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 커플은 건강하지 않은 가족인가요?"..여가부 '말 바꾸기'에 반발 지속

김수연 2022. 10. 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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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부, '가족 개념 확대' 기존 입장서 선회
'남남' 가족 100만인데..여성단체 등 반발
"동거 연인, 응급 상황 때 보호자 될 수 없어"
"차별과 배제 조장. 누구도 소외되지 않아야"
용혜인 의원 "尹정부, 성평등 이슈에서 퇴행적"
게티이미지뱅크
 
“친구랑 같이 산 지 4년 좀 넘었어요. 취업 준비 당시 수입이 마땅치 않으니 월세를 혼자 부담하기 어려워 마음 맞고 상황 맞는 동성 친구와 투룸을 구해 생활했어요. 취직 후에도 계속 살고 있는데 외롭지 않고 재밌어요. 친구와 저 모두 비혼주의예요. 단정할 순 없지만 상황이 맞는다면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자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서울 동대문구에 거주하는 권지연(29)씨는 “회사 비상연락망에도 함께 사는 친구의 연락처를 1순위로 적어두었다”며 “멀리 지방에 계시는 부모님보다 지금 현재 가장 가깝게 지내며 위험할 때 당장 달려와줄 수 있는 이 친구가 제게는 정서적으로 더 가족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어 “제 주위에도 혼인 신고는 하지 않고 동거하는 커플이나 저희처럼 친구끼리 사는 이들이 꽤 있다”며 “이제는 가족이 혈연이 아니라 ‘관계’로 정의돼야 하는 시대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여성가족부가 사실동거 가구를 법적 가족으로 인정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번복하고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뤄진 단위’라는 건강가족기본법상 가족 정의를 유지한다고 밝히자 다양해진 가족 형태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 피가 섞이지 않은 ‘가족’과 사는 이들은 비단 권씨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통계청 인구총조사에선 결혼을 하지 않은 연인이나 친구끼리 거주하는 비친족 가구는 1년 전보다 11.6% 증가한 47만여 가구에 달했다. 비친족 가족원은 101만5100명으로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많았다. 위탁 가족과 동성 부부도 증가 추세다. 2020년 여가부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0%는 ‘혼인·혈연 관계가 아니어도 생계와 주거를 공유하면 가족’이라고 응답했다.

이들을 중심으로 가족의 개념이 협소해 경제적·사회적 차별을 받고 있다고 지적이 터져나온다. 소득세 인적공제는 물론 건강보험, 가족수당 등 각종 보호·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주장이다. 동거를 하며 사실혼을 한 연인이지만 주택청약 특별공급이나 신혼부부 주택담보대출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점도 꼽힌다. 남자친구와 2년째 동거 중인 이모(30)씨는 “취업 준비 당시 경제적인 이유로 합친 이후 쭉 함께 살고 있는데, 당장 급한 수술을 하더라도 서로의 보호자가 될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며 “지금 당장 결혼 계획이 있는 건 아닌데 혜택 등을 이유로 혼인 신고부터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남자친구와 동거한다고 하면 여전히 안 좋은 시선이 많은데, 여가부가 이런 시선에 부채질을 하는 것 같다”며 “혼인 관계만 건강가정이라는 법은 시대착오적인 것 같다”고 비판했다.

논란이 일자 여가부는 “사실혼·동거가족을 정책적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라며 “법적 가족 개념 정의에 대한 소모적 논쟁이 아니라 실질적 지원에 방점을 두겠다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윤석열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7월2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다만 이 같은 해명에도 법과 제도 없이 실질적인 지원은 ‘어불성설’이라는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36개 여성단체들은 지난달 성명을 통해 “차별과 배제를 조장하는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이 여가부의 책무”라며 “여가부는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가족을 위한 법 개정에 앞장서라”고 주장했다. 김현수 한국여성단체연합 정책국장은 “부처 본연의 책무가 무엇인지 제대로 인지조차 못 하고 있는 여가부 입장에 분노한다”며 “협소하게 규정된 법적 가족 개념으로 인해 법 테두리에서 배제된 채 시민권을 박탈당하고 있는 수많은 국민들이 존재함에도 어떻게 ‘실질적으로 지원하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법으로 정해진 가족 규정이 가족의 정의를 축소해 저출산을 조장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지난달 28일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을 위한 국회토론회에서 장희정 사단법인 한부모가족회 한가지 공동대표는 “(현재 제도로는) 미혼, 이혼, 사별한 사람들이 사회에서 느끼는 편견이 어마어마해서 이들은 ‘보통 사람들’처럼 살아갈 수 없다”며 “미혼이나 이혼한 상태로 아이를 낳는 것은 (배우자와 관계를 유지하는 것보다) 더 안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하지만 늘 그 선택(미혼·이혼)은 비난 받고 마는데 한부모 가정의 자녀들은 이런 편견으로 힘들어서 ‘결혼하지 않겠다’고 한다”며 “저출산을 조장하는 것은 (‘정상가족’ 개념을 유지하는) 정부”라고 꼬집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지난달 29일 MBC라디오 인터뷰에서 “많은 분들이 예상하듯 여가부가 동성애 커플을 가족으로 인정하는 부분에 대한 논란을 피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며 “윤석열 정부 들어서 젠더나 성평등 이슈에서 퇴행적 행보들을 보이고 있는데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4월 여가부는 비혼 동거 커플, 아동학대 등으로 인한 위탁가족도 법률상 ‘가족’으로 인정하는 내용의 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을 발표하며 변화의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법 이름도 가치중립적인 용어인 ‘가족정책기본법’으로 바꾸겠다는 데 찬성했었으나 새 정부가 들어선 뒤 불과 1년도 안 돼 입장을 번복했다.

김수연 기자 sooy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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