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재해석 새로운 한지 제조 도전.. 이젠 특허만 12개죠" [마이 라이프]

제지술은 삼국시대에 전해졌는데 한지의 주원료인 토종 참닥나무가 많이 자생하는 괴산, 충주, 제천, 단양이 자연스럽게 한지의 주생산지가 됐다. ‘청풍명월’ 고장에서 생산된 한지라는 의미로 ‘청풍지’로 불렸는데, 왕실이나 중국 등지에서 최고의 품질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덕분에 이 지역은 활발한 교역이 이뤄졌다. 조선시대 새로운 교역로가 된 조령을 지나던 상인들은 지장군이 소원을 모두 이뤄준다고 믿고 한지에 소원을 써서 지장군 석상에 달고 동전을 던지며 합장하기 시작했다. 닥나무 수확기나 종이를 뜨기 시작할 때도 지장군 석상 앞에서 제례와 풍년 기원 행사를 열었단다.
올해 한국관광공사 세종충북지사의 강소형 잠재관광지로 선정된 한지체험박물관 안으로 들어서니 마당의 고려지장군 석상을 쏙 빼닮은 남자가 푸근한 미소로 기자를 반긴다. 초대 관장을 맡아 박물관을 이끌고 있는 충북도 무형문화재 제17호 안치용(60) 한지장이다. 그는 한지의 우수성부터 장황하게 설명한다. “한지는 그 기술이 독보적이죠. 우선 이곳의 닥나무가 아주 뛰어나요. 닥나무는 열대지방에서 자라면 덩치만 커져서 물러요. 사계절이 뚜렷한 곳에서는 아주 야무지고 단단하게 자라는데 괴산은 사계절이 뚜렷해 섬유질이 아주 긴 닥나무가 생산된답니다. 중국도 닥나무가 자라지만 섬유질이 약해요. 대신 풀이나 볏짚, 대나무를 삭혀서 종이를 만드는데 한지보다 품질이 크게 떨어집니다. 일본 닥나무가 우리와 비슷하지만 석회질 토양에서 자라 한지처럼 질기고 오래가지 않죠.”

전세계 미술품 복원 시장의 99.9%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일본의 ‘화지’다. 하지만 루브르 박물관 복원팀이 2017년 막시밀리앙 2세 책상 복원에 처음으로 한지를 사용하면서부터 일본의 시장 독점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한지와 일본 화지는 생김새가 매우 흡사하지만 재질이 확연하게 다르다는 사실을 루브르 박물관 복원팀에 알게 된 것이다. 이후 로스차일드 컬렉션 복원, 9세기 코란 복원, 20세기 초 반출됐던 병풍 복원에 한지가 일본 화지를 제치고 선정되면서 한지의 가치가 입증됐다.

