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드십’, ‘자연흡기’, ‘640마력’. 상상만 해도 짜릿한 조합이다. 이 3가지 패를 마음껏 쥐고 흔들 하루가 찾아왔다. 람보르기니 우라칸 에보 서킷 시승이다. 지난 2014년 최초의 우라칸 탄생 이후 약 5년 만에 등장한 ‘신상’이다. 다소 두렵기도 하지만 이날 람보르기니를 향한 나의 모든 걱정은 기우로 날아갔다. 운전이 즐거운 수퍼카, 우라칸 에보를 소개한다.
글 강준기 기자
사진 오토모빌리 람보르기니, 강준기

“부아아아아아앙”. 이른 아침, 안개 낀 강원도 인제 스피디움 주변 산길이 절절 끓는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새벽부터 출발해 다소 피곤한 상태였지만, 소리 하나로 모든 감각이 쭈뼛 섰다. 패독 앞에 도착하니 이번엔 눈이 휘둥그레졌다. 펄럭이는 람보르기니 깃발 속 듬직한 ‘막내형’ 우루스 2대가 마중을 나왔고, 그 뒤로 형형색색 우라칸 에보들이 줄지어 도열했다.

‘1만4,022대.’ 우라칸의 전신, 가야르도의 누적 판매대수다. 2003년, 가야르도는 무르시엘라고보다 작은 체격 뽐내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형님’들이 줄기차게 얹던 V12 가솔린 엔진 대신, V10 심장 얹어 6단 변속기와 맞물렸고 1.5t(톤) 남짓의 가벼운 몸무게로 ‘하극상’을 일으킨 주역이다. 이후 스파이더 등 다양한 가지치기 모델이 나오며 우라칸에게 바통을 넘겼다.
우라칸은 스페인어로 ‘허리케인’을 뜻한다. 2세대 아우디 R8 플랫폼을 밑바탕 삼아 V10 5.2L 가솔린 자연흡기 엔진을 얹었고, 상시 사륜구동 시스템과 맞물려 최고출력 610마력을 뿜어냈다. 특히 2017년에 등장한 ‘화끈이’ 버전인 우라칸 퍼포만테는 악명 높은 독일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를 6분47.3초에 주파하며 당대 가장 빠른 수퍼카로 이름을 올린 바 있다.
공기역학에 초점 맞춘 외모


오늘 만난 우라칸 에보는 한층 숙성된 매력을 뽐낸다. 먼저 외모 소개부터. 다소 매끈한 모습의 기존과 달리 한층 과격하다. 새로운 앞 범퍼와 스플리터를 통해 공력 성능을 높였고, 뒤쪽 에어 인테이크도 키웠다. 차체 길이와 너비, 높이는 각각 4,520×1,933×1,165㎜. 이전보다 60㎜ 길고 7㎜ 넓다. 높이는 1,165㎜로 성인 남성 허리춤에도 못 미치는 납작한 크기다.

압권은 뒷모습. 엔진룸이 보이게끔 투명 창을 입히고 리어 스포일러를 더했다. 또한, 램프 아래에 벌집 패턴을 빼곡히 채우고 ‘Lamborghini’ 엠블럼도 아래로 이사했다. 특히 범퍼 양 끝단에 있던 머플러는 번호판 양쪽으로 치켜 올리면서, 아래에 커다란 디퓨저를 채웠다. 람보르기니에 따르면, 이전 세대보다 공기역학 성능이 무려 5배나 올라갔다. 디자인의 힘이다.
차체 컬러는 무려 40가지를 마련했다. 5개의 일반 솔리드 컬러, 5개의 메탈릭 컬러, 13개의 펄 들어간 컬러, 11개의 매트 컬러, 6개의 스페셜 메탈릭 컬러로 이뤘다. 이렇게 다양한 색상을 제공하는 제조사가 또 있을까? 이 가운데 람보르기니의 새로운 시그니처 컬러인 ‘아란치오 산토(Arancio Xanto)’가 단연 눈에 띈다. 레드에 가까운 채도 높은 주황빛 색상이다.

신발도 4가지나 준비했다. 중심은 20인치 단조 휠로, 꽃잎처럼 쭉쭉 뻗은 스포크가 인상적이다. 컬러도 다양하다. 실버를 기본으로 유광 블랙 또는 무광 블랙 등으로 칠할 수 있다. 또한, 브레이크 캘리퍼는 실버나 블랙, 옐로우, 오렌지, 그린, 레드, 블루 등 총 8가지 컬러 가운데 입맛 따라 고를 수 있다. 눈이 즐거운 수퍼카, 우라칸 에보의 또 다른 핵심이다.


이런 겉모습도 예고편에 불과하다. 실내는 몸을 욱여넣는 과정부터 남다르다. “흡…” 방심한 뱃살을 있는 힘껏 당겨, 엉덩이를 걸치고 왼다리부터 넣었다. 바닥과 차체 사이가 손바닥 한 뼘도 채 안 된다. “그래, 투우소가 친절하면 이상하지.” 그러나 일단 시트에 앉으면 기대 이상 쾌적하다. 앞 유리보다 옆 창문 높이가 낮고 쪽 창문도 시원스레 트인 까닭이다.
람보르기니는 시동 거는 과정부터 특별하다. 센터페시아 아래 빨간 뚜껑을 찾으면 된다. 전투기 스위치 다루듯, 위로 젖혀 스타트 버튼을 꾹 눌러야 한다. 그 위론, 새로운 8.4인치 세로형 디스플레이를 마련해 눈길을 끈다. 공조장치와 오디오, 내비게이션 등을 스마트폰처럼 터치로 주무를 수 있다. 또한, 알칸타라 또는 가죽을 조합해 총 8가지 인테리어 중 고를 수 있다.
드리프트가 이렇게 쉬울 줄이야

안팎 디자인 감상을 끝내고 운전대를 잡았다. 이날 시승은 짐카나와 트랙 시승, 두 가지로 나눴다. 내가 속한 B조는 짐카나부터 시작했다. 아스팔트 위에 여러 개의 파일런을 세우고 그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가는 코스다. 통상 짐카나의 경우 안전상의 이유로 전자장비를 해제하지 않지만, 이날 람보르기니는 장비를 끄라고 유도했다. 심지어 바닥에 물도 흥건히뿌렸다.

