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째 수그러들지 않는 여론의 분노
벌써 열흘째다. 야구판이 발칵 뒤집혔다. 온통 수군거림이다. 분노와 질타가 넘친다.
발신지는 지구 반대편이다. 텍사스의 한 라디오 방송이었다. 전직 메이저리거의 얘기다. 현재는 KBO에서 활동 중이다. 여러 차례 소신 발언을 한 주인공이다. 이번에도 수위가 상당했다. 작심 비판이라는 수식이 붙었다.
몇 개 매체가 초기 보도에 동참했다. 처음에는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이 중 한 곳의 톤이 강렬했다. ‘스포티비뉴스’가 세간의 눈길을 끌었다. 이런 제목이었다. ‘일찍 태어났다고 선배인가…추신수, 안우진 탈락에 작심 발언.’
이 기사는 주요 포털 사이트의 메인 화면에 걸렸다. 트래픽이 몰리기 시작한다. 뜨거운 반응이다. 곧이어 다른 매체들도 보도를 쏟아낸다. 하루 이틀이 지나도 식지 않는다. 열흘이 지나도 여진은 계속된다. 포털에 노출된 관련 기사만 400건이 넘는다.
대부분 비판적 논조다. ‘주장은 이해하지만 경솔하다’ ‘잘못된 선민의식’ ‘헛스윙 된 소신 발언’ ‘국민 정서 무시해 여론의 역풍’ ‘뭇매 맞는 작심 발언’ ‘하필 이 시점에 왜 대표팀 저격’ ‘어설픈 선배 노릇’ ‘간 큰 선무당’…. 일부에서는 망언이라는 표현도 등장했다.
스피커에 대한 비난도 봇물을 이룬다. 과거 이력이 줄줄이 소환된다. ▶병역특례 이후 대표팀 차출에 대한 먹튀 논란 ▶세대교체 운운하며 정작 자신은 현역을 고집하는 문제 ▶심지어 10년도 넘은 음주운전 적발 동영상까지 회자됐다.

대표팀은 선택하는 자리가 아니다
논란의 핵심은 두 가지다. 우선은 학폭 이력의 안우진을 제외한 것이다. “분명히 잘못된 행동을 했다. 어릴 때 일이지만 지금은 뉘우치고, 징계도 받았다. 그런데도 국가대표로 나갈 수 없다.” 그런 주장이다.
그리고 세대교체도 거론했다. “언제까지 김광현, 양현종인가. 일본은 새로운 얼굴이 많다. 김현수가 정말 좋은 선수이긴 하지만 나라면 미래를 봤을 것이다. 당장 성적보다 앞을 봐야 한다. 어린 선수 중에 재능 있는 선수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그러면서 “(나이 많은 선수들이) 사실 안 가는 게 맞다”는 논리를 폈다.
당사자들도 곤혹스럽다. 하필이면 전지훈련 시즌이다. 인천공항을 피하기 어렵다. 취재진의 질문이 몰려든다. 누구는 답을 피한다. 또 누구는 뼈 있는 말을 남겼다.
“나로 인해 불편한 상황이 된 것 같다. 죄송하게 생각한다.” (안우진)
“대표팀에 대한 생각은 내가 말씀드릴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어차피 작년에 보여드린 게 별로 없다. 뽑힐 것이라고 기대하지도 못했다.” (문동주)
“선수단 구성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씀드릴 건 없다. 일단 뽑아주신 것에 대해서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 (추신수 발언과 관련) 따로 언급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다. 그 정도의 높은 위치가 아니다.” (김광현)
“국가대표에 선발될 때마다 설레기도 하고 책임감도 느껴진다. 어렸을 때는 몰랐는데 조금씩 연차가 들어갈수록 대표팀에 뽑혔다는 부담감도 없다면 거짓말이다. 부담감이 있지만 그래도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다. 영광스러운 자리지만 요즘에는 부담감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래도 이겨내고 그라운드에서 결과로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숙제다.” (양현종)
“국가대표는 선수들이 선택하는 곳이 아니다. ‘내가 나갈게요. 나는 빠질게요’라고 하는 자리가 아니다. 세대교체를 위해 인위적으로 어린 선수들을 내보내기보다 지금 가장 잘하는 선수가 뽑히고 나가서 대표팀을 위해 활약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이와 상관없이 실력이 있는 선수가 뛸 수 있어야 하고 실력이 없는 선수는 당연히 대표팀이 돼서는 안된다.” (김현수)

