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혁의 풀꽃나무이야기] '특징없는 것이 특징'인 오리나무 알아보기

이동혁 풀꽃나무칼럼니스트 2019. 11. 30. 05:00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현장강의에서였습니다. 길에서 만나게 되는 나무를 하나하나 가르쳐주며 나아가던 중 멀리 나무 한 그루가 보였습니다. 앞서가던 수강생들이 발견해 잘 모르겠다 싶은 표정들을 짓고 있기에 무슨 나무인지 곧 물어보겠구나 싶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질문이 들어왔습니다. 이미 곁눈질 레이더를 통해 몇 개 달린 열매를 확인한 저는 정답 발표를 한껏 뜸들이며 변죽이나 울려댔습니다. 현장강의에서 강사보다 앞서 걷는 수강생들은 나름 식물 좀 안다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중급 수준 정도 되는 분들이 그 앞에서 올려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는 건 한눈에 알아보기 어려운 나무라는 뜻입니다. 별다른 특징이 없어 알아보기 어려운 그 나무는 오리나무였습니다.

오리나무는 특징이 없는 게 특징인 나무입니다. 너무나도 평범한 잎과 나무껍질을 가진 데다 유사한 나무가 많아 도감을 펼쳐 봐도 막막한 건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 보니 전문가 소리를 듣는 분들도 꽃이나 열매가 없을 때 잎이나 나무껍질만으로 언뜻 알아보지 못하곤 하는 나무가 오리나무입니다.

저도 한때 그래봐서 잘 압니다. 잘 모르겠다 싶은 나무가 있어 끙끙거리다 보면 오리나무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 일이 잦다 보니 한눈에 알아보기 어려운 나무가 있으면 오리나무부터 떠올리는 습관이 생겼을 정도입니다.



꽃이나 열매가 그나마 좀 단서를 제공하긴 합니다. 하지만 꽃은 보통 3월 말경에 일찍 피는 데다 바람이 중매쟁이가 되어 수정해 주는 꽃이다 보니 볼품이 없어서 놓치기 십상입니다.

열매는 작은 솔방울 모양이라 잘 보이지 않고 비슷한 모양의 열매를 가진 사촌들이 많아 열매만 갖고는 그들과 확실하게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오리나무라는 이름의 유래에는 전해야 할 말이 좀 많습니다. 전부터 우리는 5리(五里)마다 심었다 하여 오리나무로 불리게 됐다는 것으로 알아왔습니다.

안내판이 없었던 옛날에 거리를 나타내기 위해 심은 나무를 이정목(里程木)이라고 했는데 오리나무는 5리(약 2㎞)마다 심어서 거리를 알려주는 이정목으로 심은 나무라는 것입니다. 나무타령이라고 하는 민요에도 ‘십 리 절반 오리나무’라는 구절이 나오기에 그럴듯한 유래담으로 지금까지 전해집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심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별다른 특징이 없어 중급자들도 알아보기 어려운 오리나무를 이정목으로 삼았다는 건 아무래도 좀 이상합니다. 이정목으로 삼을 정도면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특징을 가진 나무여야 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오리마다 심었다고 해서 오리나무라고 한다는 유래담이 맞는 것이라면 옛 선조들은 아마 죄다 나무박사였을 것입니다.

이러한 의구심을 가진 것이 저만은 아닌 모양입니다. 계명대 김종원 교수님은 ‘한국식물생태보감1’이라는 책에서 방대한 분량의 글로 이의를 제기하며 색다른 유래를 제시했습니다.

이정목 개념의 이름은 일제강점기에 오리나무라는 우리 이름을 한자로 차자(借字)해 기록하면서 생겨났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오리나무는 예로부터 탈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한 나무로, 인간의 얼굴을 가리는 탈의 고어가 ‘달’이므로 탈 나무는 곧 달 나무고 얼굴 나무라는 뜻에서 얼 나무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올히남기〉오리남기〉오리나모〉오리나무로 변했다고 하는데, 이 주장은 워낙 타당성이 높아 보여 그대로 인정해도 좋을 듯합니다.

그런데 그 콘텐츠의 내용을 모두 받아들이기는 좀 어렵습니다. 특히 오리나무의 오리가 새의 오리이기도 하다는 주장이 그렇습니다. 오리는 인간의 정신세계(얼)와의 인연이 있는 명칭이라서 그렇다고도 했습니다.

