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토이스토리4’에는 유치원생 보니가 쓰레기통에 버려진 플라스틱 포크, 나뭇조각 등 잡동사니로 만든 장난감 친구 ‘포키’가 나온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직접 만들어서일까. 공장에서 찍어낸 장난감들에 비해 우스꽝스럽고 어설픈 모양이지만, ‘포키’는 다른 장난감들을 모두 제치고 보니의 둘도 없는 단짝 친구가 된다.
자신의 정체성을 혼란스러워하는 ‘포키’와 그를 달래는 ‘우디’(위). 보니가 ‘포키’를 만드는 장면(아래).영화 ‘토이스토리4’ 스틸컷
지난 3일 사단법인 환경실천연합회가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센터에서 한 사회적기업(금자동이)의 운영프로그램 ‘장난감 학교’와 함께 ‘배워서 남 주는 시니어의 장난감 재활용 교육’을 진행한 현장에선 또다른 ‘포키’들이 탄생했다. 시인 장기숙(70)씨 등 40∼70대 여성 5명이 한자리에 모여 버려지는 폐장난감을 분해한 뒤 조합해 새로운 장난감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이들은 색동어머니회 회원들로, 관련 교육을 받은 후 어린이들에게 장난감 재활용 수업을 펼치겠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뭔 놈의 나사가 이렇게 많나”… 장난감 재활용률 1%도 안 돼
장씨 등은 유아용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 장난감 분해에 한창 열을 올렸다. 손에는 한때 아이들의 사랑을 독차지했을 ‘뽀로로’, ‘카봇’, ‘도라에몽’ 등의 낡고 고장난 장난감들이 들려 있었다.
겉보기에 일반 플라스틱 쓰레기로 보이는 장난감들은 사실 찬찬히 뜯어보면 철, 고무, 유리, 비닐, 종이 등이 섞여 있는 ‘복합 쓰레기’인 경우가 많다. 드라이버 등 연장이 필요할 만큼 분해가 까다롭고 스티커나 테이프로 나사를 숨겨놓기도 해 재활용률이 매우 낮은 편이다. 교육을 담당한 금자동이의 신수경 대표교사는 “폐장난감은 분해하지 않으면 100개 중 1개도 재활용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분해한 장난감 안은 전선, 나사, 회로 등으로 가득차있었다.
이날 교육 참가자들은 의욕적으로 나섰지만 금방 인내심이 시험대에 올랐다. 드라이버로 손톱보다 작은 나사 하나하나를 풀어 분해한 장난감 내부에서 또다시 나사를 발견한 진해자(62)씨는 “상상 이상으로 너무 많은 게 들어있다. 뭔 놈의 나사가 이렇게 많나. 안에 나사가 또 있었다”고 탄식했다. 그런가 하면 분해를 끝냈다는 오명란(51)씨는 신 교사의 “장난감 바퀴는 고무로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휠 부분은 플라스틱”이라는 설명에 다시 드라이버를 들어야 했다. 건전지가 들어가는 장난감은 투입구의 철판, 스프링이나 내부의 회로, 전선 등도 꼼꼼히 제거해야 한다.
장난감을 분해하는 모습.
진씨 등 5명이 이날 15분간 장난감을 분해해 얻어낸 플라스틱양은 약 1kg. 신 교사가 “요즘 시세로 겨우 50원어치”라 말하자 어머니들이 헛웃음을 지었다. 플라스틱은 분해에 들이는 노력 대비 수익이 적고 재활용도 어렵다. 소각되거나 매립되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환경파괴의 주범으로 지목된 지 오래다. 이 때문에 분해한 플라스틱 장난감은 아이들 손에서 창의성을 더해 다시 장난감으로 태어나는 게 효율적이란다.
◆작품마다 담긴 사연… “장난감 재활용으로 환경도 보호하고 창의성도 키울 수 있어”
교실 한쪽에는 분해된 플라스틱 부품들이 색깔별로 분류돼 있었다. 진씨 등은 바구니에 부품들을 담아와 장난감 제작을 시작했다. ‘시시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려나’했던 우려와 달리 어른들은 다양한 모양의 부품을 이리저리 대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마음에 드는 조각을 찾으려 부품 상자를 몇 차례나 왔다 갔다 하기도 했다. 그렇게 엄선한 재료들을 글루건으로 이어 붙이니 그들만의 ‘포키’들이 태어났다.
작품마다 담긴 사연도 제각각이었다. 사업을 하는 김신애(48)씨는 ‘쿠킹머신’을 만들었다. 김씨가 “다이얼을 맞추고 버튼을 탁탁 누르면 알아서 요리가 만들어져 나온다. 빨간 부분은 와인셀러다. 집에 가서 힘들게 요리할 필요가 없다”며 “사실 나한테 필요한 물건이다. 이런 게 하나 있으면 사업 아이템으로 너무 좋겠다”고 말하자 주변에서 “맞다”며 맞장구를 쳤다.
김신애씨가 만든 ‘쿠킹머신’
장기숙씨는 ‘빨간 심장의 소리를 들어보세요’라는 작품을 소개하며 “어머니에게 혼난 아이의 마음이 빨개졌다. 아이가 빨간 마음을 보여주며 자신을 이해해달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씨는 수업이 끝난 후에도 장난감의 한쪽 팔을 마저 붙여주고 싶다며 부품 상자를 뒤적거렸다.
장기숙씨가 만든 ‘빨간 심장의 소리를 들어보세요’
색동어머니회의 회장인 황정순(56)씨는 ‘이야기 창조기’를 만들었다. 그는 “힘들고 외로울 때 이걸 ‘샥’ 돌리면 이야기가 창조돼 나온다”며 “오늘은 도둑 이야기, 내일은 개구리, 모레는 마녀의 이야기가 나오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황씨는 그러면서 “오늘 교육받은 내용들을 바탕으로 어린이집, 유치원이나 소외받는 어르신들이 있는 곳에 찾아가 장난감 재활용 교육을 할 생각”이라며 들떠했다.
황정순씨가 만든 ‘이야기 창조기’.
신 교사는 “아이들이 만드는 작품을 보면 어느 하나 똑같은 게 없다. 수천개 자동차가 다 다른 모양새에 다른 이야기가 있다”며 “환경도 보존하고 아이들의 창의성도 키울 수 있는 ‘장난감 학교’ 수업처럼 조그만 노력이 모여 우리의 생활이 조금씩 변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