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체 개발 자부했지만"...바닷속에서 멈춰버린 대만 잠수함

2023년 9월 대만 가오슝에서 열린 하이쿤 잠수함 진수식

2023년 9월, 대만 가오슝에서 열린 하이쿤 잠수함 진수식은 대만의 국가적 경사였습니다.

차이잉원 총통이 직접 참석한 이 행사에서 대만은 "이제 우리도 잠수함 제작 국가"라는 자부심을 과시했습니다.

그러나 1년 4개월이 지난 지금, 하이쿤은 움직이지도 못하는 '쇳덩어리'가 되어버렸습니다.

연합보 등 대만언론은 소식통을 인용해 궈시 전 대만 해군 고문이 최근 유튜브 프로그램에서 2023년 진수한 첫 대만산 방어형 잠수함(IDS) 하이쿤의 해군 인도가 늦어질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이같이 밝혔습니다.

궈 전 고문은 최근 정박지수락시험(Harbor Acceptance Testing) 도중 하이쿤 선내 배관 계통이 여러 차례 파열돼 물이 들어오면서 주 엔진이 고장 나 잠수함이 아예 움직일 수 없는 상태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외부에서 공급한 전력의 불안정으로 인해 잠수함 내부 부품이 다수 파손돼 예비 부품이 부족한 상태라고 전했습니다.

게다가 하이쿤 통합플랫폼관리시스템(IPMS)의 4000여개 검사 항목 가운데 10%인 400개 항목만 완료된 상태라고 지적했습니다.

대만은 왜 첨단 잠수함이 필요했나?


대만이 잠수함 자체 개발이라는 무모해 보이는 도전에 나선 이유는 명확합니다.

2023년 9월 대만 가오슝에서 열린 하이쿤 잠수함 진수식

중국의 '제1도련선' 전략이 대만의 숨통을 조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가상의 선은 일본에서 시작해 대만, 필리핀을 거쳐 믈라카 해협까지 이어지는 중국의 해상 방어선입니다.

"잠수함 없이는 중국의 해상 봉쇄를 뚫을 수 없다"는 것이 대만 군사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입니다.

실제로 1996년 대만해협 위기 당시, 미국이 항공모함 전단을 파견했지만 중국 잠수함의 위협 때문에 해협 진입을 주저했던 사례가 있습니다.

이 사건은 대만에게 잠수함의 전략적 가치를 깨닫게 했습니다.

대만은 총 10척의 잠수함 함대 구축이라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들이 목표로 삼은 것은 '비대칭 전력'이었습니다.

중국 해군과 정면 대결은 불가능하지만, 잠수함이라는 '보이지 않는 위협'으로 중국의 공격 의지를 꺾겠다는 전략이었습니다.

대만이 잠수함을 자체 개발한 이유는?


대만이 잠수함을 직접 만들기로 결정한 데에는 국제 정치의 냉혹한 현실이 있었습니다.

중국의 외교적 압박으로 대부분의 국가들이 대만에 잠수함 판매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대만 해군이 운용중인 세계에서 가장 오랜된 하이시 잠수함. 대만 해군은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4년 11월 취역한 배수량 1천570t의 디젤 잠수함을 1974년 미국에서 인수했다.

미국조차도 잠수함 직접 판매는 피하면서 설계 지원 정도에 그쳤습니다.

유럽 국가들도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를 우려해 대만의 잠수함 구매 요청을 외면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만은 "스스로 만들지 않으면 영원히 갖지 못한다"는 절박함으로 자체 개발을 결정했습니다.

하이쿤 프로젝트에는 공식적으로는 대만 기업들만 참여했지만, 실제로는 여러 국가의 기술이 비공식적으로 투입됐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미국은 잠수함 설계와 전투체계 개발을 지원했고, 일본의 퇴역 잠수함 기술자들이 컨설턴트로 참여했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건조중인 하이쿤 잠수함

특히 주목할 점은 한국 기업들의 역할입니다.

공식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일부 한국 방산업체들이 잠수함 부품과 장비를 공급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은 장보고급 잠수함을 통해 축적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대만 프로젝트에 조용히 참여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만 잠수함의 기술적 난항


하이쿤의 엔진 고장 사태는 잠수함 제작의 기술적 난이도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잠수함은 흔히 '바다의 스텔스기'로 불립니다.

수백 미터 깊이의 수압을 견디면서도 소음을 최소화해야 하고, 동시에 고도의 전자장비를 운용해야 하는 모순적 요구사항을 충족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이쿤이 직면한 문제들을 살펴보면, 배관 시스템의 취약성이 가장 두드러집니다.

잠수함 배관은 일반 선박과 차원이 다릅니다.

잠항과 부상을 반복하면서 발생하는 극심한 압력 변화를 견뎌야 합니다.

건조중인 하이쿤 잠수함

하이쿤의 배관 파열은 이러한 특수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설계의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전력 시스템의 불안정성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외부 전력이 불안정해 내부 부품이 손상됐다는 것은 전력 관리 시스템의 근본적 결함을 시사합니다.

잠수함은 디젤 발전기, 배터리, 외부 전원을 상황에 따라 전환하며 사용하는데, 이 과정에서 전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시스템 통합의 복잡성 또한 큰 장애물입니다.

4,000개 검사 항목 중 10%만 완료됐다는 사실은 시스템 통합의 어려움을 보여줍니다.

현대 잠수함은 수백 개의 서브시스템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떠다니는 컴퓨터'와 같습니다.

이 모든 시스템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뤄야 하는데, 경험 없는 대만에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과제였습니다.

대만의 잠수함 꿈은 계속될까?


대만 해군사령부는 여전히 "9월 말까지 해상수락시험을 완료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는 어려워 보입니다. 주 엔진이 고장 난 상태에서 해상 시험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대만은 잠수함 프로젝트를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건조중인 하이쿤 잠수함

중국의 군사적 위협이 날로 커지는 상황에서 잠수함은 대만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만은 중국의 군사력이 날마다 커지는데도 대만은 핵심 방어 수단인 잠수함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 하이쿤 사태는 ‘값비싼 수업료’라는 미화보다, 결함 투성이 국산화 시도의 참담한 실패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대만 잠수함 프로젝트가 ‘자주 국방’‧‘기술 독립’이라는 거창한 구호를 내세웠지만, 실제로 남은 것은 천문학적 예산 낭비와 기술력 부족만 확인됐다는 냉혹한 현실입니다.

중국의 압박이 거세지는 와중에도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의지는 좋았지만, 실력 없는 무기 개발은 오히려 안보 공백을 키울 뿐입니다.

결국 하이쿤 엔진 고장은 여정의 ‘첫 시련’이 아니라, 대만이 발등에 떨어진 불조차 끄지 못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신호탄에 불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