의도는 분명했다. 똑똑한 조수들의 도움으로 ‘예쁜 궤적’ 그리는 게 아닌, 차의 한계 상황을 만들어 기본기를 느껴보라는 속셈이다. 우선, 스티어링 휠 아래쪽 주행모드 셀렉터를 눌러 스포츠 모드에 놓고 모든 전자장비는 off로 바꿨다. 참고로 우라칸 에보는 V10 5.2L 가솔린 자연흡기 엔진 얹고 이전보다 30마력 높은 최고출력 640마력을 뿜고 AWD를 짝지었다.
통상 바닥이 미끄러운 구간에서 빠르게 선회할 경우, 흐르는 꽁무니를 제어하느라 진땀 빼는 상황이 많다. 이 때, 전자장비가 개입해 슬립을 억제한다. 그러나 우라칸 에보는 토크 벡터링 시스템과 연계한 사륜 조향장치로 미끄러짐을 어느 정도 허용한다. 즉, 약간의 슬립 앵글을 만들어준다. 덕분에 운전자는 작은 카운터 스티어링 만으로 드리프트를 손쉽게 할 수 있다.

처음엔 이 같은 움직임에 당황해서 가속 페달에서 발을 뗐지만, 익숙해지니 가속 페달 밟는 게 신이 난다. 일부러 오버스티어를 만들고 각도를 유지해주니, 코너에서 페달을 마음껏 짓이겨도 매끄럽게 드리프트할 수 있다. 특히 상시 사륜구동 시스템은 대부분 구동력을 뒷바퀴로 보내다가, 선회 시 앞바퀴로 빠르게 옮긴다. 덕분에 믿을 수 없는 탈출 속도를 만들어낸다.

주행모드는 스트라다와 스포츠, 코르사 등 3가지. 재밌는 건, 코르사 모드에선 뒷바퀴가 전혀 흐르지 않는다. 오롯이 최적의 랩타임을 내도록 접지력을 최대한 높인다. 스트라다 모드에선 배기 사운드를 줄이고 댐퍼를 부드럽게 매만져 ‘착한 황소’로 빙의한다. 리프팅 기능도 갖춰 방지턱도 두렵지 않다. 이처럼 우라칸 에보는 주행 모드에 따른 성격 변화가 무척 뚜렷하다.
거대한 타이어를 짓누르는 섀시 성능

이어진 서킷 주행. 스파이더와 쿠페를 번갈아 타며 가진 패를 하나씩 엿봤다. 이번 우라칸 에보의 핵심은 이른바 ‘LDVI’(Lamborghini Dinamica Veicolo Intergrata)다. 쉽게 말해 ‘똑똑이’ 통합 주행제어 시스템이다. 가령, 스티어링 휠과 브레이크, 스로틀, 기어변속, 주행모드 등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며, 운전자 의도를 귀신 같이 알아채 ‘긴장상태’를 유지한다.
특히 8,500rpm까지 맹렬히 솟구치는 V형 10기통 자연흡기 엔진은 그 어떤 스포츠카와 비교할 수 없는 짜릿한 사운드를 전한다. 또한, 고회전까지 힘을 부풀려가는 맛은 터보 엔진 쓰는 ‘라이벌’ 페라리 488 GTB와 사뭇 다른 감각이다. 여기에 변속할 때마다 기관총 쏘듯 울려대는 악다구니에, 무전기로 들리는 인스트럭터의 지시사항은 슬그머니 묻혔다.

인제 스피디움은 고저차가 크고 짧은 코너가 줄지어 자리했다. 따라서 작고 다부진 차일수록 날렵한 움직임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우라칸 에보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트랙을 지배했다. 가령, 사륜 조향 시스템은 시속 70㎞ 이하에서 뒷바퀴를 앞바퀴와 반대 방향으로 최대 5°까지 비틀어 민첩성을 높이고, 그 이상 속도에선 같은 방향으로 틀어 안정감을 키운다.

또한, 네 발을 노면에 꾹꾹 짓누르며 달리는 모습이 유독 흥미롭다. 코너 진입속도를 높여도 어지간해선 타이어의 비명 소리를 듣기 힘들다. 우라칸 퍼포만테보다 다운포스를 높인 결과다. 표준 장비인 카본-세라믹 브레이크는 10랩 이상 달려도 일정한 답력을 유지해 만족스러웠다. 순수 기계장치가 주는 까마득한 한계와 비현실적 속도에 이날 내 간은 배 밖으로 나왔다.
우라칸 에보. 출력과 랩타임 등 ‘스펙 싸움’으로 번진 아귀다툼 속에, 람보르기니가 겨눈 과녁은 달랐다. 선택된 소수만 다룰 수 있는 수퍼카를 넘어,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수퍼카로 진화했다. 한편, 우라칸 에보의 국내 판매가격은 3억4,500만 원부터 시작하며, 고객 인도는 올 4분기 중 시작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