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렁물렁한 사춘기 아이들의 '뒤집힌 세계로 통하는 문' 닫기 [이로사의 신콜렉터]

이로사 | 칼럼니스트 2019. 7. 19.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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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넷플릭스 ‘기묘한 이야기’

넷플릭스 <기묘한 이야기>가 그리는 ‘뒤집힌 세계’는 불가해한 일들이 일어나는 어둠과 그림자의 세계다. 그곳은 이 세계와 같은 장소이지만 어둡고 춥고 텅 비어 있다. 시즌1 중반쯤 ‘던전 앤 드래곤’ 게임을 하던 아이들은 친구 윌이 실종된 뒤 갇혀버렸다고 추측되는 뒤집힌 세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윌이 거기 있었다면? 단지 우리가 못 본 거라면? 윌이 건너편(the other side)에 있었다면? 여기를 호킨스(지역명)라고 치고, (게임판을 뒤집어 검은 뒷면을 보여주며) 여기가 윌이 있는 곳이라면? 뒤집힌 곳 말이야.”

아이들 중 하나는 곧이어 ‘던전 앤 드래곤’ 매뉴얼에 적힌 듯한 ‘어둠의 계곡’ 항목의 문장을 읽는다.

“이 세계의 어두운 반향 혹은 메아리이다. 엇갈린 차원. 괴물들의 거처. 우리 곁에 있지만 볼 수 없는 곳이다.”

‘기이한 것들’의 출몰에 어른들은 당황하고 또래 아이들은 벌벌 떨고 있을 때 <기묘한 이야기>의 주인공인 십대 초반 ‘덕후’ 소년·소녀들은 알 수 없는 존재에 이름을 붙이고 그 세계를 상상해 대적할 방법을 찾아낸다. 넷플릭스 제공

<기묘한 이야기>의 아이들이 맞서 싸우는 괴물은 이러한 ‘뒤집힌 세계’에 사는, 전혀 알 수 없는 존재다. 드라마는 이들이 맞서는 ‘그것’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외형 묘사는 점차 디테일해지지만(명백히 영화 <에일리언>을 떠올리게 한다),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라면 이야기가 진행되어도 여전히 명확해지지 않는다. 시청자는 등장인물들과 마찬가지로 그것이 외계생명체인지 새로운 화학물질복합체인지, 그들의 몸이 무엇으로 구성되는지, 지능은 얼마나 되는지, 어떤 의도를 갖고 있는지 어렴풋이 추측할 뿐 아무것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것은 이 시리즈의 원제가 ‘Stranger Things’, 즉 ‘기이한 것들’인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 앞으로도 계속해서 어둠 속에 존재하는 알 수 없는 무엇으로만 남아 있을 것이다.

이 ‘알 수 없는 것들’을 특유의 상상력과 열린 마음으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주인공인 십대 초반의 아이들이다. 게임 ‘던전 앤 드래곤’의 ‘덕후’이자 호킨스 중학교 과학서클 멤버인 이들은 현실에 나타난 기이한 일들에 당황하지 않고 적응한다. 이들은 어른들이 “우리는 ‘그것’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잖아!”라며 당황하고 있을 때, ‘덕후’ 아닌 아이들이 무서워서 벌벌 떨고만 있을 때, 알 수 없는 존재에 이름을 붙이고 그 세계를 상상해 대적할 방법을 찾아낸다.

■미지의 것

얼마 전 시즌3을 내놓은 <기묘한 이야기>(2016~)는 1980년대 미국 인디애나주의 호킨스라는 작은 마을에서 한 소년이 행방불명되면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기이한 사건들과 그에 맞서는 친구들의 모험을 그린 SF호러물이다. 주인공은 늘 지하실에 모여 TRPG 게임 ‘던전 앤 드래곤’을 플레잉하는 데 빠져있는 ‘덕후’ 사총사 마이크, 윌, 더스틴, 루카스다. 이들은 정부의 비밀실험과 관련해 초능력을 갖게 된 미지의 소녀 엘을 만나고, 자신과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 무시무시한 괴물들과 맞서 싸우게 된다.

형식적으로 드라마는 1980년대의 게임, 영화, TV시리즈, 애니메이션 등 팝컬처에 대한 오마주로 가득 차 있다. 1980년대 형형색색의 팝컬처로 무장한 아이들은 무전기를 손에 들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게임의 도전 단계를 밟아가듯 과제를 하나씩 풀어내 결국 최종 괴물과 만나는 흥미진진한 모험을 펼쳐나간다.

시즌1, 2에서 아이들이 거대한 음모와 초자연적 현상, 뒤집힌 세계와 각종 괴물들과 대적하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진행해온 드라마는 시즌3에 이르러 이 모든 것이 ‘틴에이저’의 일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는 것에 집중한다. 시즌3의 메인 플롯은 ‘가상의 괴물에 대적해 그 중추에 해당하는 뒤집힌 세계의 문을 닫는다’는 지난 시즌의 플롯을 그대로 반복할 뿐이다. 다만 시즌3는 이 모든 것을 ‘사춘기’에 대한 일종의 은유로 명명하며 일단락된다.

