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번 정을 준 곳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습니다. 잠시 머물렀던 마을, 짧게 가르쳤던 아이들, 함께 웃었던 교실은 세월이 흘러도 쉽게 잊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향해 보낸 작은 마음이 생각지도 못한 모습으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부산 해운대에 사는 정옥희 씨는 올해 일흔넷입니다. 30년 넘게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다 정년퇴직했습니다. 남편은 몇 해 전 세상을 떠났고, 지금은 아들 내외가 사는 아파트 근처에서 혼자 지내고 있습니다.
옥희 씨가 마흔넷이던 해, 경남 산청의 산골 분교로 발령이 났습니다. 전교생이 열두 명뿐인 작은 학교였습니다. 버스가 하루에 세 번밖에 다니지 않는 마을이라, 옥희 씨는 2년 동안 학교 관사에서 지내며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분교에는 도서실이 따로 없었습니다. 교무실 한쪽 낡은 책장에 오래된 전집 몇 권이 꽂혀 있는 게 전부였습니다. 아이들은 그 책을 몇 번이고 다시 읽어 표지가 너덜너덜해져 있었습니다. 옥희 씨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옥희 씨는 주말마다 진주 시내 서점에 나가 자기 월급으로 책을 사 왔습니다. 동화책과 위인전, 과학책을 한 아름씩 들고 버스에서 내리면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 나와 책 보따리를 받아 들었습니다. 아이들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습니다.
2년이 지나 부산으로 전근을 가던 날, 아이들은 버스 정류장까지 따라 나와 울었습니다. 한 아이가 옥희 씨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말했습니다. "선생님 가시면 이제 새 책은 누가 사 줘요?" 옥희 씨는 그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약속했습니다. "선생님이 부산에서 꼭 보내 줄게."

옥희 씨는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해마다 봄이 되면 50만 원어치 책을 골라 분교로 부쳤습니다. 교사 월급이 넉넉하지 않던 시절에도, 아이들 학비로 빠듯하던 해에도 거르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그 학교는 당신 첫사랑인가 보오" 하며 웃었습니다.

옥희 씨는 책을 고를 때도 정성을 다했습니다. 서점에서 한나절을 보내며 아이들 나이에 맞는 책을 골랐고, 집에 가져와 한 권씩 먼저 읽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책마다 첫 장에 짧은 글을 적어 넣었습니다. [이 책을 읽는 친구에게. 너의 꿈을 응원한다. 부산에서 정옥희 선생님이.]
그렇게 보낸 세월이 30년이었습니다. 책값으로만 1,500만 원이 넘었습니다. 해마다 분교에서는 아이들이 삐뚤빼뚤한 글씨로 쓴 감사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옥희 씨는 그 편지들을 상자에 차곡차곡 모아 두었습니다.
그중 한 통의 편지는 옥희 씨가 특히 아끼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 저는 책에서 처음으로 바다를 봤어요. 커서 꼭 바다가 있는 도시에 가 보고 싶어요.] 옥희 씨는 그 편지를 읽고 해운대 바다 사진을 몇 장 넣어 답장을 보냈습니다.
퇴직한 뒤에도 옥희 씨는 연금에서 책값을 떼어 보냈습니다. 무릎이 나빠져 산청까지 직접 가 보지는 못했지만, 책 상자를 부치는 날이면 마음만은 그 산골 교실에 가 있었습니다. 우체국 직원은 "할머니, 올해도 그 학교 가는 책이에요?" 하며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남편이 살아 있을 때는 해마다 책 상자를 함께 꾸렸습니다. 남편은 상자 모서리마다 테이프를 몇 겹씩 감으며 말했습니다. "산길에 흔들려서 터지면 안 되지." 남편이 떠난 뒤에는 아들이 그 일을 대신 맡았습니다.

