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인이 설계한 수증기 동력장치, 산업혁명 주연이 되다[최형섭의 테크놀로지로 보는 세상]
서기 1세기 기화원리 이용한 구형장치
'아에올리스 공' 설계가 증기기관 시초
1712년 '뉴코멘 엔진' 첫 상업화 이후
와트 기술개발로 산업동력원 자리잡아
'석탄-증기기관' 경제발전 이끌었지만
기후위기 부메랑..고별의 시간 올수도
[서울경제] 물을 가열하면 섭씨 100도 부근에서 끓기 시작해 수증기로 변한다는 사실은 한 번이라도 냄비에 라면을 끓여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수천 년 전 우리 선조들도 이를 몰랐을 리가 없다. 액체 상태의 물 분자들은 비교적 약한 수소결합으로 연결돼 있는데, 온도가 올라가면서 분자들 사이의 거리가 점차 멀어지다가 결국 기체 상태의 수증기가 된다. 그 과정에서 부피가 1,680배 정도 증가한다. 지난 1992년 2월 부산의 한 공장 구내식당에서 대형 압력밥솥이 폭발해 사상자가 여럿 발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압력솥 내부에서 물이 기화(氣化)하며 부피가 크게 증가했고, 부실한 안전장치가 증기의 힘을 이길 수 없게 되자 폭발해버린 것이었다. 유사한 사고는 이전에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와 같은 증기의 힘을 인간의 편의를 위해 이용할 수는 없을까. 이는 인류사의 오랜 질문 중 하나였다.


우선은 연료 문제가 있다. 물을 끓이려면 연료를 때야 하는데 목재 땔감만으로 실용적인 증기기관을 운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나무에 비해 고열량인 연료는 석탄이었다. 석탄은 수백만 년 전 지구상에 번성했던 식물이 땅속 깊이 묻히면서 오랜 기간 미생물에 의해 분해된 후 고온고압의 환경에서 변성한 물질이다. 인류는 땅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검은 물질이 탄소함유량이 매우 높은 효율적인 연료라는 점을 일찌감치 눈치챘다. 지표면 가까이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석탄은 13세기 무렵에 이미 고갈돼 갔고, 이후부터 지하 깊숙한 곳에 묻혀 있는 석탄을 채취하기 위한 기술들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석탄이 묻혀 있을 법한 지역에서 땅을 수직으로 깊게 파 내려간 후 석탄층의 진행 방향을 따라 수평으로 갱도를 넓혀갔다. 광부들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지하 갱도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시달려야만 했다.


뉴커먼의 엔진은 높이가 7m에 가까웠고, 실린더만도 길이 2m에 직경 52㎝인 거대한 기계였다. 엄청난 양의 석탄을 태워 11마력의 출력을 자랑했다. 오늘날 우리가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승용차가 대체로 250~430마력 정도의 출력을 가졌음을 고려할 때 상당히 비효율적인 기계였다. 이는 뉴커먼 엔진이 주기적으로 실린더 내부에 차가운 물을 끼얹어 온도를 낮추는 방식으로 작동했기 때문이었다. 실린더가 한 차례 사이클을 돌 때마다 급격한 온도 변화가 있었고, 그에 따라 막대한 에너지가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 그래서인지 뉴커먼 엔진은 연료를 쉽게 구할 수 있는 탄광지대 밖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다시 말하면, 18세기 초까지 증기기관은 특정 지역에 묶인 고정된 동력원에 머물렀고, 따라서 영향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증기기관이 대규모 산업의 동력원이라는 지위에 오르기 위해서는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필요가 있었다.
뉴커먼 엔진이 나오고 반세기 정도 지났을 때 증기기관의 효율성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등장했다. 1765년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와트는 주실린더 외부에 별도의 응축기를 설치해 증기기관이 작동하는 동안 뜨거운 증기가 식지 않은 상태로 유지될 수 있게 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이러한 기술적 혁신으로 훨씬 적은 석탄으로 같은 양의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증기기관이 등장하게 됐다. 이는 단순히 기계의 효율성이 제고됐다는 의미만은 아니었다. 강력한 동력원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되자 당연하게도 값싼 노동력을 구할 수 있는 지역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본가들은 와트의 증기기관을 동력원으로 삼아 대도시에 거대한 공장을 설립하기 시작했고, 인클로저 운동으로 경작지를 잃은 농민들은 이렇게 만들어진 공업도시의 노동자로 유입됐다. 우리가 ‘산업혁명’이라고 알고 있는 사회경제적 변동의 시작이었다.
산업혁명 이후 증기기관은 내연기관으로, 주연료는 석탄에서 석유로 바뀌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증기의 힘을 활용하는 테크놀로지는 여전히 우리 곁에 강고하게 남아 있다. 2018년 현재 한국에서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사용하는 에너지원 중 가장 큰 비중은 42%에 달하는 석탄이 차지하고 있다. 18세기의 증기기관과 비교한다면 효율성이 훨씬 좋아졌겠지만, 석탄을 때서 끓인 물이 수증기로 변하며 생기는 힘으로 터빈을 돌린다는 기본적 원리를 그대로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석탄화력발전소는 최근 과도한 탄소배출에 따른 기후변화와 미세먼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신규 발전소 건설이 반대에 부딪혔다. 결국 18세기 이후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경제체제를 구축했던 것이 현재 인류를 위협하는 형국이 된 것이다.
9월21일 기후변화에 따른 인류의 위기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전지구적 기후 파업을 벌이게 된다. 한국에서는 토요일 오후3시 대학로에서 ‘기후위기 비상행동’이 개최될 예정이다. 기후위기 선언에 참여한 한국 지식인·연구자 664인은 현재 한국 정부의 대응이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한참 뒤처져 ‘기후악당국가’를 면치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석탄발전 비중을 오는 2030년까지 36.1%로 낮춘다는 정부 목표는 현재 인류가 맞닥뜨린 기후위기를 타개하기에 태부족이라는 평가다. 이렇듯 한번 우리 사회에 자리 잡은 증기기관 테크놀로지는 주변의 다양한 요소들과 결합해 떼어내기 어려운 상태가 돼버렸다. 지난 250년 동안 석탄·증기기관 복합체는 인류의 복지 향상에 많은 역할을 했지만, 이제 서서히 고별의 시간이 오지 않을까. 2019년이 그 여정의 중대한 분기점이 되기를 희망해본다. /서울과기대 교수, 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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