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 스트랜딩 (1) - '뮬'이라는 적이 은유하는 것은?
*이 글에는 '데스 스트랜딩'의 스포일러가 없습니다. 게임 세계관에 대한 설명은 조금 들어 있으나 플레이에 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니 편하게 보셔도 됩니다.
[게임의 법칙-164] 고지마 히데오의 신작 '데스 스트랜딩'은 프로듀서 스스로도 밝혔듯 연결에 관한 주제를 다루는 게임이다. 대개 이런 유의 대작은 주제의식을 게임 스토리텔링에 녹여내는 편인데, 이 게임은 스토리 외에도 게임 구조 전반에 연결이라는 주제를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데스 스트랜딩'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길어질 것 같은데, 우선 첫 글에서는 그중 한 꼭지인 작중의 적들, '뮬'을 살펴보고자 한다.
◆대재앙 속의 가능성, 카이랄 네트워크와 연결의 테마
'뮬'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먼저 게임의 세계관 설정을 꺼내 봐야 한다. '데스 스트랜딩'의 배경은 미국으로, 보이드 아웃이라는 알 수 없는 원인에 의한 폭발이 이어지면서 사실상 국가 체계가 모두 무너져버린 일종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상황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타임폴'이라는 이름이 되어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는 모든 것의 시간을 빠르게 가속해 버리는 효과를 낸다. 생물은 타임폴에 맞아 급격하게 노화하고, 금속과 장비류는 순식간에 녹슬고 부식된다.

사실상 타임폴이 떨어지는 지상에 살 수 없는 환경이 되다보니 사람들은 모두 지하 셸터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그 숨어듦과 함께 개개인의 모든 연결은 끊겼다. 모든 것을 노화시키는 타임폴이 수시로 쏟아지는 세계는 서로가 서로에게 닿기 어려운 환경이 되었고, 특히나 국가 형태 자체가 주들의 연합으로 구성되어 있었던 미국의 경우라면 이 연결의 끊김은 더 상징적이었다. 게임의 중심 목표 중 하나는 그 연결이 끊어진 'United States of America'의 도시들을 다시 연결해 'United Cities of America'를 재건하는 것이다.
'데스 스트랜딩' 안에서 사람들의 연결을 복원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제시된다. 하나는 말 그대로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실제 물건을 배송하는 유통과 물류의 연결이다. 이를 수행하는 것은 '포터'라고 불리는 짐꾼들이다. 쏟아지는 타임폴을 뚫고 셸터와 셸터, 소도시와 소도시를 오가는 이들은 식량과 의약품처럼 필수적인 물건들의 조달을 책임지면서도 별도의 보수를 받지 않는 행보를 보인다(이들의 행동과 배경은 추후에 더 다룰 부분이 많다).
또 하나의 연결은 정보 연결이다. 데스 스트랜딩이라는 대재앙이 닥쳐오는 와중에 인류는 그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하나 발견했는데, 이른바 '카이랄 네트워크'라고 불리는 통신수단이다. 데스 스트랜딩은 우리가 보통 저승이라고 부르는 세계가 현실과 맞닿으면서 나타나는데, 이때 저승은 게임에서 '해변'이라는 용어로 표현된다. 쉽게 설명하자면 사람이 죽으면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고 영혼은 '해변'으로 넘어가 저세상으로 떠난다는 것이 기본 설정이다.

'해변'의 세계는 현실의 시간이 적용되지 않는다. 앞서 이야기한 '타임폴'은 해변에서 기인하기 때문에 현실의 시간에 작용하는 것이다. 죽지 않은 존재도 '해변'에 닿을 수 있다는 점을 뒤집어 생각한 몇몇 연구자들은 이 해변을 이용해 데이터를 전송하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이것이 '카이랄 네트워크'라 불리는 장치다.
현실의 광섬유와는 차원이 다른, 말 그대로 정보 지연이 없는 '해변'을 매개로 한 데이터통신인 카이랄 네트워크는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원거리에 연결시킬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게임 내에서 수많은 인물은 실제로 특정 장소에 가기보다는 카이랄 네트워크를 활용한 3D 홀로그램으로 등장해 주인공과 대화를 나누는데, 현실 데이터 네트워크로는 불가능한 일이 게임 안에서 구현된 것이다.
이 네트워크는 3D프린팅 기술과 결부되며 각 셸터와 도시 사이의 연결을 복원하는 중심점이 된다. 어지간한 물건과 부품은 카이랄 네트워크를 통해 조달이 가능해지고, 정보통신이 실시간으로 이어지면서 게임 속 세계는 각 도시의 네트워크를 복원하는 주인공의 노력을 통해 정보 측면에서 연결되고 주인공이 메고 가는 수많은 화물을 통해 물리적으로 연결된다. 게임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두 가지 연결을 수행하는 주인공 샘 포터의 이야기를 표면적으로 따라간다.
