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백남준을 만나다]비디오 이후의 예술..레이저로 쏘아올린 '천상의 세계'
구겐하임미술관서 '백남준의 세계'로
밀레니엄 시대 아시아인 첫 기획전 열어
바닥에 놓인 100여대 TV 초록색 광선이
천장 원형 스크린에 기하학적 영상 만들어
당시 美언론 "작가의 새로운 시작" 극찬
홍라희 전 관장·삼성 작품 지원 나서기도

백남준이 이 전시를 준비하기 시작한 것은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전, 1995년부터였다. 앞서 1982년 휘트니미술관에서의 백남준 회고전을 기획한 큐레이터 존 핸하르트가 구겐하임의 수석 큐레이터로 옮겨갔고 전시 구상을 밝혔기 때문이다. 미술관 측의 공식 전시 확정은 ‘아직’이었지만 둘은 뉴욕의 그린(Green)가 143번지에 자리잡은 백남준의 작업실에서 머리를 맞대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핸하르트는 휘트니에서의 전시에서 실험 중이던 ‘레이저 비디오’를 본 적 있기에 대화가 잘 통했다.
거슬러 올라가자면 이미 1965년에 백남준은 ‘비디오 이후의 예술’로서 레이저 작업을 예고했다. 당시 그는 “1996년 3월 1일이 되면 고진동 주파수의 레이저를 이용해 수 천개의 TV기지국 유토피안 레이저 방송국을 건설하고 소수 상업방송의 독점권을 무효화 하겠다”는 취지로 성명서를 발표했다. 정보화 시대가 도래하고 누구나 개인 방송을 할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을 예견한 것이다. 이후 위성방송을 활용한 작업으로 전 세계를 연결했고, TV를 이용한 비디오조각을 선보였다. 가장 순수한 광원으로 알려진 레이저를 주목하면서, 백남준은 초월적 소통을 꿈꾸기 시작했다.

1996년 4월 뇌졸중으로 쓰러졌다가 9월에 퇴원한 백남준은 본격적인 레이저 작업을 선언했다. 백남준의 또 다른 역작인 레이저 ‘삼원소’가 탄생한 것은 1997년 뉴욕스튜디오에서였다. 레이저 전담 조수인 노만 발라드가 협업했다. 삼각형, 원형, 사각형의 형태 안에서 레이저 빛이 끊임없는 굴절과 반사를 거듭하는 ‘삼원소’는 각각 물, 불, 흙의 이미지를 상징했다. 파랑, 빨강, 초록의 빛이 밀폐된 공간 안에서 쉼 없이 진동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멈춘 듯했다. 겹겹의 빛이 무한한 깊이감을 이뤘고, 명상적이면서도 환상적이었다.
작품을 바라보던 백남준은 “죽을 때가 가까워지니 이렇게 사색적인 작품이 만들어진다”고 했고 “작품 제목으로 ‘빅뱅 이후 10억년 동안 비가 내리다’를 생각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비(雨)를 얘기한 까닭은 초기 레이저광선이 잘 보이게 하려면 비 뿌리는 방식으로 인공 안개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작품 안쪽 벽면에 습기가 차 이틀에 한 번씩 닦아내는 번거로움이 있었고 습기 제거 방식을 보완했다. 시험제작이라 높이 1m가 채 안 되던 이들 연작은 구겐하임 전시에서 높이 3m 가까운 크기로 선보였다. 그간 일시적 설치로 선보였던 레이저 작품이 완결된 조각으로 제작된 것은 ‘삼원소’가 처음이었다.