그런데 올여름, 분교에서 편지가 한 통 왔습니다. 학생 수가 세 명으로 줄어 올가을에 문을 닫게 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편지 끝에는 폐교식에 꼭 와 달라는 부탁이 적혀 있었습니다.
옥희 씨는 한참 동안 편지를 손에서 놓지 못했습니다. 30년 동안 책을 보내며 언젠가 꼭 한번 가 보리라 마음먹었던 학교였습니다. 그 학교가 사라진다는 소식에 가슴 한구석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날 밤 옥희 씨는 장롱 위에서 오래된 상자를 내렸습니다. 30년 동안 모은 아이들의 감사 편지가 빼곡히 들어 있었습니다. 편지를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산골 교실의 나무 냄새와 아이들 웃음소리가 되살아나는 것 같았습니다.
"엄마, 제가 모시고 갈게요." 아들이 휴가를 내고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부산에서 세 시간을 달려 도착한 산골 마을은 30년 전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낡은 운동장 한쪽에 은행나무 한 그루가 노랗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작은 운동장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습니다. 마지막 학생 세 명과 마을 어르신들, 그리고 곳곳에서 찾아온 졸업생들이었습니다. 옥희 씨가 운동장에 들어서자 누군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책 선생님 오셨다!"
폐교식이 끝나 갈 무렵, 사회를 보던 졸업생 대표가 옥희 씨를 단상으로 모셨습니다. 마흔 안팎의 남자였습니다. "선생님, 저 기억하세요? 버스 정류장에서 새 책은 누가 사 주냐고 울던 아이요. 저 지금 진주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가 커다란 상자 하나를 옥희 씨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상자 안에는 30년 동안 이 학교를 거쳐 간 아이들이 쓴 독후감과 편지가 수백 장 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옥희 씨가 보낸 책마다 꽂혀 있던 낡은 대출 카드가 한 묶음 놓여 있었습니다.
그때 운동장 여기저기서 졸업생들이 하나둘 손을 들었습니다. "저는 창원에서 간호사로 일해요." "저는 동화 작가가 됐어요, 선생님." "저는 바다 보고 싶다던 그 아이예요. 지금 부산에서 배를 탑니다." 옥희 씨는 그 얼굴들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손수건으로 입을 막았습니다.

대출 카드마다 아이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한 권의 책에 스무 명이 넘는 이름이 적힌 카드도 있었습니다. 졸업생 대표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선생님, 이 책들 덕분에 이 산골에서 교사도 나오고, 간호사도 나오고, 작가도 나왔습니다. 저희는 다 선생님이 보내 주신 책을 읽고 자랐습니다."
옥희 씨는 대출 카드 묶음을 가슴에 안고 그 자리에 서서 울었습니다. 30년 동안 그저 책 상자를 부치기만 했을 뿐, 그 책을 누가 읽었는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책 한 권 한 권이 아이들의 손을 거쳐 수백 개의 꿈이 되어 있었습니다.
마을 이장님이 마지막으로 한 가지 소식을 전했습니다. 학교에 남은 책 3,000여 권은 마을회관에 옮겨 작은 도서관을 만들기로 했고, 도서관 이름은 '옥희 문고'로 정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운동장에 모인 사람들이 한꺼번에 박수를 쳤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아들이 어머니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습니다. "엄마, 해마다 우체국 가실 때 그냥 책 부치는 줄만 알았어요. 엄마가 이렇게 큰일을 하고 계셨네요." 옥희 씨는 대답 대신 아들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폐교식이 끝난 뒤, 졸업생들은 옥희 씨와 아들을 읍내의 오래된 어탕국수집으로 모셨습니다. 민물고기를 곱게 갈아 시래기와 함께 끓인 국물에 국수를 말아 낸 소박한 한 그릇이었습니다. 졸업생 대표가 말했습니다. "선생님이 계실 때 소풍 가서 먹던 그 국수예요." 옥희 씨는 웃으며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었습니다.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에서 아멜 선생님은 학교에서의 마지막 날, 아이들에게 우리말과 글을 잊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교실은 사라져도, 그곳에서 배운 것과 받은 마음은 아이들 가슴속에 평생 남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꾸준히 이어 온 작은 정성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어딘가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당장 결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멈추지 마세요. 오늘 건넨 책 한 권, 따뜻한 말 한마디가 먼 훗날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는 씨앗이 됩니다.
올가을 옥희 씨는 아들과 함께 산청 경호강 강변길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지리산 자락을 따라 붉은 단풍이 번졌고, 맑은 강물 위로 저녁 햇살이 금빛으로 반짝였습니다. 옥희 씨는 아들의 팔짱을 끼고 해가 질 때까지 강변을 걸었습니다.
출처 : '마지막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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