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인하대 후문가 주차난 해결한 특별한 비결
‘살아 있는 실험실’이라 불리는 리빙랩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연구자가 지역으로 들어가 주민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현장 중심의 연구개발(R&D) 방법인데요. 심각한 주차난으로 고민하던 인천 미추홀구 용현동 인하대 후문 일대 상인들은 ‘리빙랩’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자세한 내용 ‘정책주간지 공감’에서 확인하세요!
‘공유주차’로 주민 공감
지역문제를 풀다
주차난 앓던 인천 인하대 후문가 바꾼 리빙랩
인천 미추홀구 용현동 인하대 후문 일대 상인들의 한결같은 고민은 심각한 주차난입니다. 다세대주택이 대부분인 원도심이라 주차 공간이 절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차량으로 가득 찬 골목을 걷는 학생들은 안전까지 위협받는 상황입니다.
김준석 인하대 후문가 상인회장은 “상인들은 빌라나 오피스텔 주차장에 차를 댔다가 건물주와 언성을 높인 경험이 한 번씩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주민과 함께한 리빙랩서 해결책 나와
새로운 주차장을 만드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원도심에서 유일한 해결책은 기존 주차 공간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행정안전부의 ‘과학·디지털 기술 활용 주민 공감 지역문제 해결사업’에 인하대 후문 일대 ‘주차장 공유시스템 구축 사업’이 선정됐습니다.
공유주차 시스템은 민간업체와 공공부문에서 이미 개발·운영하고 있으나 주차장 관리주체와 공유하는 방식이라 다세대주택처럼 주차면을 관리할 주체가 따로 없는 곳에서는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미추홀구와 인하대는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먼저 리빙랩을 꾸렸습니다. ‘살아 있는 실험실’이라 불리는 리빙랩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연구자가 지역으로 들어가 주민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현장 중심의 연구개발(R&D) 방법입니다.
기존의 연구개발은 연구자, 개발진, 지방자치단체, 주민 역할이 각각 따로 있습니다. 1단계 끝나면 2단계, 2단계 끝나면 3단계로 진행하지 앞 단계로 되돌아가는 경우는 없습니다.
반면 리빙랩은 네 주체가 경계 없이 얽혀 수평적 참여형 연구개발을 진행합니다. 이 사업을 수행한 김정은 인하대 디지털혁신전략센터장은 “리빙랩을 운영하다 1단계를 거쳐 2단계를 끝낸 뒤 다시 2단계로 내려온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우연한 기회에 3단계에 발전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런 나선형 발전 구조가 리빙랩만의 혁신을 끌어낼 수 있는 장점”이라고 말했습니다.
투표·자동정산 기능이 신뢰 형성
리빙랩 공동체 형성을 위한 첫걸음으로 인하대는 참여 주민에게 ‘마을연구원’ 임명장을 수여했습니다. 정보무늬(QR코드)를 넣은 명함도 만들었습니다. 리빙랩에 참여하지 않는 이해관계자도 QR코드로 접속하면 여러 이야기를 자유롭게 쓸 수 있게 했습니다. 이를 통해 열린 리빙랩을 조성하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김정은 센터장은 “다세대주택은 한두 세대가 동의해도 다른 세대의 동의를 받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주차 공간 제공 동의, 운영 방식, 수익 정산 등 다세대주택별 합의를 위한 투표 기능을 ‘미유올’ 애플리케이션(앱)에 도입했습니다.
동의한 뒤에는 공유주차로 발생한 수익금을 누가 관리하느냐가 관건이었습니다. 리빙랩에 참여한 마을연구원들은 “돈 관리는 괜히 오해받기 쉬워 사람들이 꺼린다”고 했습니다. 주민 사이 불화가 생기지 않게끔 수익금을 투명하게 관리하는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김 센터장은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스마트 콘트랙트’(컴퓨터코드에 의해 자동으로 강제 이행되는 약속들)를 활용했습니다. 투표로 합의한 수익 정산 조건을 등록하고 조건이 충족되면 자동으로 이체가 이뤄집니다. 주민들은 자신이 거주하는 다세대주택의 수익과 정산 내역, 남은 잔액까지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주민들이 미유올 앱에서 투표와 자동정산 기능을 가장 좋아하고 수익금은 다세대주택 청소비로 가장 많이 활용한다”고 말했습니다.
“마을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협력이 중요한데 신뢰가 있을 때 협력이 이뤄지고 활동도 지속 가능하게 되거든요. 투표와 자동정산 기능이 공유주차 시스템의 신뢰를 형성하는 기반이 됐어요.”