오리나무가 사는 저습지는 야생 오리들의 최고의 서식처가 된다고 하면서 여러 역사적 근거와 형이상학적 사례까지 들어 주장하지만 그건 좀 지나쳐 보입니다.

그리고 오리나무 학명의 속명 Alnus의 첫 발음이 ‘알’이고 영어명 alder의 첫 발음이 ‘올’인데 그것이 새의 날개를 의미하는 동원어이며 우리말 물새의 대표명사 오리의 어근도 올히의 ‘올’이라고 하면서 그것을 오리나무를 신성 재료목으로 선택했다는 주장의 근거로 삼는 것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와 몽골처럼 연관성이 있는 나라간의 단어를 연구해 어원을 찾아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위에서처럼 각 나라 단어의 한 글자 발음이 비슷하다고 해서 그것들이 연관성을 갖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 자의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거기서 더 나아간 주장도 있어 비약이라는 생각까지 듭니다. 우리나라의 식물명은 그렇게 형이상학적이고 심오한 뜻에 의해 지어지지는 않는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오리나무는 저습지에서만 사는 나무처럼 정의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오리나무는 습한 곳이건 건조한 곳이건 관계없이 여러 곳에서 잘 자라는 나무로 봐야 합니다.

습한 곳에 들어와 잘 자라면서 습지를 육지로 천이시키는 몇 안 되는 나무 중 하나다 보니 습지를 좋아하는 나무로 잘못 인식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실제로 오리나무는 저습지가 아닌 산등성이에서도 자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야생 오리가 노는 곳에서 잘 자라는 나무라 해도 그런 이유를 들어 나무의 이름을 짓는 건 우리나라의 식물명 작명에서는 보기 어려운 예가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나라의 오래된 식물명은 생김새, 쓰임새, 자생지 환경, 전설 등에 의해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 대부분입니다. 저습지에서 자라는 나무라면 ‘물’이나 ‘개(또는 갯)’ 같은 것이 이름에 들어가야 자연스럽습니다.

거기서 노는 오리가 좀 있다 해도 그들은 나무와 별개의 관계일 뿐인데 같이 어울려 살기 좋을 것이라는 개인의 추측을 합당한 근거인 양 바로 나무 이름의 유래로 연결 지어 해석하는 것은 또 다른 오류를 범하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오리나무는 탈을 만드는 일 외에 염료나 녹비로 쓰였고, 나막신이나 빗을 제작하는 용도로도 썼다고 합니다. 오리나무의 열매에는 타닌 성분이 많아 예로부터 갈색 물을 들이는 데 썼고, 그래서 물감나무 또는 물갬나무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오리나무와 사촌지간인 물오리나무와 유사한 나무를 전에 물갬나무라 해서 구분하기도 했습니다. 모두 열매가 비슷해 갈색 물을 들이는 재료로 썼기에 이름에 혼동이 있었을 것입니다.

오리나무의 다른 쓰임새 중 눈여겨볼 것이 하나 있습니다. 민가 주변에 심어놓고 가지를 잘게 썰어 논밭에 뿌렸다고 하는 점입니다. 자운영처럼 녹비(綠肥)로 썼다는 말일 것입니다.

그랬다가 화학비료의 등장으로 더 이상 이용하지 않게 되자 논밭이나 민가 주변에 우두커니 서 있게 됐을 것입니다. 가장 최근에 등록된 천연기념물이자 오리나무로는 유일한 천연기념물인 포천 초과리 오리나무도 마을 앞 논 한가운데에 홀로 서 있습니다.

오리나무는 특이하게도 우리나라 왕릉 주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경기도 화성시 융건릉이라든가 서울시 서초구 헌인릉에서도 잘 모르겠다 싶은 나무가 있어 다가가 보면 오리나무입니다.

헌인릉 오리나무림은 2005년에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됐습니다. 오리나무가 정말 많은 곳이다 싶었는데, 그 규모가 17,000평이 넘는다고 합니다. 가끔 놀러가곤 하는 융건릉에서 잘 모르겠는 나무가 있어 한참 들여다보다가 오리나무라는 것을 알고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오리나무가 그렇습니다. 한눈에 오리나무인 것을 알아본다면 여러분은 이미 중급자 이상이십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