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의 역사,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
독일 남부 슈투트가르트는 인구 60만 명이 조금 넘습니다. 우리나라 기준으로 보면 큰 도시가 아닐 수 있지만 독일 기준으로 이곳은 크고 복잡한 도시입니다. 슈투트가르트는 관광객에게 인기를 끌 만한 곳은 아니죠. 오히려 독일 남부를 대표하는 산업 도시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합니다. 이런 슈투트가르트 하면 가장 먼저 자동차를 떠올리게 되는데요.
삼각별 로고로 유명한 메르세데스-벤츠, 그리고 독일 최고의 스포츠카 브랜드 포르쉐의 고향이 바로 이곳입니다. 본사와 공장은 물론, 멋진 자동차 박물관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슈투트가르트를 관광의 목적으로 간다고 하면 열의 아홉은 이 자동차 박물관들을 찾는 것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메르세데스-벤츠와 포르쉐의 박물관을 찾기 위해서는 자동차나 기차 등을 이용하면 됩니다.
◆ 어느 하나 빈틈없는 구성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은 건물 디자인에서부터 자신들이 자동차의 역사이며 최고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건축가 벤 판 베르켈(Ben Van Berkel)이 이중 나선 구조로 설계했는데 인간의 DNA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본질, 시작, 기본이라는 것과 메르세데스-벤츠의 역사를 연결했다 볼 수 있습니다. 자동차 소재로도 쓰는 알루미늄과 유리로 외관을 꾸몄는데 이 역시 자동차 박물관다운 발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댄 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면 그곳에서부터 본격적인 관람이 시작되는데요. A4 이하 크기의 백팩이나 가방만 소지가 가능하고, 만약 외투나 가방을 보관해야 한다면 우측에 있는 무료 보관함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전시실은 신화(Myth)를 뜻하는 M1부터 M7까지 연대순으로 마련된 메인 전시실 7개와 컬렉션을 뜻하는 C1부터 C5까지 총 12개로 구성돼 있습니다. 자동차 탄생의 순간을 만나기 위해 꼭대기 층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벽면에는 메르세데스-벤츠의 역사적 순간들이 비치며 시간을 거슬러 가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관람객은 이 순간부터 시간 여행자 모드로 바뀌게 되는데요. 어느 순간, 어느 공간 하나 허투루 낭비하지 않고 의미를 부여했다는 게 참 놀라웠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열리면 가장 먼저 하얀색 말 한 마리가 사람들을 맞습니다. 그리고 그 말 아래에 발판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죠.
‘나는 말을 믿는다. 자동차는 지나가는 일시적 현상일 뿐이다.’
-빌헬름 2세
빌헬름 2세는 독일 제국 황제이자 프로이센의 왕이었습니다. 말의 시대, 말이 지배하던 18세기 말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다임러는 보여주며 관람을 시작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시대가 어떻게, 누구에 의해 끝나는지를 바로 사람들에게 제시하고 있죠. 이 자신감 넘치는 구성은 역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 ‘삼각별’이기에 가능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 1886년-1900년까지 '개척자들-자동차의 발명'
M1, 첫 번째 관람실은 '개척자들-자동차의 발명'이라는 제목으로 돼 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칼 벤츠의 파텐트 모터바겐과 마차에 엔진을 얹은 다임러의 엔진마차(Motorkutsche), 그리고 괘종시계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다임러의 싱글 실린더 엔진이 중앙에 자리해 있는 걸 볼 수 있는데요. 멋진 조명과 분위기 탓에 더 강렬하게 그 느낌이 다가옵니다.
사실 칼 벤츠와 고트립 다임러는 생전 대면한 적이 없는, 심지어 기술 사용 문제로 소송전까지 벌였던 그런 사이였습니다. 이런 두 사람이 만든 자동차의 역사가 하나로 합쳐져 지금까지 잘 이어져 오고 있다는 걸 이들은 알까요? M1실 한쪽에는 칼 벤츠와 고트립 다임러, 그리고 다임러의 영혼(?)의 파트너였던 빌헬름 마이바흐 흉상이 사이좋게 있습니다.
