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모의 미술동네 설설>왜.. 코 뭉개지고 머리·몸통 없는 조각상이 많을까


동남亞, 패전국 佛像 목 베는 전통
한국선 아들 출산 속설에 코 훼손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한 기획사가 개최하고 있는 그리스 보물전(6월 5일∼9월 15일)을 다녀왔다. 서양문명의 원천인 기원전 6000년경 그리스의 선사시대로부터 알렉산드로스 대왕(Alexander the Great, BC 356∼BC 323) 시절까지의 그리스 문화와 예술, 신화와 역사, 그리고 삶이 녹아들어 있는 유물들이 새삼 새로웠다. 2년 전 아테네를 가서 일주일을 꼬박 박물관과 유적지만 돌았건만, 여전히 공부하고 생각해 볼 만한 것들이 가득했다. 그러면서 2년 전에 가졌던 의문이 다시 떠올랐다. 왜 조각상들 대부분이 코가 뭉개지거나 머리 또는 몸통만 남았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사실 이런 현상은 그리스나 로마 조각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유럽의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돌아보면 이집트, 수메르나 고대 그리스·로마 조각상, 그리고 동남아시아의 타이,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의 조각 불상들을 만나게 된다. 멀쩡한 것이 없다. 또 어떻게 이 많은 조각상 유물들이 이역만리인 여기까지 왔을까 캐보면 그 원인은 대개 못난 후손들 때문이다. 조상들의 유물조차 내줘야 하는 처지에 몰렸던, 일제강점기 우리네 처지와 다르지 않은 경우다.
조각상이 훼손된 경우 서양은 대부분 팔, 다리가 부서지거나 코가 뭉개져 있고, 아시아의 불상들은 대개 몸통은 없고 머리만 남아 있다. 사람들은 서양인들이 약탈을 위해 목을 쳐 불두만 가져갔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는 일부만 맞고 거의 틀린 이야기다. 중세기 타이, 라오스, 베트남, 미얀마,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는 지역패권을 두고 수백 년 동안 전쟁을 거듭했다. 이때 전쟁에서 이기면 패전국 불상의 목을 쳤다. 부처님의 힘을 빼 가피를 원천봉쇄, 재기할 수 없도록 영원히 복속시키려는 행동이었다. 불교라는 종교적 동질성에도 불구하고 이해가 안 가지만 그들에겐 부처님조차 ‘적국 부처는 적’이었다.
유럽에서는 전쟁에서 이기면 도시를 불사르고 약탈했지만, 동양에서는 불상의 목을 치는 상징적인 행위를 통해 기를 제압하는 인도적(?)인 방법을 썼다. 일제가 우리나라 맥과 정기를 끊는다며 산에 쇠말뚝을 박아 놓은 것과 비슷하다. 따라서 서양 사람들이 반출의 편의를 위해 불두만 잘라간 경우도 있지만, 실상은 적국의 부활을 원천봉쇄하려는 믿음의 실천으로 동남아시아의 불상들은 목이 잘려나간 것이다. 이것이 아시아의 불상이 머리만 남겨진 이유다. 우리나라 불상이나 석상, 장승의 코가 훼손된 것은 이를 떼어 가루를 내 물에 타 마시면 임신이 되고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 때문이다.
통치자들 사이의 권력 투쟁과 사회 혼란 또는 이민족의 침략은 불상, 조각상들에 상처를 남겼다. 고대 이집트에서 조각상은 죽은 후에 영혼이 살 새 몸이었다. 이집트 조각상의 얼굴, 특히 코를 훼손한 것은 부활할 수 없게 완전히 죽인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죽은 이의 가장 중요한 얼굴, 그중 가장 제거가 손쉬운 코가 공격 대상이 된 것이다. 사실 코는 얼굴의 중심에서 사람의 인상을 좌우하는 동시에 숨을 쉬는 기능을 한다. 따라서 코를 부숴 숨을 끊어버린다는 생각 때문에 집중 공략당했다.
사실 이집트에서 미라를 만들고 조각상을 만들어 무덤에 넣었던 것은 초자연적인 힘이 그들을 다시 살아나게 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또 이후에는 부장품을 훔치러 무덤에 들어갔던 도굴꾼이 증거인멸을 목적으로 도굴현장을 목격한 무덤 주인의 조각상이나 초상화를 훼손시켜버린 경우도 많았다. 로마에 편입되자 기독교도들이 파괴했고, 7세기에는 회교국이 되면서 다시 우상숭배라는 이유로 파괴되고, 건축자재인 돌을 대는 ‘채석장’이 되어 수난의 절정을 맞는다.
2001년에는 탈레반이 이교도의 우상숭배라며 바미안 석불을 포탄으로 날려 버렸다. 전쟁과 내란으로 사라져 버린 현실이 새삼 무상하다. 요즘 잘나가는 콧등 센 이들, 그 코 부디 조심하시길.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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