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짜>는 불후의 명작이다. 종종 <…구라다>의 소재로 등장한다. 그 중 한 장면이다.
고니 : 건방지게 대선배님도 몰라뵙고…. 아까 그 일곱 끗 드린 거 칠땡으로 바꾸셨잖아요? 그거….
짝귀 : 자네도 잘하잖아.
고니 : 네 잘하죠, 근데, 지금 이 일곱 끗이 구라다, 이 새X가 지금 이 타임에 나한테 구라를 치고 있다. 이걸 어떻게 아십니까?
짝귀 : 그 사람의 마음을 읽어야지. 화투는 손이 아니라 마음으로 치는 게야.
고니 : 그러니까 그 마음을, 그걸 어떻게 읽죠?
짝귀 : 내도 모르지. ㅎㅎㅎ. 구라칠 때 절대 상대방 눈을 보지 마라.
고니 : 대충 얘기들어서 알고는 있는데, 아귀랑 어떻게 되십니까?
짝귀 : 어~ 취한다. 기술을 쓰다 걸리서 귀가 짤리고~. 기술을 아이 쓰니까네 이기 짤맀나~. 별거 아니야, 니도 곧 이렇게 될끼다.

사이보그라고 놀림받던 어린 시절
어린 시절에는 놀림거리였다. '눈이 왜 저래.' '이상해, 무슨 사이보그 같아.' 깜짝 놀란 시선들과 마주해야했다.
미술 시간도 문제였다. 늘 양쪽 눈 색깔을 다르게 그렸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마찬가지였다. 아버지 브래드의 회고다.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죠. 그런데 의외로 괜찮더라구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씩씩했어요. 오히려 남들과 다르다는 걸 재미있어 하더라구요. 나중에는 점점 자기가 특별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어요."
한 쪽은 갈색, 다른 쪽은 푸른색이다. 확연한 오드 아이(odd eye)다. 의대생들은 홍채 이색증(heterochromia iridum)이라는 어려운 말로 부른다.
지난 2015년이다. '짝눈'과 아내는 유기견 한 마리를 입양했다. 자신과 똑같은 오드아이였다. 보(Bo)라는 이름이었다. 새 식구 덕에 좋은 일도 생겼다. 새로운 일자리다. 디트로이트를 떠나 워싱턴으로 이사했다. 2억 1천만 달러짜리 FA 계약이었다.
이듬 해(2016년) 가족이 또하나 늘었다. 로코(Rocco)라는 친구다. 역시 눈 색깔이 다른 유기견이다. 그 해 두번째 사이영상을 차지했다. 이제 그와 아내는 동물 보호단체의 홍보 모델이 됐다. '다를 뿐이예요. 이상하지 않아요.' 그런 문구가 걸렸다.
어느 순간부터 그랬다. 그의 눈은 캐릭터가 됐다. 2014년, 타이거스는 관중들에게 선물을 나눠줬다. 양쪽 눈이 다른 바블헤드 인형이었다. 그들이 디비전 챔피언이 됐을 때였다. 클럽하우스에서 파티가 열렸다. 샴페인을 쏘는 시끄러운 행사였다. 그의 고글이 화제가 됐다. 양쪽 색깔이 다른 렌즈 때문이다.


투혼의 103구
5회 말이다. 주자 2명이 모였다. 타석에는 카를로스 코레아다. 투수가 클로즈업 되면서 자막 하나가 뜬다. ‘이번 포스트시즌 득점권에서 27타수 1피안타.’ 율(率)을 따지면 0.036이다. 짜도 짜도 이럴 수가 없다. 탁월한 위기관리능력이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후달림이 역력했다. 온 몸은 땀투성이다. 텁수룩한 얼굴에는 피로가 한가득이다. ‘읍, 읍.’ 공 하나 던질 때마다 신음이 터진다. 겨우 겨우 버틸 뿐이다. 투구수는 어느덧 90개를 넘었다. 이제 전력을 써도 95마일이 어렵다.
카운트 2-2. 98번째 공에서 일이 터졌다. 어정쩡한 슬라이더(85마일)였다. 코레아의 배트가 야무지게 돌았다. 3루수가 몸을 날렸다. 소용 없었다. 타구는 날카롭게 빠져나갔다. 1점이 들어와 2-0이 됐다. 미닛메이드 파크는 벌집을 쑤셔놨다. 우주인들의 환호가 밤하늘을 찔렀다.
원정 팀 덕아웃은 심각해졌다. 부랴부랴. 인터폰에 불이 났다. '여기까진가? 하나 더 맞으면 진짜 끝인데.' 그런데 아니다. 감독이 입을 한 번 앙다문다.
서슬이 퍼런 주자는 여전하다. 앞쪽(3루)에 하나, 등 뒤(1루)에 하나다. 관중은 모두 일어섰다. ‘그 때처럼 다시 한번.’ 2년 전 추억을 새기는 플래 카드가 걸렸다. 투수는 이미 임계점을 지났다. 거친 숨으로 남은 것을 쥐어짜고 있다.
카운트 2-2. 85마일 체인지업이 먼쪽에 떨어졌다. 치리노스 배트가 헛돌았다. 천신만고 끝에 5회를 넘겼다. 103번째 공이었다.

