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 자전거 제조로 기초를 다지다

1944년 12월 11일. 기아자동차의 전신, 경성정공의 창립일이다. 올해로 75주년 생일을 맞았다. 지금은 현대자동차그룹의 일원이지만, 시작은 현대차보다 빨랐다. 창업주 김철호는 1905년 경상북도 칠곡군에서 태어났다. 1922년, 16세 때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기계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특히 자전거 제조 및 생산기술을 국내에 소개하고 싶어 했다.

경성정공의 모습

그는 오사카의 삼화(三和) 제작소를 인수해 자전거용 볼트와 너트를 만들며 기틀을 다졌다. 해방 직전인 1944년 고국으로 돌아와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자전거 부품 제조공장인 경성정공을 창업했다. 최초엔 자전거용 부품을 만들거나 철판 등을 가공하는 작은 업체였다. 하지만 1946년 일본에서 기계 설비를 들여오면서 기술 수준을 한껏 높일 수 있었다.

경성정공(현 기아자동차) 창업주 김철호 회장

그런데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위기를 맞았다. 서울 영등포에서 다진 초석도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김철호 회장은 청춘을 바친 자전거 제조업을 포기할 수 없었다. 결국 1952년 3월, 피난을 떠나 정착한 부산에서 최초의 국산 자전거인 3000리호를 출시하며 꿈을 이뤘다. 새로운 이동수단을 우리 삶에 끌어들인 순간이었다.

3000리호 생산 현장
당시의 3000리호 광고

당시 해남에서 서울까지 1000리, 서울에서 함경북도 은성까지 2000리로 잡아 우리나라를 ‘3000리 금수강산’으로 불렀다. 3000리호는 한반도 전역을 누빌 꿈을 품은 이름이었다. 이때까지 국내 이동수단은 소나 말에 얹어 끄는 달구지, 인력거 등이 전부였다. 3000리호는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이동수단이자 지역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을 주역이었다.


자전거에서 모터사이클로 영토 확장

정전 이후 이동수단 마땅치 않던 국내에서 자전거 산업이 호황을 누렸다. 1973년, 김철호 회장의 장남 김상문 대표가 경영인으로 등장했다. 이후 삼륜차와 승용차와 군용차 생산을 시작하며 1979년 자전거 사업부를 ‘삼천리자공’으로 분리시켰고, 훗날 판매조직을 합쳐 지금의 ‘삼천리자전거’로 거듭났다. 김철호 회장의 손자 김석환 대표가 경영을 맡고 있다.

기아산업의 이륜차

1952년 경성정공은 삼천리호를 출시하면서 사명을 기아산업으로 바꿨다. 1957년엔 경기도 시흥에 대량생산이 가능한 새 공장을 세워 자전거 사업을 더욱 확장했다. 또한, 자전거 프레임 파이프까지 국산화를 이뤄 새로운 가능성을 엿봤다. 바로 엔진의 힘으로 달리는 모터사이클이었다. 현재 삼천리자전거뿐 아니라 대림오토바이 역시 시작은 기아산업이었다.

1961년 기아산업은 혼다와 제휴해 기아혼다 브랜드를 세웠다. 이듬해 C-100을 선보였다. 국내 최초의 모터사이클이었다. 당시 자료에 따르면, C-100은 관공서의 장급이나 부잣집 도련님이나 탈 수 있을 만큼 귀한 이동수단이었다. 이후 일반 시민에게 빠르게 보급되며 경제성장에 속도를 붙였다. 자전거 배달부나 농촌 살림꾼에게 새로운 ‘로망’으로 떠올랐다.

당시 기아혼다 광고 문구는 다음과 같다. ‘스피드 있는 現代人(현대인)의 生活(생활)과 멋’. 젊은 남성이 C-100의 시트 뒤에 간단한 물건을 싣고 언덕길 오르는 사진과 함께였다. 은방울자매 2집 앨범 표지에도 청바지와 스커트 입은 두 사람이 C-100을 타고 달리는 모습을 담았다. 두 바퀴 단 바이크가 생계수단을 넘어, 레저용도로 거듭날 즈음이었다.


‘딸딸이’ 삼륜차로 자동차 산업에 도전

자동차 제조사 가운데 이륜차 제조에 뿌리를 둔 경우가 꽤 있다. 프랑스 푸조와 독일 BMW가 대표적이다. 푸조는 1882년 자전거를 출시한 뒤 1889년 삼륜차를 앞세워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었다. BMW는 1896년 독일 아이제나흐의 작은 공장에서 자전거 생산하는 회사로 싹을 틔워 인수합병으로 덩치를 키웠다. 일본 혼다의 뿌리도 자전거였다.

이들 세 회사의 강점은 자동차의 기본기로 일컫는 ‘주행성능’이다. 자전거부터 기초를 다지며 기술을 숙성시킨 결과다. 또한, 지금까지도 자동차와 함께 자전거, 모터사이클을 생산하고 있다. 기아차의 뒤안길 또한 비슷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1981년 정부의 자동차공업 합리화 조치가 없었다면, 오늘날 기아 모터사이클을 만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기아산업의 삼륜차  K-360

기아산업은 1962년 일본 동양공업(현 마쓰다 자동차)과 기술제휴를 통해 또 다른 가능성을 엿봤다. 1962년 출시한 삼륜차, K-360이다. V2 356㏄ 가솔린 엔진 얹은 소형 화물차로, 다양한 용도에 쓸 수 있는 ‘만능’ 픽업트럭이었다. 동그란 헤드램프와 조향바퀴 1개, 뒷바퀴 2개의 독특한 구성으로, 실내엔 운전자를 포함해 2명이 탈 수 있었다.

