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이런 판정이?" 번복에 또 번복…두 번 바뀐 메달리스트 [스프]

권종오 기자 2024. 10. 12.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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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스포츠+] 올림픽 사상 전대미문의 사건…논란은 현재 진행형
 

세계 스포츠사를 수놓았던 명승부와 사건, 인물, 교훈까지 별의별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별별스포츠+', 역사와 정치마저 아우르는 맥락 있는 스포츠 이야기까지 보실 수 있습니다.
 

스포츠 대회에서 한 번 내려진 판정이 번복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최고의 무대 올림픽은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 2024 파리 하계올림픽 기계체조에서는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판정이 뒤집혀지는 아주 보기 드문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때문에 동메달의 주인공이 두 번이나 바뀌며 희비가 크게 엇갈렸습니다. 올림픽 사상 전대미문의 사건이라 할 만한 판정 번복의 여진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논란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입니다.
 

먼저 웃은 루마니아 바르보수

파리 올림픽 기계체조 여자 마루운동의 강력한 우승 후보는 미국의 체조 여왕 시몬 바일스. 여자 체조의 꽃으로 불리는 마루운동은 그의 주 종목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예선 1위로 결선에 진출한 바일스는 결선에서 실수를 범하며 은메달에 머물렀습니다. 금메달은 예선을 2위로 통과한 브라질의 레베카 안드라드에게 돌아갔습니다.

이런 가운데 루마니아의 안나 바르보수와 미국의 조던 차일스 선수가 동메달을 놓고 경쟁하게 됐습니다. 바르보수가 먼저 경기를 했는데 13.700점을 얻으며 안드라드, 바일스에 이어 3위에 자리했습니다. 마지막 9번째 순서로 나선 차일스가 연기를 마치자 다들 초조하게 점수 발표를 기다렸습니다. 차일스의 점수에 따라 최종 순위가 결정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침내 차일스의 점수가 발표됐는데 13.666점으로 5위였습니다. 동메달이 확정된 바르보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환호하고 기뻐했습니다.

 

차일스가 동메달리스트, 바르보수는 4위로 변경

바르보수가 루마니아 국기를 들고 세리머니를 하려던 순간 정말 예상치 못한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장내가 술렁이면서 전광판의 순위가 뒤바뀌었습니다. 세리머니를 하던 바르보수는 돌아서서 전광판을 확인하고 또다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5위였던 차일스가 3위로 올라섰고, 자신은 4위로 내려앉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큰 충격을 받은 바르보수는 루마니아 국기를 손에서 떨어뜨린 뒤 아쉬움의 눈물을 펑펑 흘렸습니다. 이와 반대로 1분 만에 5위에서 갑자기 동메달의 주인공이 된 차일스는 팀 동료 바일스와 얼싸안으며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차일스가 동메달을 차지했던 이유는 차일스 점수 발표 직후 미국 코치진이 판정에 이의를 제기해 받아들여졌기 때문입니다. 심판들이 차일스의 난도 점수를 낮게 잘못 채점했다는 것을 파악한 뒤 바로 항의하자 심판진도 이를 받아들여 차일스의 난도 점수를 0.1점 올렸습니다. 그 결과 차일스의 점수가 13.666점에서 13.766점으로 오르면서 바르보수를 0.066점 차로 제치고 동메달을 획득한 것입니다.


그리고 시상식까지 치렀는데 여기서 명장면이 나왔습니다. 시상대에 오른 2위 바일스, 3위 차일스 두 명의 미국 선수들이 금메달을 차지한 안드라드에게 무릎을 굽히고 존경을 표하는 축하 세리머니를 펼친 것입니다. 역대 올림픽 체조 종목에서 남녀 선수를 통틀어 흑인 선수 3명이 1, 2, 3위를 차지한 건 처음이어서 더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루마니아의 반격, CAS에 제소

판정 번복으로 3위에서 4위로 내려앉은 바르보수의 조국 루마니아는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마르첼 치올라쿠 루마니아 총리는 SNS를 통해 국제체조연맹(FIG)의 순위 변경을 공개 비판하며 거세게 반발했습니다. 그는 루마니아 선수단이 파리 올림픽 폐회식에 불참할 것이라고 밝히며 분노를 드러냈고 루마니아 체조협회는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했습니다.

하지만 전망은 그리 밝지 않았습니다. CAS에 제소해도 판정이 번복된 사례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남자 기계체조 개인종합 양태영. 당시 심판들이 난도 점수를 0.1점 낮게 잘못 채점하는 바람에 원래는 금메달이었는데 3위로 내려앉았습니다. 당시 국제체조연맹도 오심을 인정하고 해당 심판에게 징계까지 내렸지만 판정 번복은 절대 안 된다고 버텼습니다.

정말 억울하고 황당한 경우를 당한 대한체육회는 CAS에 제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기각 이유는 이랬습니다. "경기 종료 전에 이의 제기를 했어야 했는데 경기 종료 후에 늦게 제기했다. 경기가 끝나고 나중에 밝혀진 심판 실수는 경기 결과를 뒤집을 근거가 될 수 없다." 한마디로 이의 제기를 늦게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단 4초 차이로 갈린 동메달의 주인공

루마니아는 20년 전 양태영 사건을 떠올렸습니다. 양태영이 억울했어도 이의 제기를 늦게 하는 바람에 판정 번복이 안 됐다는 점을 활용한 것입니다. 루마니아는 미국의 이의 제기가 규정보다 늦게 이뤄졌다는 점을 들고나왔습니다.

국제체조연맹(FIG) 규정(8.5조)을 보면 차일스처럼 마지막 순서로 나선 선수의 경우 이의 제기는 전광판에 점수가 발표된 후 1분 안에 이뤄져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루마니아는 미국 측이 정확히 1분 4초가 지나서 이의 제기를 했다고 주장했는데 결국 CAS는 루마니아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CAS는 판결문에서 "국제체조연맹 규정에 따르면 심판 판정에 따른 이의 제기는 판정 이후 1분 안에 이뤄져야 한다. 미국은 1분의 시간이 지난 뒤 이의를 제기했기에 무효"라고 밝혔습니다.

그러자 미국 체조협회에서는 47초 만에 이의를 제기했다고 주장하며 동영상 자료까지 제출하면서 항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CAS는 올림픽 공식 타임키퍼인 오메가의 협조로 미국 측이 1분에서 4초 지난 시점에 이의를 제기했다는 '명백한 증거'를 들어 미국 측의 항소를 기각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권종오 기자 kjo@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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