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식들은 왜 안 오지.." 자식이 자주 찾아오는 옆집을 보고 느낀점 3가지

주말 오후, 아파트 주차장에 낯익은 차가 또 들어온다. 옆집 자식이 이번 달에만 벌써 세 번째 찾아온 것이다. 양손에 장바구니를 든 채 웃으며 현관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이 보인다. 내 휴대폰은 아침부터 한 번도 울리지 않았다. 괜히 화면을 몇 번이나 켜봤다가 다시 내려놓는다. 우리 자식들도 명절이면 꼬박꼬박 오지만 한두 시간 앉아 있다 보면 시계부터 본다. 남편은 다들 바쁘니까 그렇다며 텔레비전 소리만 키운다.

처음에는 그 집 자식들이 유난히 효자라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오가는 모습을 지켜보니 자식보다 부모 쪽에 다른 점이 있었다. 반찬을 더 많이 해두는 것도, 용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 집 부모는 자식에게 해주는 게 별로 없어 보였다. 자식이 저절로 발길을 돌리는 집에는 무엇이 있는 걸까?

1. 자식이 오면 캐묻지 않고 쉬게 둔다

자식이 현관에 들어서면 궁금한 것부터 쏟아지기 쉽다. 얼굴이 왜 이렇게 상했는지, 회사는 괜찮은지, 손주 학원은 어디로 정했는지 묻게 된다. 걱정돼서 하는 질문이지만 자식은 대답할수록 어깨가 굳는다. 쉬러 왔다가 숙제 검사를 받는 기분이 든다. 그러다 보면 다음 방문이 점점 미뤄진다. 힘든 일이 있어도 부모에게는 말하지 않는 게 편하다고 여기게 된다.

옆집은 자식이 오면 일단 소파에 눕게 둔다. 밥은 먹었느냐는 말 한마디가 전부다. 이불을 꺼내주고 텔레비전 소리를 줄여준다. 자식은 한숨 자고 일어나서야 스스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낸다. 묻지 않아도 회사 이야기, 손주 이야기가 술술 나온다. 답을 내려주는 집보다 짐을 잠시 내려놓게 해주는 집에 자식은 더 자주 온다.

2. 언제 오라고 날을 정하지 않는다

매주 일요일은 가족 식사하는 날이라고 못 박아두는 집이 있다. 한 번 빠지면 서운한 소리가 나오고, 다음 주에는 꼭 오라는 다짐을 받는다. 전화를 끊을 때마다 언제 올 거냐는 말이 빠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자식도 꼬박꼬박 맞추려 애쓴다. 하지만 오는 일이 의무가 되는 순간 발걸음은 무거워진다. 손주 학원이나 처가 일정과 겹치는 날이면 눈치를 보며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옆집은 오라는 날을 정해두지 않는다. 편할 때 오라고, 언제 와도 밥은 있다고만 말한다. 자식이 바빠서 못 온다고 해도 그래, 바쁜 게 좋은 거다 하고 넘긴다. 스스로 고른 날에 오니 자식도 부담이 없다. 요즘은 이번 주에 가도 되느냐고 자식이 먼저 연락해온다. 억지로 붙잡지 않는 집에 오히려 더 자주 발길이 닿는다.

3. 문 앞 첫마디가 반갑다는 말이다

몇 주 만에 찾아온 자식에게 첫마디로 왜 이제야 왔느냐고 묻는 부모가 많다. 반가운 마음이 서운함의 옷을 입고 튀어나온 말이다. 하지만 자식 귀에는 꾸중으로 들린다. 올 때마다 그런 말을 들으면 오는 길 자체가 벌처럼 느껴진다. 현관문을 열기 전부터 무슨 말로 둘러대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전화벨만 울려도 또 무슨 소리를 들을까 싶어 마음이 무거워진다.

옆집 현관에서는 늘 같은 말이 들린다. 왔구나, 얼굴 보니 좋다. 그 한마디에 자식의 표정이 금세 풀린다. 몇 주 만에 왔든 몇 달 만에 왔든 첫마디는 똑같다. 떠날 때도 다음엔 언제 오느냐 대신 와줘서 고맙다고 배웅한다. 차가 떠날 때까지 손을 흔들고 들어간다. 문 앞에서 반갑게 맞아주는 집이 자식에게는 가장 편한 집이다.

자식이 자주 오는 집은 크고 화려한 집이 아니라 마음이 편한 집이다. 붙잡을수록 멀어지고 놓아줄수록 가까워지는 게 다 큰 자식과의 관계다. 오늘 저녁 전화 한 통의 마지막 말을 목소리 들으니 좋다로 바꿔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