안 관장에게 한지는 ‘가업’이나 마찬가지다. 조부 때부터 3대째 한지를 만들고 있어서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전통 한지를 만드는 일은 그의 일상이었다. “사탕이나 아이스크림을 먹는 재미에 한지 관련 일을 도왔어요. 부친 옆에서 종이를 고르거나 재활용 종이를 삶는 물통에 넣는 일이였죠. 한지 직공이던 부친을 따라 원주, 충주, 제천 일대를 오가며 자랐어요. 그러다 23살 때 부친의 공장 운영을 직접 맡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 거죠”.
한때 공장 직원이 24명이나 돼 팀을 짜 축구경기를 할 정도로 한지산업은 호황을 누렸다. 마을 사람들 중 닥나무 껍질 한번 벗겨보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로 마을 전체가 한지 제작에 매달렸단다. 과거 한옥은 문, 벽, 장판에 모두 한지를 사용했고 추석이 되면 많은 집들이 창호를 새로 발랐다. 추석 때면 한지를 옆에 끼고 집집마다 다니면서 한지를 팔던 이가 있을 정도로 한지의 수요가 풍부했다. 하지만 88 서울올림픽 이후 한지 산업은 순식간에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농촌주택 개량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유리창이 창호를 대체했고 새로운 벽지와 화학 장판까지 등장하면서 더 이상 한지는 필요 없게 됐다.
2000년대 초반 웰빙붐이 일면서 친환경 한지 도배지가 활성화될 듯했지만 업자들이 저렴한 일본, 태국, 베트남 닥을 수입해 대량으로 한지를 생산하면서 전통한지 인기는 다시 시들해지고 말았다. 결국 직원들이 하나둘 떠나면서 1984년쯤에는 안 관장 혼자만 남게 됐다. 설상가상 보일러 폭발 사고와 보관 중이던 한지를 모두 도둑맞으면서 공장을 닫을 위기까지 몰렸다.
하지만 안 관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한지 개발에 매진했고, 결국 국내 최초로 색한지를 개발해 쓰임새를 획기적으로 늘렸다. 사라질 뻔했던 한지 산업을 그가 다시 살린 셈이다. “부친 세대의 한지 공장에서는 전통적인 누런 창호지나 종이만 생산했어요. 글씨나 그림용 화선지만 만들던 시절이었죠. 하지만 저는 뭔가 새로운 한지에 도전하고 싶었어요. 1980년대 후반 거래처이던 인사동 필방 대표의 조언으로 천연물질을 넣어 만든 색한지를 만들어 봤답니다. 한지와 색종이를 활용한 공예가 막 태동하던 시기였는데 색한지가 등장하니 큰 인기를 끌게 된 것이죠.”
하지만 색한지 개발은 쉽지 않았다. ‘레시피’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물을 들여도 색이 너무 연하거나 닥과 천연물감의 비율이 정확하지 않아 얼룩덜룩하기 일쑤였다. 수많은 실패를 거듭한 끝에 닥을 조금씩 삶아 물감과 닥을 믹서기에 넣어 같이 돌려주면서 일정한 색을 입히는 자신만의 기법을 만들어냈다. “처음에는 단색으로 시작해 6개 정도의 색한지를 만들었어요. 레시피를 조금씩 달리하니 다양한 색이 나오면서 12개, 20개로 계속 늘더군요. 지금까지 다양한 농도와 파스텔톤까지 구현해서 300여개의 색한지를 개발했답니다”.

옛 신풍분교 자리에 지은 한지체험박물관은 개관 이후 매년 1만명 정도가 찾는다. 한지의 기원과 역사가 정리돼 있고 전통 한지의 제조과정 등을 볼 수 있다. 한지로 만든 다양한 생활용품도 만나고 전통 한지 뜨기, 한지 자연염색 등 다양한 한지 체험도 할 수 있어 가족나들이 장소로 인기다.
안 관장은 나름대로 한지장으로 성공을 거뒀지만 앞으로가 큰 걱정이다. 전통 한지 기술을 이어받을 후계자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인력과 자금만 있으면 전통을 잇도록 하는 것이 어렵지 않겠죠. 하지만 사실 한지는 큰돈이 안 돼요. 여건도 안 맞고 한지를 팔아서 넉넉하게 먹고살 수 없으니까 전통 한지를 배우겠다고 선뜻 나서는 사람이 전혀 없어요. 동생 등 가족끼리 한지를 만들고 있는데 제가 늦장가를 가서 이제 딸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랍니다. 자식에게 물려주기도 쉽지 않네요”.
매년 사비 2000만∼3000만원을 들여 한지 제품을 전시하고 세미나를 진행하는 한지축제를 7년 동안 열었지만 중단한 지 3년째다. 외부의 자금 지원이 전혀 없어서 혼자 이끌어 가려 했지만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번듯한 전수관도 하나 마련하고 싶지만 건립비용이 6억∼7억원 정도 들기에 쉽지 않다. “한지축제는 우리의 전통 한지를 널리 알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에요. 조만간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번듯한 전수관이라도 있으면 한지를 배우려는 이들이 몇 명이라도 올 텐데….” 한지체험박물관 주변에는 안 관장이 평생 모은 한지 관련 유물들이 곳곳에 쌓여있다. 박물관을 3개는 열 정도의 분량이란다. 한지 개발에 평생을 바쳤으니 이제 그 꿈이 좋은 결실을 맺기를 기대해 본다.
괴산=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1959년 충북 제천 출생 △충주방송통신고, 중원대 한방바이오학과 중퇴 △1981년 신풍한지 경영권 인수 △1984년 황토벽지 등 기능성 한지 16종 개발 △1999년 충북공예대전 한자부문 입상(입체문양지, 액자) △2000년 조령민속공예촌 한지전시장 개관 △2001년 입체문양지 본격 생산 △2003년 물방울지, 신서란지, 입체문양지 특허출원 △2004년 특수공법 흡음 한지 개발 △2006년 신풍전통한지마을 대표 △2007년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17호 한지장 기능자 선정 △2013년 괴산 한지체험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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