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경제소사] 조선 보빙사와 암흑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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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9월18일 미국 보스턴 벤돔호텔.
일정의 하이라이트인 미 대통령 알현 외에도 조선 보빙사 일행은 미국의 신문물을 섭렵, 습득하려 애썼다.
조미수호통상조약에 따라 미국은 특명전권대사 루셔스 푸트 공사를 보냈으나 외교 공관을 설치, 유지할 능력이 없던 조선의 대안이 보빙사였다.
일본을 거쳐 미국에 도착한 보빙사 일행은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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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은 파견 이전부터 미국을 영토 욕심이 없는 선량한 국가로 굳게 믿었다. 푸트 공사가 청과 일본에 파견된 미국 공사와 동급이라는 점도 고종의 마음을 샀다. 일본을 거쳐 미국에 도착한 보빙사 일행은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미국 체류는 물론 귀환까지 비용을 댔다. 부사인 홍영식은 태평양을 건너 연말에 돌아왔으나 정사인 민영익 일행은 유럽과 아프리카·아시아를 거쳐 이듬해인 1884년 5월 말에야 돌아왔다. 권문세가의 자제들이던 사신들은 그동안 알았던 관념과 세계관이 무너지는 충격에 넋을 잃었다. 고종의 처조카인 민영익이 밝혔던 귀국 소감. ‘나는 암흑세계에서 태어나 광명세계로 들어갔다가 이제 또 암흑세계로 돌아왔다.’
세계를 경험한 젊은이들은 조선을 바꿨을까. 그렇지 않다. 붕당에 빠져 조선을 더 어둡게 만들었다. 민영익은 친청파로 돌아서 수구세력을 이끌었다. 홍영식은 우정국을 세우고 경복궁에 전깃불을 들여왔으나 갑신정변으로 목이 잘렸다. 반짝 성과는 있었다. 미국 언론이 보빙사 중에서 가장 주목했던 인물은 무관 출신 최경식. 학구적이고 영민한 인물로 미국 신문에서 조명을 받았던 그는 동대문과 망우리 일대에 대규모 왕립 농목축 시범사업장을 세워 단시일에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1886년 급사하면서 미국식 농업개혁도 물거품으로 끝났다.
반면 보빙사의 일원이던 외국인들은 영화를 누렸다. 청나라가 통역 겸 감시역으로 집어넣은 중국인 우리탕(오례당)은 인천에 405평짜리 대저택에서 떵떵거리며 살았다. 도쿄 주재 미국 공사가 강력 추천했던 미국인 통역 겸 서기관 퍼시벌 로웰은 훗날 동생과 더불어 세계적 천문학자로 이름을 날렸다. 로웰은 최경식이 죽은 해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를 지은 직후 일본을 극찬하는 책을 연달아 발표, 기행문 작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뒤틀린 조선의 역사에 가슴이 저린다.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서 앞선 세계를 경험하고도 정쟁으로 일관한 조상들과 우리는 얼마나 다른지 모르겠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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