자신을 돌아보며 조용히 남은 삶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에는 스스로 영정사진을 준비하며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어릴 적 금수저로 태어나 배우로 사랑받고, 사업으로 성공했다가 바닥까지 떨어진 내 인생.
누구도 쉽게 경험하기 힘든 희로애락을 다 겪었다”는 말처럼 한지일의 삶은 오랜 세월을 지나며 많은 이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기고 있다.
모든 사진 출처: 이미지 내 표기
Copyright © by 뷰티패션따라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컨텐츠 도용 발각시 저작권 즉시 신고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