최신 아닌 ‘최적 기술’ 찾는 R&D
또 하나의 난관은 공유주차 시스템을 구축하는 초기비용이었습니다. 차량번호를 인식하는 고급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카메라는 대당 150만 원이나 해서 30만 원짜리 바닥 센서를 대안으로 고민했지만 사생활 침해 문제를 우려하는 주민들은 자신의 주차장에 아무나 들어와 쓰레기 투척이나 분쟁이 일어날까 봐 불안해했습니다.
마을연구원들과 함께 고민한 끝에 저가 CCTV 카메라에 소프트웨어를 결합하는 방안을 찾았습니다.인공지능(AI) 번호 인식과 카메라 자동조절기능 등으로 주민이 안심하고 공유할 방식을 이끌어냈습니다.
김 센터장은 “주민 공감 사업이 기존 연구개발 사업과 달랐던 건 최신의 기술이 아닌 최적의 기술을 찾아나갔다는 점”이라며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가장 적합한 기술들을 찾아 조합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현장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에 부딪힐 때면 현장을 이해하고 주민과 공감대가 있는 미추홀구 담당 공무원이 적극적으로 해결했습니다. 주민자치위원장, 상인회장 등 모두가 발 벗고 나섰습니다. 김정은 교수는 “문제가 발생하면 ‘이건 누구 일이니 누가 알아서 해야지’ 하는 게 아니라 네 주체가 함께하는 문화가 된 게 정말 좋았고 큰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담당 주무관을 부르는 별명이 있어요. ‘슈퍼 공무원’. 의사소통 체계가 진짜 친구처럼 긴밀했어요. 담당 주무관은 지역에서 공동체 업무를 10년 동안 했는데 그 노하우와 주민 소통 경험이 큰 힘이 됐습니다.”
마을 문제 해결하는 협력 경제 조성
두 차례 현장 평가를 거쳐 2021년 12월 공유주차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운영 첫날 준비한 주차면이 다 매진되고 상인이 ‘주차할 내 자리가 생겨 기쁘다’고 말했을 때 정말 기뻤다”는 김 센터장은 “이런 성과를 가능케 한 기능 모두 주민들과 리빙랩에서 이끌어낸 것들”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얘기한 게 현장에서 해결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주민들은 마을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됐습니다. 용현1·4동 주민자치회 유정학 씨는 “리빙랩이 아주 신선했다”며 “10년 넘게 마을 일을 해왔는데 주민센터나 구청에서 도움받을 수 없나 했지, 마을 문제를 해결할 자원이 마을에 있다는 생각은 못 했던 것 같다”고 했습니다.
공유주차 시스템으로 주민이 한 달에 받는 수익은 매우 적지만 함께 모으면 청소비를 지급하거나 옥상 방수를 할 수 있고 마을 문제를 해결할 자금이 됩니다.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협력 경제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유정학 씨는 “주민들끼리 모여 해결 방법을 논의할 때는 한계가 있었는데 이번에 전문가들이 2년 가까이 지속 가능한 모델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걸 보니 ‘앞으로는 이렇게 진행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 사업 이후에 마을 활동에 대한 방향이 잡힌 것 같아 더 반갑다”고 했습니다.
인하대 후문에서 시작한 공유주차 시스템은 현재 미추홀구청 주변으로 확대해 운영 중입니다. 2021년 6월에는 인천시의 공유주차 모델로 선정돼 인천시 전역으로 확산하기 위한 시범사업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주민 공감 사업을 계기로 마을을 더 잘 이해하게 된 김 센터장은 과기부·행안부의 두 번째 과제로 원도심에 초록을 가져올 스마트팜 구축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주민 공감 사업이라는 이름처럼 기술이 현장에 들어갔을 때 그것을 사용할 주민이 공감하고 지역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좋은 연구개발입니다. 과기부와 행안부의 첫 협업사업인 주민 공감 사업에서 과제를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고 감사한 기회였어요.”
과기부·행안부 협업 지역현안 해결
2022년에는 ▲이륜차 안전 운행 유도시스템 개발(서울 구로구) ▲지하상가 실내공기 개선 통합관리 디지털 트윈 플랫폼 구축(강원 원주시) ▲쓰레기 무단투기 감시 및 투기자 이동경로 자동 추적(대구 달서구) 등 10개 과제를 선정해 6월부터 본격 추진하고 있습니다. 선정된 모든 과제가 주민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만큼 지역 주민이 연구개발 과정에 연구자와 함께 참여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한 것이 특징입니다.
정부는 10개 과제에 과기정통부의 연구개발 30억 원과 행안부·지자체의 기술 적용·확산 30억 원 등 모두 60억 원의 사업비를 지원합니다. 행안부는 지자체, 지역 주민 등의 소통·참여체계 구축과 기술적용·확산을 담당하고 과기정통부는 과학·디지털 기술에 대한 전문 연구개발 분야를 담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