“미스터 리, 구겐하임 내부를 촬영해 올 수 있겠나?”
이정성은 백남준 앞에서 ‘못 하겠다’는 말을 한 적이 거의 없다. 트렌치코트 안쪽에 작은 캠코더를 넣고 단추 사이로 렌즈가 자리잡게 한 다음, 내부 촬영이 엄격하게 금지된 구겐하임미술관으로 향했다. 한두 층 올라가다 경비원에게 붙들려 쫓겨났다. 다음 날, 촬영장비를 품고 구겐하임으로 또 들어갔고 역시나 들켰다. 전날과 다른 경비직원이라 상습범으로 낙인찍히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실패의 원인을 분석한 후 재도전한 세 번째 날, 촬영에 성공했고 백남준의 집으로 돌아와 킬킬거리며 공간을 연구했다. 레이저를 어디서 어디로 쏠지 위치를 결정했다. 백남준은 무선 빔 프로젝트를 사용해 선(線)없이 빛으로 공간을 장악하고 싶었으나, 그럴 경우 한 번씩 화면이 흔들려 노이즈가 생기는 단점이 있었다. 결국 유선을 택했다. 아래쪽에 기계가 놓였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나선형 난간을 따라 선이 깔렸다. 천장에 원형 스크린을 매달 때는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기술진까지 출동했다. 이음새가 드러나지 않게 매달기 위해서였다.

레이저 발생기에서 나온 광선은 유리섬유를 따라 이동한 후 양쪽 반사판에 부딪혀 굴절을 거듭하며 솟구쳐 올랐다. 잡히지도 않는 빛줄기가 공간 전체를 장악했다. 하늘로 향하는 사다리를 뜻하는 이 작품을 위해 모터로 물을 끌어올려 쏟아져 내리는 인공폭포를 조성했다. 백남준은 빛을 밀어 올리는 것 못지 않게 물을 떨어뜨리는 게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폭포는 레이저를 위한 스크린인 동시에 과열을 보완하는 냉각수이기도 했다. 개막일 아침 ‘뉴욕타임즈’는 2개 면을 꽉 채워 백남준의 전시평론을 실었다. 레이저 신작이 작가의 절정기 작품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 것이라고 극찬했다.


‘야곱의 사다리’를 이루는 굴절 반사판의 경우 매일 아침 개관 직전에 재조율해야 했다. 인간의 몸이 인식하지 못할 뿐, 건물은 미묘한 일상 진동에도 조금씩 흔들린다. 이를테면 큰 트럭이 지나가기만 해도 반사판의 위치가 미세하게 어긋났다. 정교하게 위치를 정해둔 것이라 노만 발라드가 매일 아침 이를 제자리로 돌려놓곤 했다. 개막식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기도 한 백남준은 “20세기에는 한국이 가장 고생한 민족이지만, 21세기에는 한국이 동북아 중심이 되고 잘살 거라고 믿는다”라는 말로 새로운 시대를 맞은 고국에 축복을 전했다.


구겐하임미술관의 전시는 곧장 그 해 7월 21일 서울 전시로 이어졌다. 그때만 해도 한남동에 삼성미술관 리움이 개관하기 전이라 중구 순화동 호암갤러리와 태평로 옛 삼성생명 본관 옆 로댕갤러리로 나뉘어 전시됐다. 호암갤러리가 유리벽으로 이뤄진 건물인지라 안쪽과 바깥에 이중 차단작업을 했다. 어둑한 공간에서 레이저 광선이 제대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듬해에는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내 몽촌해자 수변무대에서 ‘올림픽 레이저 워터스크린 2001’을 선보였다. 레이저 광선으로 오륜기와 태극기의 4궤를 그렸다. 초기 아이디어는 대형 풍선에 스크린을 매달아 띄워 공중에서 레이저쇼를 하는 것이었다. 바람이 문제였다. 풍선이 위아래로 움직여 스크린이 제 역할을 할 수 없었다. 장막 없이 허공에 쏠까도 했으나, 레이저가 강변 아파트들 창문으로 향해 중단시켰다. 최종적으로는 몽촌해자의 워터스크린이 낙점됐는데 당시 기술로는 물입자가 곱지 않아 흡족하게 구현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백남준은 고국의 동포들에게 흥미로운 최신의 예술작품을 신속하게 선보였고 즐거움과 자랑스러움을 안겨줬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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