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정권 사전 검열 시대.. 자포자기가 만든 극단의 실험작 [한국영화 100년]
“당시에 사람들은 영화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모두들 스포츠에만 관심이 많았습니다. 영화감독은 혼자서 죽어 버렸습니다.”

영화 속에서 영화감독의 유품을 챙긴 절름발이 청년 동철은 구걸을 하고 넝마를 주우며 사회 밑바닥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아름다운 여대생 혜영(이보희)의 뒤를 쫓게 되고, 그녀를 납치해 결혼할 망상까지 꾸게 된다. 그런 가운데 택시기사 육덕(이희성)을 만난다. 육덕은 성품은 착하지만 머리가 약간 모자라 외톨이가 된 청년이다. 두 사람은 혜영을 납치할 계획을 세우지만 오히려 혜영에게 망신만 당한다. 게다가 알고 보니 혜영은 부잣집 대학생인 척 꾸미고 다닐 뿐인 청량리 사창가의 창녀였다. 그래도 혜영은 할 일 없는 그들을 위해 사창가의 삐끼 일자리도 마련해 준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 도우며 새로운 일상과 미래를 꿈꾼다.
사실 ‘바보선언’은 줄거리를 요약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는 영화다. 별로 대사가 없는 스토리텔링은 느슨하고, 연기는 의도적으로 과장돼 있으며, 영화 내내 풍자와 조롱이 이어진다. 마치 찰리 채플린의 슬랩스틱코미디를 보는 것처럼 고속촬영 장면 또한 군데군데 끼어든다. 팬터마임과 마당극의 형식을 차용하기도 하고 전자오락 효과음이나 판소리 등 사운드 효과 또한 맥락 없이 이어진다. 한국영상자료원이 펴낸 ‘한국영화사 연구총서’ 중 2권인 ‘한국영화사 공부: 1980∼1997’에서는 “‘바보선언’은 지금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여전히 독특한 영화”라고 전제한 뒤, 이렇게 정리한다.
“이장호 감독은 당대 한국영화에서 그 맥락을 찾아볼 수 없을 만치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바보선언’을 내놓기도 했다. 섹스에는 관대했지만 현실 그 자체를 드러내는 것은 금기시한 군사정권에 의해, 자포자기의 태도가 더 큰 저항을 만들어 낸 이채로운 결과를 ‘바보선언’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장호 감독이 그렇게 되기 전, ‘별들의 고향’(1974)으로 당대 최고의 흥행감독으로 떠올랐던 그의 작가적 전환점이라 부를 만한 ‘바람 불어 좋은 날’(1980)을 잠시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바람 불어 좋은 날’은 당시 한국영화계의 사회 비판적 리얼리즘 대표작으로, 한국영화의 현실 인식이란 측면에서 후배 감독들에게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앞서 등장한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1975)과 더불어 한국영화가 억압적인 시대상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만 결정적인 차이점이라면 ‘바보들의 행진’은 연일 휴학이 이어지고 있는 황량한 캠퍼스의 대학생들이 주인공이고, ‘바람 불어 좋은 날’은 이제 막 서울로 올라와 어렵사리 일자리를 구한 시골 청년들이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이장호 감독은 1970년대 후반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겪고 있는 서울을 배경으로 중국집 배달원 덕배(안성기), 이발소 견습생 춘식(이영호), 여관 종업원 길남(김성찬)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 경제개발의 이면에서 빈곤과 소외가 공존했던 현실을 날카롭게 포착했다.

그런 점에서 ‘바보선언’의 두 주인공 동철과 육덕도 얼핏 보아 ‘바람 불어 좋은 날’의 젊은 주인공들이 다시 등장한 것처럼 보이지만, ‘바보선언’은 더 멀리 나아간다. ‘바람 불어 좋은 날’이 당시 시대상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서울이란 각박한 도시에서 꿈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희로애락을 담아내고자 했다면, ‘바보선언’은 도입부의 그 단호한 자살처럼 아무런 희망도 찾아볼 수 없다. 이에 대해 ‘한국영화 전복의 감독 15인’을 쓴 영화평론가 김수남은 “‘바람 불어 좋은 날’의 주체적 인간관은 ‘바보선언’에 이르러서 민중미학적 진보적 리얼리즘으로 성숙해 영화 형식미 자체도 급진전한다”고 보았다. 어쩔 수 없었던 그 자포자기의 미학이 사실은 그를 더 진화시켰던 것이다. ‘비극적인 해학’이라는 일견 모순된 표현이 가능한 당대 유일한 한국영화였다고나 할까. 그런데 영화가 만들어진 1983년은 바로 KBS가 6월30일부터 11월14일까지 무려 138일에 걸쳐 453시간 45분 동안 생방송으로 이산가족찾기 특별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해이기도 하다. 영화보다 더한 드라마가 극장이 아닌 TV에서 펼쳐지던 때였다. 그처럼 영화다운 영화를 만나기 힘들었던 그때, ‘바보선언’은 1980년대라는 어둠 속에서 한국영화가 여전히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는 증거와도 같은 작품이다.
주성철 씨네21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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