◆'뮬':인터넷 악플러를 향하는 은유
게임 속에 등장하는 인간형 적의 대표주자인 '뮬'은 이런 배경에서 탄생한 존재들이다. '뮬'은 원래 화물을 대신 배송해 주던 포터들이었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포터들은 현대의 배송업자와 달리 별도의 보수를 받지 않는 자원봉사에 가까운 일을 하는 존재들이었다. 포터 생활을 이어오던 그들은 어느 순간부터 사람과 사람, 도시와 도시를 잇는다는 연결이라는 본질을 잊은 채 그저 화물을 배송하는 일 자체에만 집착과 강박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들은 아예 어느 순간부터 도시에 가서 화물을 받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화물을 스캔하고 가서 빼앗아버리는 이상한 강박증을 가진 존재들이 되었다. 그리고 게임 '데스 스트랜딩' 안에서 이들은 '뮬'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뮬'이 존재하는 구역을 지나가는 일은 무척 성가시다. 플레이어가 잔뜩 짊어진 화물을 노리고 공격해 오기 때문이다. 안그래도 험한 길인데 방해꾼까지 달려오면 배송길의 고단함은 몇 배로 뛴다. 그렇다고 다짜고짜 공격하는 게 능사도 아니다. 데스 스트랜딩이 닥쳐온 세계에서 누군가 사람이 죽으면 48시간 이내에 화장하지 않을 경우 시신이 그대로 '해변'의 영향을 받으며 BT라는 존재로 거듭나며, BT가 살아있는 존재와 접촉하게 되면 거대한 보이드 아웃이라는 폭발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기절 정도만 시키는 선에서 뮬 구역을 뚫고 가야 하는데 그조차도 쉽지 않은 것이 몰래 처치하지 않으면 경보가 울리며 떼거지로 몰려오기 때문이다. 결국 몰래 소리를 죽여 숨어 지나가거나, 그 걸리는 시간이 싫으면 뮬 구역을 멀리 돌아서 배송하는 것 중 선택을 해야 한다.
이런 '뮬'이 상징하는 것은 연결이라는 대주제를 놓고 볼 때, 인터넷 악플러와 같은 트롤러들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정보의 전달이라는 대주제를 뒷전으로 한 채 오로지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공격적인 태도만을 드러내며 세계의 연결을 방해하고 위협하는 이들 또한 인터넷을 통해 세계가 연결된 초창기에는 선량한 네티즌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남을 비난하고 얼굴 모르는 이들에게 험한 말을 쏟아내며 연결이 주는 어두운 면에 집착하며 인터넷을 사용하는 이들의 모습은 화물배송을 통한 연결이라는 게임의 설정 속에서 '뮬'이라는 존재로 은유된다. 어떻게든 끊어진 연결을 복원해 보려는 주인공의 노력 앞을 막아서는 이들 또한 한때는 포터였다는 사실은 처음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 디지털 직접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노래하던 환희의 시절을 보낸 뒤 익명성에 기댄 악플만이 뒤덮여가는 인터넷의 어두운 면을 보게 된 최근의 흐름을 시사한다.
◆빛과 어둠을 같이 다루는 게임
게임 '데스 스트랜딩'은 하나의 소재를 두고 그 소재가 갖는 빛과 어둠 양쪽을 항상 같이 보여주려고 한다. 데스 스트랜딩이라는 대재앙 속에서 인류는 카이랄 네트워크라는 전대미문의 연결법을 찾아냈고, 세상 모든 것을 부식시키는 노화의 비 '타임폴' 속에서도 어떤 농부는 작물의 시간을 빨리 가게 만든다는 점에 착안해 농작물을 빠르게 재배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실현했다. 심지어 게임 중·후반부에는 공포의 적 BT가 나타나는 순간을 역으로 활용해야 하는 지점도 존재한다.
끊어진 사람들을 연결하라는 대주제 또한 게임 속에서 끊임없이 그 연결이 가져올 정효과와 역효과는 같이 이야기된다. 그런 속에서 인터넷이라는 연결망을 통해 전례없는 정보연결을 얻은 지금 시대의 사람들과, 그 속에서 피어난 어둠의 트롤러, 악플러 또한 부정할 수 없는 현재라는 점이 '뮬'이라는 적을 통해 나타난다. '데스 스트랜딩'은 이런 의미에서 연결이라는 주제를 다루지만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정리해 본다면, 인터넷이라는 새 연결의 시대인 지금 시대를 은유하는 우화적 설정 위에 서 있다.
다음 글에서는 '데스 스트랜딩'이 딛고 있는 다른 서사들과의 관계를 통해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를 더 나눠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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