기아산업의 삼륜차 K-360

차체 너비는 1.2m에 불과해 골목길도 거뜬히 헤집었다. ‘삼발이’, ‘딸딸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다양한 용도로 활약했다. 특히 연탄과 쌀 등을 실어 나르며 소상공인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겼다. 이후 기아산업은 K-360을 밑바탕 삼아 다양한 가지치기 모델을 선보였다. T-600과 T-1500, T-2000 등이 대표적이다. 숫자가 클수록 적재공간이 넉넉했다.

삼륜차 T-600
T-2000과 3000리호


삼륜차 성공으로 자동차 생산 기틀 다져

1969년 나온 T-600은 3.3m 남짓한 차체에 공차중량은 520㎏에 불과했다. 그런데 몸무게에 육박하는 500㎏을 실을 수 있어 쓰임새가 좋았다. 1974년까지 7,742대가 팔리며 효자노릇을 톡톡히 했다. 당시 자영업자 사이에서 ‘기름 적게 먹는 경제적인 차’로 평가 받아 국내 자동차 산업의 태동을 이끌었다. 현재 문화재청이 등록문화재로 지정한 상태다.

삼륜차 T-2000 광고

1969년 한국일보에 실은 T-2000 광고를 보면, ‘소비자보호 이동백화점’, ‘생활권 단축’, ‘소자본으로 성공’ 같은 문구에 각종 옷가지와 벽시계 등 다양한 물건을 적재함에 싣고 줄지어 이동하는 이미지를 담았다. 1971년 8월,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고속도로 개통을 계기로, T 시리즈는 업무용 운송수단으로써의 매력을 한껏 어필했다. 찻값은 45만 원이었다.

삼륜차 생산 공장

기아산업은 창업 이래 30여 년간 자전거와 이륜차, 삼륜차를 선보이며 국내 이동수단의 부흥을 이끌었다. 그러나 한계도 분명했다. 이때까지 국내 업체는 대부분 해외 부품을 수입해 국내에서 조립하는 방식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품 국산화율과 이윤이 낮았다. ‘규모의 경제’도 꿈꿀 수 없었다. 기아산업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더 큰 꿈을 그렸다.

삼륜차의 성공으로 자본을 축적한 기아산업은 1973년 경기도 시흥군 소하리에 종합자동차공장을 세웠다. 국내 최초의 일관공정(컨베이어) 시스템을 갖춘 공장으로, 엔진과 프레스, 차체, 도장 등 다양한 단위공장으로 구성해 대량생산 승용차 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1976년 7월, 직렬 4기통 2.0L 가솔린 엔진을 만들었다. 국내 기술로 만든 첫 엔진이었다.


자동차 기술 국산화를 위한 첫 걸음

자동차 국산화의 꿈을 향한 기아산업의 집념이 낳은 결실이었다. 1969년 12월 29일, 정부는 자동차공업육성 기본계획을 알리고, 이듬해 2월 국민차 생산계획을 발표했다. 핵심은 자동차 국산화였다. 시행착오 끝에 내린 결단이었다. 1961년, 당시 박정희 정부는 반제품을 수입해 조립‧생산하는 조건으로, 새나라자동차를 소형차 공급회사로 지정했다.

하지만 새나라자동차는 부평공장을 세우기 전 완제품 상태인 닛산 블루버드 400여 대를 가져와 팔았고, 이후 2,000여 대를 수입해 추가로 판매했다. 이를 통해 얻은 자금이 공화당 정치자금으로 흘러갔다. 결국 정치자금의 조달 목적으로 이용했다는 의혹을 받으며 금세 도산하고 말았다. 반면 기아산업은 기술 국산화를 위한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 나갔다.

1976년 12월엔 1.0L, 1976년 10월엔 1.3L 가솔린 엔진, 1978년 11월엔 디젤 엔진까지 스스로 개발했다. ‘기술욕심’ 남달랐던 기아산업답게 국내 어떤 자동차 회사로 엄두내지 못한 도전에 성공했다. 처음부터 스스로 차체를 설계하진 않았다. 그럴 수도 없었고. 기아산업은 삼륜차로 인연 맺은 일본 마쓰다와 기술제휴를 맺고 승용차 사업에 진출했다.

기아 브리사

첫 단추는 1973년 선보인 B-1000이라는 소형 트럭이었다. 소하리 공장에서 개발하고 만든 1.0L 자체 엔진 얹은 첫 차였다. 1974년엔 드디어 기아산업은 첫 승용차를 선보였다. 2017년 개봉한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주인공 송강호가 모는 택시로 등장해 요즘 세대에게도 눈도장 찍었다. 차 이름은 ‘브리사(Brisa)’로, ‘산들바람’을 뜻하는 스페인어다. (2부에서 계속)


글/강준기(로드테스트) 사진/기아자동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