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년 전, 국내 올드카 시장은 이른바 ‘갤로퍼 리스토어’ 열풍으로 뜨거웠다. 중고차를 구입해 원형 그대로 복원하거나 개조를 통해 새로운 갤로퍼를 빚어내는 소비자가 많았다. 밑바탕인 미쓰비시 파제로로 튜닝하는 사례도 많았다. 덩달아 중고차 가격도 성큼 올랐다. 최근엔 다소 시들해진 분위기지만, 후속 모델인 테라칸이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테라칸은 어떤 차?

테라칸은 2001년 2월에 등장한 현대자동차의 보디 온 프레임 방식의 준대형 SUV다. 본래 갤로퍼 2의 후속 차종으로 개발했지만, 더 상급에 자리하는 모델로 나왔다. 이는 쌍용차 렉스턴과 비슷하다. 렉스턴 역시 무쏘의 후속이었지만, 무쏘의 지치지 않는 인기 덕분에 상위 차종으로 등장했다. 즉, 이 당시 국내 중‧대형 SUV 대결구도는 싼타페-무쏘-쏘렌토, 테라칸-렉스턴 등 두 개의 축으로 나눴다.
그러나 테라칸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다. 1996년, 당시 현대정공이 정몽구 회장의 지휘 아래 테라칸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했지만, IMF 금융위기와 기아자동차와의 합병문제 등 정세가 복잡해 출시가 차일피일 미뤄졌다. 1999년, 서울 모터쇼에서 테라칸의 모태인 하이랜드라는 콘셉트카를 선보였지만 소비자의 시선은 혁신적인(?) 싼타페로 쏠렸다. 기존에 없던 모노코크 방식의 SUV인 까닭이다.

그러나 정몽구 회장은 현대정공 시절부터 테라칸의 개발을 맡아왔기에 애착이 남달랐다. 결국 2001년 2월, 현대차의 플래그십 SUV 테라칸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테라칸을 향한 관심은 차가웠다. 가령, 직렬 4기통 2.5L 디젤 엔진은 갤로퍼 때 얹은 엔진을 개량한 버전으로 출력이 낮았다. 상급 트림엔 에쿠스의 V6 3.5L 가솔린 엔진을 더해 이미지를 높였지만 판매는 신통치 않았다. 설상가상 같은 해 등장한 렉스턴은 고급스러운 안팎 디자인과 ‘대한민국 1%’ 슬로건으로 주도권을 움켜쥐었다.

이듬해 현대차는 직렬 4기통 2.9L 디젤 CRDI 엔진을 개발해 테라칸에 얹었다. 최고출력은 150마력으로 ‘동급 최강’이었다. 2.5L 디젤 엔진은 배출가스 규제를 맞추지 못 해 2003년 단종됐고 2.9L 엔진은 개선을 거듭해 최고출력 165마력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 등장한 뉴 렉스턴이 170마력으로 나오며 플래그십 SUV의 출력 경쟁에서 밀리고 말았다.
결국 현대차는 2006년 테라칸의 생산을 중단했다. 대신 북미 전략차종으로 개발한 베라크루즈가 빈자리를 메웠다. 테라칸 단종을 계기로 현대차의 보디 온 프레임 SUV는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췄지만, 2008년 현대차그룹 내 기아 모하비가 등장하며 대를 이었다.

5년 남짓 짧은 생을 끝으로 떠난 테라칸. 최근 리스토어 열풍의 주역으로 올라간 이유가 무엇일까? 비록 출시 당시 소비자의 주목은 받지 못 했지만, 튼튼한 차체와 사륜구동 시스템을 밑바탕 삼아 남다른 험로주행 실력을 갖췄다. 특히 2004년에 등장한 ‘파워플러스’ 모델은 최고출력 174마력을 냈고 배기량에 걸맞은 두둑한 토크를 뿜어냈다. 굴림방식은 파트타임 방식의 4WD와 상시 사륜구동 AWD, 두 가지를 동시에 제공하는 등 ‘오프로더’다운 면모를 갖췄다.
테라칸 리스토어는 갤로퍼와는 사뭇 다르다. 원형 그대로 복원하기보단 오프로드 성능을 더 높여 개조하는 게 대표적이다. 가령, 애프터마켓 쇼크업소버를 넣어 지상고를 높이고 험로전용 MT 타이어를 신기는 튜닝이 대세를 이룬다. 네모반듯한 안팎 디자인과 넉넉한 휠 하우스 덕분에 경쟁차인 렉스턴보다 개조 시 한층 멋스럽다. 구조변경이 가능하기 때문에 부담도 적다. 그야말로 ‘역주행’ 인기인 셈이다.

현재 중고차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테라칸 매물을 검색하면, 2.9L 디젤 모델 기준 주행거리 약 15만 ㎞ 내외의 중고차가 500만 원 안팎의 가격을 갖췄다. 즉, 합리적인 가격으로 오프로드 레저를 즐길 수 있어 인기를 얻고 있다. 저렴한 유지‧보수비용도 매력적이다. 과연 테라칸의 리스토어 열풍은 어디까지 이어질지,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하다.
글 강준기 기자
사진 각 제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