코티손 주사, 핼러윈 코스튬
처음 예정은 5차전이었다. 선발 예고까지 됐다. 철저한 루틴은 여기에 맞췄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고질이 도진 것이다. 전날부터 이상했다. 목과 어깨가 심상치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당일 아침에 더 심각해졌다. 팔을 들 수도 없었다. 투구는커녕 옷도 못 입을 정도였다. 아내가 도와줘 간신히 상의를 뀄다.
등판은 취소됐다. 그의 팀은 패했다. 2승 3패로 막판에 몰렸다. 절망과 좌절이 그를 괴롭혔다. 그날 경기 후 마르티네스 감독의 말이다. "우린 여지껏 맥스의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온종일 말 없이 덕아웃에 앉아있었다. 물끄러미 그라운드만 쳐다보고 있더라."
이튿날, 이동일이다. 코티손 치료를 받았다. 염증과 통증 완화를 위한 주사 처방이다. 류현진도 예전에 몇 번 맞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휴스턴행 비행기에는 1등석이 배정됐다. 튼튼한 목받침이 설치된 좌석이었다.

7차전은 30일(현지시간)에 열렸다. 핼로윈 주간이다. 관중석에는 특별한 코스튬이 이목을 끌었다. 왼쪽은 갈색, 오른쪽은 푸른색, 오드 아이다. 흰자위에는 잔뜩 핏발이 섰다. 이글거리는 승부 근성이다.
나중에 애덤 이튼(내셔널스 우익수)이 얘기했다. "맥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린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걸 느꼈다."
상대편 4번 타자(브레그먼)도 비슷했다. “우리 공격은 잘 가다가 어딘가에서 막혔다. 그는 대단했다. 마치 부상을 입고 돌아온 전사(warrior) 같았다. 정말 팔이 빠지도록 던지는 것 같았다.”

시퍼런 멍, 진짜 '오드 아이'가 돼서도 로테이션을 지키다
오른쪽 어깻죽지는 고질이다. 견갑흉부 점액낭염이라는 어려운 진단명이다. 지난 여름에도 고생했다. 올스타전은 스스로 포기했다. (나갔다가는) 팀에 피해를 줄까봐서다. "마치 돌이 들어간 신발을 신고 뛰는 것 같다." 불편함을 그렇게 표현했다.
전전긍긍. 그에게 로테이션은 곧 소명이다. 빼먹지 않으려 몸부림친다. 주변에 좋은 병원, 유명한 의사가 얼마나 많겠나. 첨단 의학은 총동원됐을 거다. 그럼에도 만족은 없다. "구글 검색을 통해 더 좋은 치료법을 찾고 있다." 하루라도 빨리 복귀하려는 조바심 탓이다.
지난 6월이었다. 연습 중에 크게 다쳤다. 공에 맞아 코뼈가 부러진 것이다. 그런데도 고집을 부렸다. 의료 스태프, 감독, 코치가 다 말렸지만 아무도 꺾지 못했다. 이튿날 로테이션을 밀어붙였다. 필리스전에 7이닝 무실점, 10K로 승리투수가 됐다.
그날 그의 얼굴은 가관이었다. (골절된) 코는 퉁퉁부었다. 그리고 오른쪽 눈두덩에는 시뻘건 피멍이 들었다. 평소보다 훨씬 더 심한, 진짜 '오드 아이'가 된 상태였다.

이쯤 되면 명작이 다시 소환돼야 한다. '타짜'를 꼽는 평경장의 대사다. "화투하면 대한민국에 딱 세 명이야. 경상도에 짝귀, 전라도에 아귀, 기카고 전국적으로 나." 그러나 미국에도 (타짜가) 한 명 있다. 바로 워싱턴의 '짝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