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을 뒤흔드는 긴장감 넘치는 만찬 '보통의 가족'[노컷 리뷰]
※ 스포일러 주의
허진호 감독을 '멜로 대가'로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보통의 가족'은 감독의 새로운 대표작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감독은 인간의 양면성이란 오랜 질문으로 관객들의 내면을 뒤흔드는 '보통의 가족'이란 만찬을 숨 막히게 차려냈다.
'봄날은 간다' '8월의 크리스마스' '덕혜옹주' 등을 연출한 허진호 감독이 각자의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던 네 사람이 아이들의 범죄 현장이 담긴 CCTV를 보게 되면서 모든 것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담은 문제적인 작품 '보통의 가족'으로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보통의 가족'의 원작 소설인 네덜란드 작가 헤르만 코흐의 '더 디너'는 이번 영화를 포함해 서로 다른 나라에서 모두 네 차례 영화화된 작품이다. 그만큼 시간과 공간을 넘어 '보편성'을 가진 이야기, 바로 인간의 양면성을 다뤘기 때문이다.
보통 동전을 예시로 양면성을 표현하는데, '보통의 가족'이 양면성을 표현하는 방식은 뫼비우스의 띠에 가깝다. 서로 다른 면이 마주 보지 못하는 동전과 달리 '보통의 가족' 속 인물의 경우 선과 악, 겉과 속이 뒤집혀 맞물리고 이야기의 구조 역시 영화의 중심을 따라 이동하면 처음과 닮은 끝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영화는 인간 내면의 악이 어떻게 폭력적으로 발현되고,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여주며 시작한다. 현실에서도 종종 뉴스에서 접할 수 있는 사건이다. 현실과의 접점을 만든 '보통의 가족'은 시작부터 겉과 속의 괴리에 대해 암시하며 관객들에게 본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표면적으로 가장 대비되는 건 속물적인 변호사 재완과 원칙주의 의사 재규다. 한쪽은 돈을 위해서라면 가해자도 '무죄'로 만드는 데 주저하지 않고, 한쪽은 돈과 별개로 환자의 목숨을 위해서 주저하지 않는다. 한눈에 봐도 서로 다른 신념을 지닌 듯한 두 형제는 그들의 아내조차도 대비되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여기까지는 표면적인 모습이자 도덕적이고 이상적으로 보이는 재규 부부의 말을 통해 전달되는 모습이다.
저마다 정갈하게 세팅된 고급 레스토랑의 음식들처럼 각자 자신을 보기 좋게 포장해 온 두 부부, 정확히는 재완과 재규, 연경이 내면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건 혜윤(홍예지)과 시호(김정철)의 폭력이 담긴 CCTV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부터다. 여기서부터 내면에 잠들어 있거나 억눌러져 있던 본성이 어떻게 바깥으로 드러나는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재완과 재규, 연경의 내면에 감춰둔 진짜 모습이 차츰차츰 드러나며 이들을 바라보던 관객들의 인식 역시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보통의 경우, 극 중 화자의 시선을 따라가는 만큼 그동안 관객들 역시 재규를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을 관찰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도덕적이고 원칙적인 재규,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 간병도 마다하지 않으며 봉사활동도 열심인 연경의 시선에서 바라봤을 관객들에게 재규와 연경이 아들의 폭력 앞에 드러낸 민낯은 충격일 수밖에 없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좀처럼 그 속을 들여다볼 수 없는 게 인간이기에 자연스럽게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 판단의 첫 번째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인물들의 겉과 속이 뒤집히며 드러나는 순간 관객이 받는 충격 역시 '보통의 가족'이 인간의 양면성을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사실 재규와 연경의 위선과 폭력성은 영화 초반부터 조금씩 여러 방식으로 암시됐다. 재규는 중간중간 분노와 은근한 폭력성을 드러냈고, 재규의 엄마는 재규의 순해 보이는 겉모습 안에 폭력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연경은 이성적이고 이타적인 사람처럼 보였지만 지수를 향한 험담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지수 앞에서 대놓고 지수를 무시하는 발언을 했다.
재밌는 것은 겉과 속이 다른 인물들 사이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겉과 속이 그대로인 인물, 주변의 시선과 상관없이 자신의 민낯을 드러내길 주저하지 않았던 인물이 이들 중 가장 존재감이 없는 것처럼 나왔던 지수라는 점이다. 처음 두 부부가 함께한 식사 자리에서 지수는 처음부터 홀로 초장을 찾고, 열심히 초장에 찍어 회를 먹는다. 이는 재규 부부의 시선처럼 저속함이 아닌 솔직함이다.
재규와 연경, 그리고 어쩌면 관객들조차 지수를 돈 많은 연상의 변호사와 결혼한, 연경의 표현을 빌리자면 '취집'(취직 대신 시집)한 속물적인 여성으로 봤을 터다. 그러나 이는 그들이 지수에게 뒤집어씌운 겉모습일 뿐 지수의 진짜 모습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는 겉모습에 속아 지수를 향한 시선 속 편견과 혐오를 방관했을 수도 있고, '가족'이란 이름으로 선긋는 것을 당연시했을 수도 있다.
여러 상황 속에서도 지수는 처음부터 자신의 모습을 유지했지만, 변했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지수를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 내면은 영화 속 인물들처럼 겉으로 드러내고 싶지 않은 우리가 지닌 양면성의 한 측면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지수는 강렬하지도 않고, 분량이 많지도 않지만 가장 반전적으로 관객들의 뒤통수를 얼얼하게 하는 인물이다.
어쩌면 저 정도쯤은 인간적이라는 말로, 혹은 지수는 그럴만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내심으로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지수를 대하는 것처럼 누군가 혹은 사건을 향한 선입견과 사람을 저울질하는 내심들은 영화 처음부터 있었다. 영화 초반 차에 치여 죽은, 심지어 팔에 문신까지 가득한 게 불량해 보이는 한 남자, 신원불명의 노숙자라는 존재 말이다.
이처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영화는 끊임없이 인간의 양면성에 대한 딜레마에 빠지고 질문한다. 재완과 재규, 연경의 딜레마는 부모라면, 가족이라면, 인간이라면 길든 짧든 당연하게 빠질 수밖에 없는 딜레마다.
'인간' 혹은 '인간적'이라는 단어 안에는 선과 악 양가적인 모습이 모두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뻗어 나간 질문은 '위선'이라는 단어까지 가닿는다. '과연 재완의 위선도 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재규의 위선도 선이라고 해야 할까'로 확장된다. 위선 역시 거짓이라도 때로는 선으로 작용할 수도, 때로는 악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 숨 막히면서도 양면적인 구조의 '보통의 가족' 안에서 질문은 끊임없이 관객을 둘러싼다. 또한 혐오와 폭력, 위선이 흔해진 세상에서 어떠한 시각을 견지하며 세상과 인간을 바라봐야 하는지 끊임없이 시험대에 올린다. 쉽지 않은 질문이기에 영화관을 나와 대답을 찾아가는 시간까지도 '보통의 가족'의 러닝 타임에 속할 것이다.
허진호 감독은 섬세하면서도 인물들의 내·외면을 깊이 있게 포착해 내며 영화를 보는 내내 다음 장면이 궁금하게 만들었다. 특히 후반부 레스토랑 식사 장면은 한정된 공간 안에서 움직임 없이 대화만으로도 역동적이면서도 긴장감 넘치게 연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감독의 저력을 재확인하게 했다.
109분 상영, 10월 16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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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최영주 기자 zoo719@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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