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에 만나요, 볼보 90 클러스터
새 옷 생각이 간절했다. 편한 복장으로 참석하라는 문자에 습관처럼 꺼내 입은 외투가 얇았다. 제일 편한 옷을 입고 찬 바람을 맞으니 세상에서 가장 불편한 옷으로 바뀌었다. 추운 날 굳이 밖으로 걸어 나온 이유는 볼보를 만나기 위해서다. 북유럽 태생인 볼보가 뛰놀기 좋은 날씨였다. 볼보코리아는 XC90·S90·크로스컨트리 (V90)까지 90 클러스터 세 모델을 한자리에 모았다. 시승은 서울 광화문에서 경기도 가평에 있는 카페까지 왕복 155km 구간에서 진행했다. 우선 여정을 함께할 동반자를 선택할 시간, 가는 길에 크로스컨트리(V90) T5를, 오는 길에는 XC90 D5를 타기로 했다.
여유 있는 출발, 크로스컨트리(V90)
지하주차장에서 빠져나와 시내로 들어섰다. 신호대기 중 뒤를 돌아보니 광활한 실내공간이 펼쳐졌다. XC90 옆에 서 있을 때는 왜소해 보였지만 실내 공간은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을 만큼 여유롭다. 4기통 가솔린 엔진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도시에 활기를 더했다. 가뿐하게 복잡한 서울 시내를 빠져나갔다.
도심을 벗어난 뒤에는 와인딩 코스로 들어섰다. 길쭉한 차체를 좌우로 틀어도 될지 불안함에 잠시 망설였지만, 첫 코너를 돌자마자 불안감이 씻은 듯 사라졌다. 코너를 낮고 안정적인 자세로 돌아나간다. 네 바퀴가 적절한 트랙션으로 안정적인 코너링을 완성하는 동안 시트는 불쾌한 쏠림을 잘 잡아준다.
볼보 시트는 앉을 때마다 큰 만족을 준다. 멋스러운 디자인 속에 기특할 정도로 안락한 감각이 담겼다. 스포츠카에 얹은 버킷 시트처럼 옆구리를 붙잡으면서도 그 힘이 과하지 않아 마음이 놓인다. 볼보가 운전자와의 신뢰를 쌓아가는 지점 중 하나다. 두께가 얇아서 실내 공간에 시각적· 물리적 여유도 만들어 준다.
굽이진 길에서 넘은 과속방지턱만 수십 개. 척척 속도를 집어삼키는 브레이크가 큰 도움이 되었다. 성능을 알아보기에는 좋은 길이지만 동승자가 조금 걱정됐다. 조수석으로 고개를 돌려 안색을 살피니 애매한 웃음으로 답한다. 그 표정을 해설하자면 ‘충격을 흡수한 뒤 느낌이 불편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굳이 웃으며 반길 정도는 아니다’ 정도.
크로스컨트리 (V90)는 넉넉하고 여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약속한다. 천장 높이를 특별히 중시하는 편이 아니라면 SUV를 대신하는 선택지로 고려해볼 만하다. 적절한 지상고 덕에 몸놀림이 가볍고 경쾌해서 운전 재미도 좋다. 금요일 오전, 한발 앞서 주말의 여유를 즐길 파트너로는 이만한 차가 없다.
오후의 편안함, XC90
돌아오는 길에는 탑승객이 더 있었다. 손수 꾸민 화분 두 개다. 뒷좌석에 나란히 앉은 화분이 혹여 쓰러질까 외투로 겉을 싸매고 안전벨트도 채웠다. 토크가 강력한 볼보의 플래그쉽 90 클러스터를 한자리에서 만났다. 여유로운 금요일을 함께 만끽했다. 디젤 모델이라 크게 흔들릴까 걱정이 앞섰다.
기우였다. 과속방지턱을 세 개쯤 넘었나. 화분 걱정은 온데간데없고 속도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높은 차체 때문인지 크로스컨트리(V90)보다 출렁거리지만, 주행감이 거칠지는 않았다. 가속페달을 거칠게 다뤄도 디젤 엔진 특유의 그르렁거리는 소리도 불쾌할 정도로 커지지 않았다. 시속 100km를 한참 넘어도 마찬가지다. 묵묵히 갈 길을 간다. 크로스컨트리(V90)가 몸에 딱 알맞은 편안함을 줬다면, XC90은 더 큰 여유로 탑승자를 품는다.
하루에 볼보 두 대를 몰았다. 어릴 적 엄마가 챙겨주던 ‘씹어먹는 영양제’가 떠올랐다. 단맛과 영양을 동시에 챙겨주는 즐거운 존재. 물론 그 당시엔 몸에 얼마나 유익한지가 중요하진 않았다. 영양성분 표기는 그저 안전한 일탈을 의미했다. 몰래 몇 개 더 까서 먹는다고 해도 부모님에게 혼날 걱정 없었다. 볼보가 주는 즐거움도 이와 같다. 운전자가 욕심을 조금 내더라도 늘 안전하게 품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여유로운 토요일 아침에 몰고 싶은 차다.
어느새 시승차 반납장소에 도착했다. 금요일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졌다. 갑갑한 서울 시내 정체구간에서도 여유로운 마음으로 달려왔다. 운전하는 모든 순간이 휴식과 치유의 과정 같기도 했다. 차를 세우고 뒷좌석을 확인했다. 안전띠를 풀고, 화분을 둘둘 감싼 옷을 벗겨냈다. 작은 돌 하나 흘러내리지 않았다.
글 박강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