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한 것들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 캐릭터 김희성

이경혁 2019. 7. 24.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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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법칙-146] "내 원체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바람, 웃음, 농담 그런 것들…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살다가 멎는 곳에서 죽는 것이 나의 꿈이라면 꿈이오."

2018년 높은 인기를 구가했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주요 등장인물인 김희성을 상징하는 대사다. 극중에서 구한말 외세의 침략에 놓인 조선의 갑부 아들로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민중을 상대로 벌인 횡포를 자신의 업으로 안고 살아가는 부잣집 아들인 김희성은 남들보다 평안하고 넉넉한 자신의 삶이 무엇으로부터 기인하는지를 알고 있으나, 그렇다고 그 모든 원인을 다 갈아엎으려 들거나 하는 행동가 스타일은 아니다. 그저 알 수 없는 세상으로부터 붕 떠버린 채 김희성은 그저그런 부잣집 도련님처럼 세상일 잊고 살고자 술과 담배, 도박에 전념하는 모습을 보인다.

'미스터 션샤인'의 등장인물 김희성은 세상 무용한 것들의 아름다움을 논하는 부잣집 도련님이다. /사진=TvN '미스터션샤인' 공식 홈페이지.

김희성은 스스로를 무용한 것들에나 눈길을 주는 한량으로 포장한다. 일종의 자조이고, 한편으론 사실이며, 세상을 바꿀 만한 힘도 의지도 기회도 없는 이의 위악일 수도 있는 김희성의 말은 곱씹어보면 그러나 여러 모로 덧붙일 말들의 여지를 만들어낸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가능하다. 꽃, 달, 별들은 정말 그리 무용한 것들일 뿐인 것인가? 혹은 그 무용한 것을 좋아하는 것이 그처럼 무의미한 일일 뿐인 것인가?

무용(無用). 아무 짝에도 쓸 데가 없다는 뜻이다. 이 말의 전제는 사건과 사물의 의미를 필요에 의해 규정한다는 의미를 품는다. 먹고사는 문제만을 놓고 본다면 꽃과 달과 별은 정말 무용할 수 밖에 없다(이를 활용해 뭔가를 만드는 일은 논외로 쳐도 될 것이다). 그렇다면 무용하다는 이유로 이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과연 합당한 일일까?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은 사실 이 지점에서 김희성의 말을 꺾어내면서 의미를 만들어낸다. 드라마가 다루는 시대적 배경인 1900년대 초는 갓 성립한 대한제국이 외세의 침탈에 의해 무너져가는 중이었고, 특히 일본의 침략 야욕이 노골화되는 시점에서 전국 각지 의병이 일어나 곳곳에서 싸우고 있던 시기였다. 드라마 후반부의 군대 해산을 정점으로 하는 의병운동은 극중에서 주인공 고애신의 암살 활동으로 각색되어 이어진다.

그러나 그 역사의 결말을 아는 시청자들은 결말을 안다는 점에서 이 활동이 다소 무용의 영역에 있음을 알고 있다. 결국 의병은 일본의 한반도 병탄을 막지 못했으며, 끝끝내 승리하지 못할 싸움을 독립군까지 이어가며 지속해 왔음을 모르는 이는 없다. 끝내 승리하지 못했다 해서 이 활동들은 우리에게 무의미한 것인가? 꽃, 달, 별, 농담, 그리고 대한제국 말기의 의병 활동. 이 모든 것은 진정 무용하기에 무의미한 것인가? 드라마가 굳이 김희성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무용의 의미를 묻는 것은 아마도 그 의병활동 의미를 무용의 관점에서 끌어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무용한 디지털 게임은 반드시 용도와 의미를 가져야 했는가?

