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칼럼함께하는세상]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자

황온중 2019. 9. 4.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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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를 외국어로 옮길 때 정확히 대응하는 단어가 없는 경우가 가끔 있다.

한국어에서는 문어, 낙지, 주꾸미를 구분하지만, 영어에서는 그것들을 옥토퍼스(octopus)라 통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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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를 외국어로 옮길 때 정확히 대응하는 단어가 없는 경우가 가끔 있다. 한국어에서는 문어, 낙지, 주꾸미를 구분하지만, 영어에서는 그것들을 옥토퍼스(octopus)라 통칭한다. 한국인은 오징어, 꼴뚜기(한치)를 구분하지만, 미국인은 그것들을 스퀴드(squid)라 한다. 옥토퍼스와 스퀴드를 구분하는 것은 각각 다리의 개수가 8개와 10개로 뚜렷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영어에서도 학명으로는 그것들을 각각 엄격히 달리 부르지만, 일상용어로는 대체로 구분하지 않는다.
학명으로는 이들을 두족류라 한다. ‘머리에 다리 달린 동물’이라는 뜻이다. 영어에서 두족류를 가리키는 단어가 세분되지 않은 것은 영국인과 미국인 등이 그것을 별로 선호하지 않았고 그에 따라 접촉이 적었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유대교·기독교에서 비롯된 ‘지느러미와 비늘 없는 물고기’ 금기 음식문화가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고, 미끄덩한 몸매에 여러 개의 다리를 가진 생김새에서 괴물을 연상했을 수도 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과학연구소장
유럽에서는 문어, 오징어를 ‘악마의 물고기’(devilfish)라 하기도 한다.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북유럽 전설의 바다 괴수 ‘크라켄’(kraken)은 문어 형상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에 나오는 바다 마녀 ‘우르슬라’의 하반신은 문어 다리다. 쥘 베른의 소설 ‘해저 2만리’에 나오는 ‘선박을 여러 개의 다리로 휘감아서 침몰시키는 괴물’은 대왕오징어다.

이와는 반대인 사례도 있다. 한국어에서는 ‘애호박’과 ‘늙은호박(청둥호박)’을 다 같이 ‘호박’이라 하지만, 영어에서는 그것을 각각 주키니(zucchini)와 펌프킨(pumpkin)으로 구분한다. ‘애호박’을 따지 않으면 크기가 커지고 색도 ‘늙은호박’과 비슷해지지만, ‘동그랗고 납작한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길쭉한 모습’을 유지한다. 영미인이 두족류를 기피하는 것과는 달리, 한국인은 애호박과 늙은호박을 즐긴다. 사실이 그렇다면 ‘사람들의 대상에 대한 접촉 빈도 차이가 조어법 차이를 만들어냈다’는 가설은 조심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대상별로 공통점과 차이점이 존재하는 경우 어디에 강조점을 두고 이름을 붙였는지가 관건이다. 조어법에서 공통점을 강조하는 경우에는 복합어를 사용하고, 차이점을 중시하는 경우에는 단일어를 사용한다.

주키니와 펌프킨이 한국어에서 ‘애호박’, ‘늙은호박’처럼 ‘수식어와 결합한 복합명사’로 표현되는 것처럼, 영어에서도 문어, 낙지, 주꾸미는 각각 ‘옥토퍼스’, ‘작은 옥토퍼스’(small octopus), ‘짧은팔 옥토퍼스’(short arm octopus)로, 오징어와 꼴뚜기는 각각 ‘스퀴드’, ‘베카 스퀴드’(beka squid)라 한다. 한국어 ‘갑오징어’는 영어로 ‘커틀피시’(cuttlefish)로 표현된다. 영어에서는 커틀본(cuttlebone), 즉 ‘등판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석회질의 단단한 뼈’를 가진 해양생물이라는 차이점을 강조한다면 한국어에서는 ‘같은 오징어과 생물’임을 중시한다.

영어와 한국어 사이에 우열이 있는 게 아님을 확인한다. 사람들의 ‘문화적 자부심’이 지나치면 ‘자문화 중심주의’에 빠지고, ‘문화적 수치심’이 지나치면 ‘문화 사대주의’에 빠진다. ‘문화 다양성’을 인정하고 ‘문화적 상대주의’를 견지하는 게 중요함을 절감한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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