이밖에도 이곳에는 다임러와 마이바흐가 함께 만든 최초의 모터사이클 라이트바겐(Reitwagen), 최초의 승합차로 여겨지는 벤츠 옴니부스, 또 다임러가 제작한 최초의 트럭 모터-라스트바겐 등을 볼 수 있습니다. 온통 최초 수식어가 붙은 ‘탈 것’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는데요. 포르쉐 전유물과 같은 박서엔진도 사실은 이들이 만들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라이트바겐은 실제로 두 사람이 타고 다니기도 했다는데, 앞서 소개한 괘종시계 엔진 테스트를 위한 것이었다고 하죠. 솔직히 저는 첫 전시실만 제대로 봐도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 절반은 본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 1900년-1914년까지, ‘메르세데스-브랜드의 탄생’
나선형 구조의 어두운 복도를 따라 내려가면 두 번째 메인 전시실인 M2에 다다릅니다. 자동차가 아직 마차의 느낌을 완전히 떨치지 못했던 시기이자 또한 자동차가 요즘 우리가 아는 그런 자동차답게 변했던 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헤드램프, 동그란 운전대, 제동장치와 변속기, 그리고 나무 등을 이용한 서스펜션 등이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중앙에 있는 1902년에 만든 '40 PS 메르세데스-Simplex'가 사람들 시선을 끕니다. 1900년대 들어서며 자동차의 출력은 눈에 띄게 높아지죠. 메르세데스-Simplex는 그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6,785cc 4기통 엔진이 들어간 이 자동차는 1마력에서 5마력 수준이던 이전의 기술을 크게 뛰어넘는 성능을 보인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 차는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데, 처음으로 '메르세데스'라는 브랜드가 붙여진 자동차였기 때문입니다.
외교관이자 사업가였던 에밀 옐리네크는 칼 벤츠의 자동차를 소유했었고, 늘 속도에 대한 갈증이 있던 스피드광(?)이었습니다. 이런 그의 눈에 다임러의 회사 DMC의 광고가 들어옵니다. 직접 독일 공장으로 찾아간 그는 자동차를 두 대 주문하고 이어 더 빠른 속도의 차를 원합니다. 그의 요구를 맞춰주자 에밀 옐리네크는 이거다 싶었던 거 같습니다. DMC 자동차들을 파는 판매상으로 직접 나서게 된 것인데요. 지금 액수로 40억 원이라는 엄청난 자금을 쏟아부어 서른 대가 넘는 다임러 자동차를 주문합니다. 동시에 자신의 딸 이름을 직접 상표 등록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메르세데스 브랜드의 탄생입니다.
M2 전시실에 있는 자동차들의 공통점은 높은 배기량에 고마력(당시로는), 그리고 엄청나게 비싼 자동차들이란 것이었습니다. 주로 돈 많은 귀족이나 정치인, 그리고 사업가 일부만이 살 수 있었던, 화려함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차들이었습니다. 말이나 자전거조차 탈 수 없었던 서민들 입장에서 이런 자동차는 꿈도 꿀 수 없었던 것들이었죠.
바퀴부터 시트, 운전대 등, 부분 부분 모두가 화려하고 멋지죠? 당시 유럽의 자동차 문화는 바로 이런 고가의 자동차들이 지배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그런데 같은 시기 미국에서 엄청난 자동차의 혁명이 일어납니다. 헨리 포드가 T-모델이라는 자동차를 내놓은 것입니다. 엄청나게 저렴한 가격으로 누구나 자동차를 살 수 있는 그런 시대를 만들었고 세계 자동차 산업은 큰 충격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메르세데스-벤츠도 충격을 받았을까요? (2부에서 계속)
박물관 투어 TIP!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의 경우 슈투트가르트 중앙역(Hauptbahnhof)에서 키르히하임(Kirchheim) 방면으로 가는 도시 철도 S반(S-Bahn) S1 라인을 타고 넥카파크트(Neckarpark) 역에서 내리면 됩니다. 10분 정도 걸어야 하는데 표지판이 있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박물관 맞은편에 축구 경기장 메르세데스-벤츠 아레나가 있다는 것도 참고하면 좋을 듯하네요.
유럽 자동차 박물관 사진전 보러가기
글/이완(자동차 칼럼니스트) 사진/최민석
<박물관 기본 정보>
박물관명 : 메르세데스 벤츠 박물관
브랜드명 : 메르세데스 벤츠
국가명 : 독일
도시명 : 슈투트가르트
위치 : : Mercedesstraße 100, 70372 Stuttgart, Germany
건립일 : 2006년
휴관일 : 월요일
이용시간 : 오전 09:00-오후 18:00
입장료 : 성인 일일권 : 10유로, 청소년, 학생, 60세 이상 등 할인 일일권 : 5유로
홈페이지 : mercedes-benz.com/de/mercedes-benz/classic/muse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