간혹 게임 관련 뉴스 중 게임에 우호적인 입장을 피력하는 뉴스에선 게임의 의미와 효과를 다루는 경우들이 있다. 게임을 하면 뇌가 활성화된다, 게임을 하는 이들이 하지 않는 이들보다 어떤 측면에서 더 놀라운 능력을 보인다 같은 뉴스들은 굳이 여기서 구체적인 사례를 거론하지 않아도 무슨 뉘앙스인지 알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게임을 좋아하고 아끼는 이들이라면 굳이 이런 뉴스가 눈에 걸리지 않을 수 있겠지만 나는 간혹 이런 뉴스들이 게임을 다루는 중심 담론으로 여겨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들곤 한다. 이 뉴스들의 전제에는 앞서 '미스터 션샤인'에서 언급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유용한 것만이 의미를 가진다는 전제는 우리로 하여금 자꾸 게임의 의미와 효과를 거론해야만 할 것으로 여기게 만드는 경향을 만든다.

80년대부터 이어져 온 오락실 유리창의 '지능개발' 선팅 문구가 대표적이다. 실제로 게임하는 일이 지능계발에 도움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 문구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당시에는 거의 오락실을 상징하는 사자성어처럼 따라다니곤 했다. 시절이 많이 바뀌었고 동네 오락실들은 사양산업이 되어 찾아보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으니 그 문구도 사라졌을까? 문구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그 맥락은 게임 저변에 계속 살아 움직인다.

앞서 언급한, 게임을 하면 무엇무엇에 도움이 된다는 맥락만이 전부가 아니다. 게임은 한국의 미래 산업으로 각광받고 있으며 이미 해외 콘텐츠 수출 부문에서 가장 강력한 매출 견인력을 보유했다는 것은 산업적인 관점일 뿐이지 게임 전반의 의미를 담보하지 못한다. 게임을 통해 사람들이 좀 더 힘든 일과 귀찮은 학습을 손쉽게 해낼 수 있다는 것도 방법론의 관점에서 가능하다는 하나의 갈래일 뿐이지 그것이 게임의 존재 의미를 대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런 입장들이 나오게 된 배경은 이해해야 할 것이다. 오랫동안 디지털게임이 당해 온 백안시의 역사는 지속적으로 게임, 그리고 게임 애호가들로 하여금 게임의 의미를 스스로 세상에 증명하도록 등떠밀어 왔다. 실용주의가 가장 설득력이 있는 세상을 향해 그나마 설득력 있게 들릴 수 있는 해명으로 이러한 주장들이 사용되어왔다는 사실을 전면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런 지엽적인 주장들로만 게임의 의미를 이야기하는 것이 효과적일지는 알 수 없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미 이러한 주장들은 내부적으로나 외부적으로나 일정 수준의 한계에 다다랐다. 듣는 이에겐 진부한 이야기로, 주장하는 이에겐 뻔한 이야기로 들리기 시작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실용주의 너머에 존재하는 게임의 의미를 위해

우리는 좀 더 게임의 무용함 자체를 바라보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디지털게임을 만들고 플레이하고 이야기하는 일들이 반드시 어떤 용도를 담보해야 할 의무가 없으며, 용처가 없는 그저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무엇이라는 이야기가 좀 더 앞에 나와야 한다.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다루는 일들이 반드시 전문 예술가가 되어 그걸로 생업을 해야만 유의미한 것이 아니듯이, 무용한 게임 플레이가 반드시 무의미한 것이 아님을 이야기해야 한다.

아니 좀더 강하게 주장을 밀고나가자면, 무용해야만 플레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특정 온라인게임에서의 플레이가 일련의 아이템이라는 결과물을 만들고 이를 현금으로 거래할 수 있게 된다면 오히려 이는 플레이라고 부를 수 없어야 한다. 플레이는 무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단히 급진적인 주장이 되지는 않는다.

아무도 시를 읽지 않는 세계, 그림이 단지 고가의 경매품으로만 남는 세계로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계속 흘러가는 중이다. 한때 위세라도 있던 수많은 무용한 것들이 실용주의의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속에서 게임의 무용함을 이야기하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무용한 플레이를 자꾸 유용한 무언가로 덮어씌우는 일은 과거 지능개발 캠페인에서 한 발짝도 더 나가지 못한 수준에 불과할 뿐이다. 세상의 편견과 맞서되, 게임의 본질을 우리는 여전히 잊지 않고 되뇌어야 한다.

"내 원체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바람, 웃음, 농담, 그리고 게임…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살다가 멎는 곳에서 죽는 것이 나의 꿈이라면 꿈이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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