미국의 작은 마을에서 한 소년이 행방불명된다, 소년을 찾아나선 친구들… ‘던전 앤 드래곤’이라는 게임 ‘덕후’ 사총사는 초능력 소녀를 만나고 자신과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 괴물들과 맞서 싸우지만 세상을 구하지는 않는다 사춘기라는 미지를 빠져나올 뿐…마지막에 이르러 아이들은 조금씩 자라있고 게임도 시들해 진다 최종 미션은 뒤집힌 세계로 가는 ‘문’을 닫은 것, 아마도 유년기로 가는 문일 것이다 나는 스티븐 킹의 소설 ‘IT’ 를 떠올렸다 아이들이 성인이 돼 고향으로 모여드는 그림을 상상하면 흥분을 감출 수 없다

아이들이 겪는 모험은 목숨을 거는 살벌한 일인데도 시즌3에선 유독 그것을 경쾌하게 다룬다. 무거운 임무를 수행하는 중에도 명랑한 하이틴 드라마의 우정과 사랑이 태연자약 펼쳐진다. 십대인 인물들은 힘을 합쳐 ‘덕력’으로 괴물을 무찌르는 과정에서 성장과 정체성 찾기를 거듭하고, 각자의 고통과 상처를 극복하려 애쓰며 사춘기의 문을 한 차례 빠져나온다.

<기묘한 이야기>의 모험이 세계 전체가 아니라 주인공 아이들의 경험으로만 한정되어 있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은 분명 뒤집힌 세계의 괴물이 이 세계로 빠져나오는 것을 막아내는 영웅이지만, 드라마는 그들을 ‘세상을 구하는 히어로’로 그리지는 않는다. 인물들이 구하는 것은 세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며, 이들이 애써 대적해나가는 것은 인류 멸망의 공포가 아니라 사춘기의 미지의 고통이다.

<기묘한 이야기>에는 세 시즌을 진행하는 내내 단 한 번도 대중 전투 신이 없다. 공공장소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괴물로 인해 위험에 처하고 주인공이 나타나 그들을 구하는 류의 장면 말이다. 시즌3의 메인 전투 신 역시 1980년대 미국 소비자본주의의 총아인 신생 거대 쇼핑몰에서 이뤄지는데(‘스타코트 전투’), 이들의 전투는 세상의 많은 사람들과는 별 관련이 없다. 그곳에는 이상할 정도로 주인공들만 있다. 낮 동안 쇼핑몰을 가득 채웠던 사람들은 이미 돌아가 버렸고, 쇼핑몰 밖 거리에도 인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어떨 때는 드라마가 그리는 세계 자체가 이 ‘덕후’ 소년·소녀들의 연결된 내면세계처럼 보인다. 마치 인디애나와 유타에, 이 세계와 저 세계에, 호킨스 곳곳에 점점이 흩어진 ‘덕후’를 연결하는 아마추어무선통신 주파수의 네트워크처럼, 또는 새롭게 등장한 괴물 ‘마인드 플레이어’가 분산된 개체임에도 서로 마음을 공유하는 집단지능(하이브 마인드)으로 이뤄진 것처럼 말이다.

주인공 각자는 시즌 말미에 이르러 조금씩 성장해있다. 초능력을 가진 소녀 엘은 실험 대상으로 학대받은 어린 시절의 상처를 딛고 자신을 믿고 사랑해주는 이들로 인해 조금씩 자신을 찾아나간다. 사총사의 아지트였던 지하실은 시시각각 빛을 잃는다. 마이크, 루카스, 더스틴에게는 여자친구가 생겼고, 이들은 10시간씩 매달리던 게임 플레잉에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어느새 다투고 가버린 여자친구의 전화를 더 기다릴 나이가 되었다. 여전히 게임을 좋아하는 윌은 어른의 세계로 떠나버린 친구들을 보며 슬퍼한다. 윌은 숲속 비밀 아지트를 부수며 빗속에서 울부짖는다.

■닫힌 문

<기묘한 이야기>의 아이들이 세 시즌을 거치며 달성한 최종적인 과제는 뒤집힌 세계로 가는 ‘문’을 닫은 것이다. 원래 흐물거리며 끈적하고 물렁했던 입구는 이제 식은 용암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시즌3에 이르러 반복적으로 보이는 반쯤 굳은 닫힌 포털의 이미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음속 깊고 어두운 곳에 갖고 있을 유년기의 ‘닫힌 문’을 떠올리게 한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딱딱해진다. 십대 초반 정도면 아직은 물렁물렁한 시절인 것이다. 검게 굳은 포털은 마치 상처가 벌어진 것처럼 가운데가 갈라진 채 희미하게 안의 것들을 비쳐 보인다. 닫힌 문 뒤에 있는 것은 어린 시절 경험한 근원적인 공포일 수도,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불가해한 일들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천진함일 수도, ‘던전 앤 드래곤’ 같은 게임이나 <백 투 더 퓨처>와 같은 영화를 진심으로 즐기는 상상력의 순수한 상태일 수도 있다. 어쨌든 물렁물렁하게 벌어져 있던 문은 마치 아기 머리의 숨구멍이 때가 되면 닫히듯 이제 굳어져 닫혀버렸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지금 너와 나의 경계가 물렁물렁하게 열려 있지만 어른이 될수록 경계는 선명해지고 마음은 닫혀버릴 것이다.

이로사

‘던전 앤 드래곤’은 박스에 담겨 어린 동생의 손으로 넘어갔다. <기묘한 이야기>의 십대 ‘덕후’들은 ‘닫힌 문’을 마음속 깊고 어두운 곳에 간직한 채 동굴 밖으로 한 걸음 나아간 것이다.

나는 이들이 스티븐 킹의 소설 <그것(IT)>(<기묘한 이야기>의 참고작품 중 하나)에서 아이들이 그랬듯 성인이 되어 다시 고향으로 모여드는 그림을 상상하면 흥분을 감출 수 없다. 어린 시절에서 멀어졌던 이들이 모여, 굳어 있던 문이 열리고 다시 물렁해지며, 다 함께 미지의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그 순간을 말이다.

이로사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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