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간 아무나 만지고, 물 안 주고..'동물카페'라는 이름의 감옥

김기범 기자 2019. 9. 6.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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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전국 야생동물카페 실태 보고서

한 야생동물카페에서 어린이가 탁자에 올라온 라쿤에게 개 사료를 준 뒤 쓰다듬고 있다. 라쿤은 광견병의 숙주여서 함부로 만지거나 하면 전염병에 걸릴 위험이 있다. 어웨어 제공

2년 새 2배 가까이 늘어 64곳으로

가장 많이 사육하는 동물은 ‘라쿤’

소변량·횟수 줄이려 제한적 급수

먹이주기 체험으로 대다수 ‘비만’

스트레스에 ‘자폐 증상’ 보이기도

인수공통전염병 위험 대비는 전무

매일 10~12시간 동안의 강제적인 신체 접촉, 소변 보는 횟수를 줄이기 위한 제한적 급수로 상시적인 갈증 상태, 질병을 앓거나 부상을 입어도 대부분 그대로 방치.

언뜻 들으면 나치나 구소련의 강제수용소가 떠오르는 이런 내용은 다수의 야생동물카페에서 사육되는 동물들이 겪고 있는 일상적인 모습이다. 지난 3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의 이형주 대표가 방문한 서울 마포구의 한 야생동물카페에서는 외래종인 라쿤을 천장도 없는 옥상의 철창에 직사광선과 비, 바람도 피할 수 없는 상태로 가둬놓은 모습도 목격됐다. 이 대표는 “임신한 라쿤 암컷 5마리를 좁은 케이지 하나에 몰아넣고 사육 중이었다”며 “라쿤들이 안전장치도 없는 옥상에 전시돼 있어 탈출할 경우 추락의 위험도 있어 보였다”고 지적했다.

어웨어와 수의사 단체 휴메인벳이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공개한 ‘2019 전국 야생동물카페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에서 운영되는 야생동물카페 숫자는 2017년 35곳에서 2배 가까운 64곳으로 증가했다. 특히 서울 지역은 2017년 10곳에서 18곳으로 가장 많이 늘어났다. 이 밖에 충청, 경남, 제주 지역에도 새로 야생동물카페가 들어섰다. 두 단체는 지난 6월1일부터 7월31일까지 서울, 인천, 부산, 경기도에 있는 야생동물카페 중 12곳에 대해 1~3회 방문을 통한 실사를 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의 야생동물카페가 가장 많이 사육하는 동물 종은 귀여운 외모로 인해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라쿤’으로, 모두 36곳이 라쿤을 사육, 전시하고 있었다. 실사한 12곳 중 7곳이 라쿤을 전시했다. 또 8곳에서는 영화 <라이온 킹>에 등장해 인기를 얻은 미어캣을 사육, 전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 단체는 기존부터 인기 있었던 동물 외에 야생동물카페들이 제넷고양이, 자칼, 바위너구리 등 새로운 종을 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들 동물의 공격성이나 인수공통전염병을 고려한 조치들은 전무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다수의 야생동물카페가 전시하는 라쿤은 광견병 숙주로서 선진국의 경우 철저한 검역 대상으로 삼는 종이자 생태계 교란종으로서 경계 대상이다. 하지만 야생동물카페들은 무분별하게 라쿤을 도입하고 있다.

라쿤은 북미가 원산인 동물로 미국의 대다수 주에서는 개인 사육을 금지하고 있으며, 개인 사육이 가능한 경우도 법적 허가를 받아야 한다. 라쿤은 외래종으로 침투할 경우 생태계 전체의 균형을 깨트릴 수도 있는 동물이다. 국내에선 아직 라쿤이 야생에서 광범위하게 확인되고 있지는 않지만 도심에서 발견되는 빈도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위생상의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식품접객업으로 신고하고 영업 중인 업체 7곳 중 동물 전시공간을 완전히 분리해야 한다는 규정을 지킨 곳은 하나도 없었다. 식품위생법상 동물이 있는 구역과 사람이 있는 음료 섭취 구역은 완전히 분리되어야 한다. 질병을 앓거나 부상을 입은 동물이 그대로 전시돼 야생동물카페를 찾은 시민들에게 노출되는 경우도 있었다. 한 곳에서는 캥거루과 동물에게 자주 나타나는 염증이 얼굴 부위에 있는 왈라비가 그대로 전시되고, 만지기 체험에까지 이용되는 것이 확인됐다.

대부분 좁은 공간에서 사육되는 데다 사육 편의성만을 고려한 나머지 복지 역시 참담한 수준이었다. 생존에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물을 상시적으로 마실 수 있도록 해 놓은 카페는 5곳뿐이었다. 4곳은 일부 동물에게만 물을 상시적으로 공급했고, 3곳은 방문 실사를 하는 동안 전혀 물을 공급하지 않았다. 동물들의 전시시간은 매일 10~12시간이었다. 대부분 동물들이 은신처도 없이 불특정 다수의 방문객들에게 노출돼 있는 상태였다. 야생동물카페들이 사육 중인 라쿤의 대다수는 먹이주기 체험으로 인해 비만 상태였다. 라쿤들에게 주는 사료는 대부분 라쿤에게 적합하지 않은 개나 고양이 사료였다.

‘정형 행동’을 보이는 동물은 실사 대상 12곳 중 8곳에서 확인됐다. 라쿤과 바위너구리 등이 반복적으로 무의미한 행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흔히 동물의 자폐증이라 불리는 정형 행동은 스트레스로 인해 동물이 지속·반복하는 단순 행동을 말한다. 개나 곰 등 주로 지능이 높은 동물들이 아무 이유나 목적 없이 같은 장소를 왔다갔다 하거나 같은 몸짓을 반복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스트레스로 인해 다른 동물이나 사람을 공격하는 동물들도 확인됐다.

조사 대상 12곳 중 7곳에서 동물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한 곳에서는 지난 5~7월 동안 라쿤 91마리, 미어캣 50마리, 여우 13마리 등이 거래됐다. 이 가운데는 하이에나 등 국제적 멸종위기종으로서 개인 간 거래가 금지된 종도 포함돼 있었다.

이형주 어웨어 대표는 “야생동물카페의 규제를 위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과 동물원 및 수족관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동물원이 아닌 장소에서 야생생물을 전시하는 행위와 무분별한 개인의 야생동물 소유, 판매를 금지하고 동물원은 허가제를 도입해 관리하도록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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