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조국씨의 '정무적 책임'

안용현 논설위원 2019. 12. 19.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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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국감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이 '검사로서 윤석열이 변한 게 없다고 자부하느냐'는 질문에 "자부까지는 아니라도 예나 지금이나 정무 감각이 없는 것은 똑같은 것 같다"고 답했다. 당시 조국 전 법무장관의 파렴치 혐의를 수사하던 윤 총장은 여권으로부터 '검찰 쿠데타'라는 공격을 받고 있었다. 정무(政務)는 '정치적 사무'란 뜻이다. '정무 감각이 없다'는 말은 정치적 눈치 보지 않고 '법대로 한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1990년대 프랑스가 '혈액 오염 사건'으로 발칵 뒤집혔다. 정부 관리 부실로 에이즈에 오염된 혈액을 4000여명이 수혈받았다. 수사 대상에 오른 보건 당국의 '정무직' 관리들은 "책임은 있다. 그러나 죄는 아니다(responsible but not guilty)"라고 했다. 정치적 책임은 있지만 감옥에 갈 법적 책임은 없다는 것이다. 이후 이 말은 죄를 짓고도 법망을 빠져나가려는 프랑스 관리를 조롱할 때 자주 인용된다. 2003년 대북 송금 특검 수사 때도 김대중 정부 인사들은 북에 정상회담 뒷돈을 준 것에 대해 '고도의 정치 행위' '정무 판단'이라며 법적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

▶조국씨가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과 관련한 검찰 조사에서 "당시 조치(감찰 중단)에 대한 정무적 최종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진술했다고 변호인이 그제 밝혔다. 당시 민정수석으로 유재수의 명백한 불법 행위를 알고도 눈감은 정황이 드러난 만큼 당연히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도 '정무적' 운운하는 건 정치적 책임은 져도 직권남용 등 법적 책임은 질 수 없다는 주장으로 보인다.

▶조씨는 딸 입시와 사모펀드 등 자신의 일가를 둘러싼 불법 의혹에 대해선 한 달 넘게 묵비권을 행사했다. 그런데 청와대 업무 관련 혐의에 대해선 입을 열었다. 일가 사건의 경우 아내와 딸 등 조씨에게 불리하게 진술할 사람이 없다. 검찰에서 침묵하고 가족들과 입을 잘 맞추면 법정에서 유리할 수 있다. 그러나 감찰 무마 건은 "조씨가 결정하고 지시했다"는 주요 관련자 진술이 나온 상태다. 입을 닫고 있으면 혼자 다 뒤집어쓸 판이 되니 적극 나서는 것 아닌가. 감방 갈 수 없다고 몸부림치는 '법꾸라지' 같다.

▶조씨는 검찰에서 "(감찰 중단은) 나 스스로 결정한 게 아니다" "주변에서 연락이 많이 왔었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정무적 책임'이란 정권 내 여러 정치적 의견을 반영한 책임이란 의미일 수도 있다. 정권 실세 민정수석을 꼼짝 못 하게 한 '의견'은 누가 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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