소모적인 논쟁이 돼서는 안된다
의외였다. 불과 몇 주 전과 180도 다르다. 칭송이 자자하던 그였다. 주변을 살뜰히 챙긴 미담 덕이다. 궂은 일을 돕는 직원들에게 큰 정성을 선물했다. 우승을 함께 일궜다는 마음의 표시였다. ‘역시’라는 엄지척을 받을 만했다.
그러던 게 하루 아침에 비난으로 돌변했다. 그것도 잠시가 아니다. 일주일이 넘도록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는다. 유례를 찾기 어렵다. 그만큼 민감하고, 강력한 이슈였다. 무수한 비판과 지적, 해명 요구가 빗발쳤다. 자칫 피로감이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소모적인 논쟁이 돼서는 안된다. 지겨워져서도 곤란하다. 칼날 위에서도 정면을 바라봐야 한다. 거칠고, 어지러운 이슈에서도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그 무엇을 가려내야 한다.
그런 관점이다. <…구라다>는 굳이 비판이나 지적을 하나 더 얹고 싶지 않다. 이미 많은 매체가 수고하고 있다. 대신 이 과정에서도 얻어야 할 것,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을 찾고자 한다.
사실 추신수의 지적은 민감한 부분이다. 대표팀 선발 과정에서 끌까지 고민했던 지점이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소수 의견이었다.
시계를 조금 되돌려보자. 지난 달 4일 도곡동이다. KBO회관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대표팀 30명을 확정, 발표한 자리였다. 가장 큰 관심은 안우진이었다. 이강철 감독은 곤란한듯 마이크를 넘겼다. 조범현 기술위원장의 말이다. “선발 기준은 기량과 함께 나라를 대표하는 국가대표의 상징적 의미, 책임감, 자긍심 등 여러 가지를 고려했다.”
세대교체 문제도 거론됐다. “기본적으로 대한민국 야구의 미래를 고려했다. 처음에는 진짜 젊은이들만으로 갈 생각도 했는데, 아시다시피 성적을 무조건 내야되지 않나. 잘하는 베테랑들도 뽑아야했다.” (이강철 감독)

그러니까 안우진과 세대교체는 어려운 이슈였다. 적어도 대표팀 수뇌부는 그렇게 여기고 있었다. 이를테면 이강철호의 딜레마였던 셈이다. 어쩌면 WBC 직전까지, 또는 대회 중에도, 심지어 끝난 다음에도 계속 화두로 남았을 것이다. 뭔가 아쉬울 때마다 잡음이 나올 법했다. ‘그러게 왜 안 뽑았냐’ ‘싱싱한 선수들로 갔어야 했다’ 같은 푸념들 말이다.
조짐이 있었다. 도곡동 기자회견 때였다. 안우진의 추가 발탁 가능성에 대해 질문이 있었다. 조 위원장의 답변이다. “부상 선수 여부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있을 지 모른다.” 만에 하나 변수를 남겨둔 셈이다.
이런 께름칙함은 곤란하다. 눈치 보게 만들고, 전열이 분산된다. 팀이 흩어지고, 집중력을 방해한다. 소수 정예의 스파르타의 정신이 아니다. 때문에 이번 파문은 일종의 백신이다. 당장은 따끔하지만 면역력을 얻게 될 것이다.
적어도 고민 하나는 해결됐다. 여론을 살피는 일 따위는 없다. 또 광현종이냐, 또 김현수냐, 그런 핀잔은 사라졌다. 선발된 멤버들이 정면돌파해야 한다.
이제 팬들의 바람은 선명하다. 그리고 엄정하다. 그들은 개운치 않은 과정을 거부한다. 당당한 결과를 요구한다. 태극 마크 위에 내려진 준엄한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