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티콘 '오구'의 시작은 동물의 왕국이었다
“너 잘났다.” 메신저로 날아온 짧은 메시지를 확인했을 때 많은 이가 순간 복잡한 생각에 빠지게 된다. ‘내가 잘생겼나’, ‘화가 났나’와 같은 가벼운 고민은 텍스트만으로 진행한 커뮤니케이션이 주는 오해에서 기인한 현상이다. 의사소통 과정에서 인간의 표정과 몸짓은 다양한 감정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메신저 사용이 일상화돼 상대를 볼 수 없는 최근에는 ‘이모티콘’이 감정 전달자 역할을 대신하는 추세다. <머니S>는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이모티콘 산업을 들여다봤다. 【편집자주】
[감정의 그림말, ‘이모티콘’ 열풍-하] 이모티콘을 만드는 작가 문종범
인생은 ‘마라톤’이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포기하고 싶어지다 반환점을 돌면 새로운 이정표를 마주한다. 인생의 전환점에서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오롯이 본인의 의지에 달렸다.
문종범 작가는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인생의 전환점으로 삼았다. 그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며 손사래를 치다가도 이모티콘 이야기가 나오면 어느새 눈동자를 번뜩였다. ‘오구’(오리너구리의 줄임말) 캐릭터로 이모티콘 창작자 길을 걷게 된 문종범 작가를 직접 만나봤다.

◆‘오구’는 어떻게 탄생했나
서울 마포구 연남동 인근 카페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태블릿으로 쉴 새 없이 그림을 그리는 뒷모습을 보니 영락없는 크리에이터였다. 집보다 카페가 편해 외부작업을 즐긴다는 문 작가의 전공을 묻자 예상외의 답변이 나왔다.
그는 “미술 전공을 크게 나눠 디자인, 순수회화, 조각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저는 조각 분야를 전공했다”며 “도자기 공예를 배워 그릇, 항아리, 생활 소품을 만들었다”고 운을 뗐다.
도예를 전공한 문 작가는 왜 이모티콘에 입문했을까. 이에 문 작가는 “대학 졸업 후 도예에 1년간 매진했지만 제조, 판매, 홍보, 유통까지 모든 과정을 홀로 감당하기 힘들었다”며 “막막했던 시기에 우연히 이모티콘 작가에 관한 기사를 보고 시장성이 좋을 것이라 판단해 한달간 준비한 후 첫 작품을 접수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탄생한 이모티콘이 지금의 문 작가를 있게 한 ‘오구’다. 어릴 때부터 ‘동물의 왕국’을 시청하며 동물에 관심이 많았던 문 작가는 2016년 졸업전시 작품을 통해 오리너구리와 연을 맺었다.
그는 “졸업전시 때 출품한 오리너구리 오일램프의 반응이 좋아서 전구와 보석함도 만들게 됐다”며 “오리너구리 디자인을 콘셉트로 각종 소품을 만들다보니 자연스럽게 캐릭터가 됐고 이모티콘에 활용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문 작가의 이모티콘 입문기는 파란만장하다. 2017년 7월 처음 승인받은 오구 이모티콘 ‘하찮은 오리너구리’가 약 5개월 만에 출시됐고 두번째 상품도 탄탄대로를 달렸다. 문 작가가 이모티콘 창작을 업으로 삼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연달아 상품 출시에 성공하며 얻은 자신감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문 작가는 세번째 오구 이모티콘 출시에 도전했을 때를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매일 8시간씩 수정하며 창작에 전력투구했지만 번번이 탈락의 고배를 마셨고 총 14개 세트가 미승인 상태로 보류됐다.
이쯤 되면 누구라도 포기할 법 하지만 도예를 하며 체득한 인내심이 그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새 상품 출시까지 6개월의 공백이 생긴 순간에도 문 작가는 꾸준히 그림을 그려 15번째 만에 승인을 얻어냈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한 세번째 오구 이모티콘부터 지금의 완성된 형태를 갖출 수 있었다.
문 작가는 “이모티콘 역시 모든 작업을 혼자 한다는 점에서 힘들었다”면서도 “깨지고 다시 만드는 도예의 경험과 다람이 이모티콘을 만든 재수작가의 조언 덕분에 멘탈을 붙잡았다”고 말했다.

◆이모티콘은 또 다른 ‘나’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오구’는 지난해 출시된 세번째 세트부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매일 8시간씩 한달이 걸렸던 작업 속도도 2~3주로 줄어들 만큼 숙련도가 늘어 현재는 10세트의 오구 이모티콘이 판매되고 있다.
문 작가는 지난해 진행된 ‘카카오 이모티콘 어워즈’에서 ‘올해의 베스트 신인상’을 수상하며 인지도를 높였다.
크리에이터로 전업에 성공한 문 작가가 본 이모티콘의 강점은 ‘감정’이다. 이모티콘은 글로 전하기 부족한 감정을 보완해 주는 완충제이자 작가를 표현하는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모티콘은 감정을 표현하는 매개체인 만큼 작가의 성격이나 기분에 따라 부드러움, 두려움, 장난스러움 같은 다양한 표현으로 반영된다”며 “감정이 투영되기 때문에 사용자들이 즐겁게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작업한다”고 설명했다.
미술전공자라면 누구나 도전해볼 수 있다는 점도 이모티콘 작가의 매력이다. 문 작가는 “그림을 좋아하면 이동식 도구를 통해 장소의 제약없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주변 지인들에게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고 일정 수준에 오르면 수익도 보장되므로 그림에 소질이 있다면 도전해볼 만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꾸준함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문 작가는 “웹툰처럼 이모티콘 분야도 급성장하면서 현재는 작가별 수익차가 큰 편”이라며 “게을러지면 도태되기 때문에 강한 정신력으로 중무장해야 롱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강철멘탈 소유자인 문 작가의 목표 또한 꾸준함이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오구에 이어 일정한 간격으로 출시할 캐릭터를 두 개 정도 더 만드는 목표가 있다”며 “캐릭터 인지도를 높여 오구프렌즈 세계관을 형성할 수 있도록 굿즈나 짤막한 웹툰도 그리며 SNS로 팬들과 소통한다. 제 캐릭터를 통해 산업이 더 커져 시장규모 확대에 기여하도록 꾸준히 그리겠다”며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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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성오 기자 cso86@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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